대학내일

방 빼시죠, 잠실 주인은 우리 팀입니다

개막전보다 뜨거운 LG-두산 팬들의 잠실 소유권 배틀

3월이다. 누군가는 개강과 함께 벚꽃을 기다리겠지만, 우리 대학생 야구 팬들에게 3월은 조금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뛴다. 강의실에서 몰래 띄워놓은 티켓링크 창, 수강신청보다 치열한 개막전 예매 전쟁. 드디어 우리의 진짜 '새 학기'가 시작된 거다.

그런데 이 설렘이 유독 묘한 긴장감으로 바뀌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의 심장, 잠실 야구장이다. 사실 이곳은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40년 넘게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기묘한 동거 현장이다.

평소엔 과제와 팀플에 치이는 평범한 대학생들이지만, 경기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들은 각자의 팀을 대변하는 ‘잠실의 주인’으로 변신한다. 누군가에겐 그저 넓은 운동장이겠지만 이들에게 잠실은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의 각축장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진짜 우리 땅이다!" 개막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부터 벌써 뜨거운 두 팬의 목소리. 그래서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1루와 3루 사이, 묘한 기싸움마저 유쾌한 두 대학생 팬의 잠실 소유권 분쟁기. 과연 이들이 말하는 잠실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피가 원래 빨간색이라고? 몰랐어. 줄무늬인 줄"

ㅣ태어나 보니 DNA부터 '무적 LG'였던 본투비 엘린이



하예준 l 성신여대 수리통계데이터사이언스학부 23학번
TEAM l LG 트윈스
CAREER l 태교부터 직관까지 23년 차
TMI l MBC 청룡 시절부터 광팬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잠실의 함성을 듣고 자랐다. 눈 뜨니 손에 응원봉이 쥐어져 있었고, 초등학생 땐 이미 ‘공식 엘린이’ 회원증을 마스터한 준비된 트윈스 패밀리.


"잠실의 주인은 당연히 우리"라고 생각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최근 예능 프로그램 <야구대표자>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저희가 잠실에서 3루 라커룸을 쓰는 이유가 먼저 선택했기 때문이래요. 3루 쪽이 더 넓고 시설 이용도 편하거든요. 주인이 가장 좋은 자리를 먼저 고르는 건 당연한 순서 아닐까요? (웃음)


잠실 야구장에 오면 '서울의 자존심 무적 LG 트윈스'라는 경기 시작 음악을 들으실 수 있어요. 가사처럼 이 팀은 서울을 연고지로 한 최초의 프로 구단이에요. 경기장을 가득 채운 유광 점퍼와 노란 물결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이곳과 LG 트윈스는 이미 하나라는 사실에 압도당하실 거예요.


두산 베어스가 잠실 주권을 주장할 때,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은?
우승 횟수로 어필할 때요! 우승 기록과 잠실의 주인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횟수 차이도 곧 따라잡을 예정이니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올해도 V5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일명 ‘잠실 더비’ 날, 기싸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그럼요! 특히 어린이날 시리즈는 ‘엘린이’들이 야구장을 가장 많이 찾는 날이라 더 지기 싫어요. 저도 엘린이 출신이라 그 마음을 잘 알거든요. 그날 지면 어느때보다 더 속상해요. 그래서 더비 전이 열리는 날엔 상대 팀 응원 소리에 묻히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목이 터지라 소리를 질러요.


이 지독한 야구 사랑이 본인의 대학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저는 시간표를 짤 때 무조건 직관 일정부터 고려해요. 6시 수업은 피하는 게 원칙이죠. 어쩔 수 없이 늦게 끝나는 날엔 아예 유니폼을 입고 등교하기도 해요. 실제로 지난 기말고사 기간에는 시험을 치자마자 코리안시리즈를 보러 야구장으로 달려갔어요. 저에겐 시험만큼이나 간절한 경기였거든요!


진로 고민으로 스트레스가 많을 때 야구는 최고의 재충전이 되어줘요. 무언가에 실패해 우울했던 날, LG의 끝내기 승리를 보며 나쁜 기억을 날렸던 적이 있어요. 잡생각이 많을 땐 야구에 몰입해보는 걸 추천 합니다!


올 시즌, 잠실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 선수들이나 상대 팀 팬에게 던지는 마지막 한마디가 있다면?
디펜딩 챔피언인 무적 LG 트윈스는 이름처럼 적이 없죠! 올해도 선수들과 팬들이 하나가 되어 트윈스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가면 좋겠습니다. "서울의 자존심"
 


"제 피는 줄무늬고, 심장은 잠실에 있습니다."

ㅣ돌잡이부터 시작된 운명, 암흑기를 견뎌낸 승리의 아이콘



사혜진 l 성신여대 경영학과 24학번
TEAM l LG 트윈스
CAREER l 태어나보니 LG 팬! 돌잡이 때 응원배트 잡음 
TMI l 소위 말하는 ‘엘린이’ 출신. 암흑기 시절 거실에서 들리던 아버지의 한숨 소리를 기억하지만, 이제는 2023년과 2025년 우승의 감동을 함께한 성덕이다. "내 피는 줄무늬구나"를 깨달은 이후, 심장은 늘 잠실에 가 있다.

"잠실의 주인은 당연히 우리"라고 생각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LG는 MBC 청룡 시절인 1982년부터 서울을 연고지로 정한 팀이에요. 반면 상대 팀은 1985년에 들어왔죠. 서울을 가장 오래 지켜온 팀이기도 하고, 서울 연고 팀 중 최초 우승도 LG가 먼저 기록했어요. 역사적 정통성만 봐도 잠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거 아닌가요? (웃음)


두산 베어스가 잠실 주권을 주장할 때,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은?
보통 1루 라커 룸을 쓴다는 이유로 주인이라고 하시는데 그건 조금 이해가 안 가요. 사실 잠실구장 초창기에는 1루 쪽에 식당, 심판실, 기자실 등이 몰려 있어 공간이 협소했거든요. 반면 3루 쪽은 훨씬 넓고 쾌적했죠. 그래서 LG가 먼저 3루를 선택한 거에요! 먼저 좋은 자리를 고른 쪽이 진짜 주인 아닐까요?

일명 ‘잠실 더비’ 날, 기싸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잠실 더비는 상징성이 워낙 커서 경기장에 입장할 때부터 긴장감 자체가 달라요. 같은 구장을 쓰는 팀이다 보니 ‘오늘만큼은 우리가 이 구장의 진짜 주인이다’라는 마음이 더 강해지거든요.


상대 팀 응원에 절대 밀리고 싶지 않아서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치는데, 경기가 끝나면 목이 완전히 잠겨 있을 때도 많아요. 특히 이긴 날에는 결과를 꼭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면서 큰 자부심을 느끼곤 합니다!


홍창기 안타 날려버려라-!

이 지독한 야구 사랑이 본인의 대학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지방에 살아서, 잠실에 한 번 오려면 하루를 꼬박 비워야 했어요. 막차 시간 때문에 9회 말도 못 보고 나올 때면 ‘꼭 서울로 대학 가서 매일 야구장에 오겠다’라고 다짐했죠. 제 수험 생활의 가장 큰 동기부여는 바로 우리 홈구장 ‘잠실’이었던 셈이에요.


지금은 수업이 끝나면 언제든 잠실로 향하는 일상을 살고 있어요. 9회 말 끝내기는 물론, 인터뷰와 응원가 메들리까지 끝까지 즐길 수 있게 됐거든요. 과거의 야구가 제 삶의 원동력이었다면, 지금은 제 일상을 가장 자유롭게 만드는 행복 그 자체예요.


올 시즌, 잠실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 선수들이나 상대 팀 팬에게 던지는 마지막 한마디가 있다면?
2026년 가을, 잠실은 또 한 번 노란 물결로 물들 겁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우승", 또다시 우리의 것이 될 거에요!



"왜 두산이냐고? 그건 설명하는게 아니라, 느끼는 거다"

ㅣ정수빈 응원가에 몸을 맡긴 12년차, 소신 있는 곰의 후예


잠실의 박보검과 한컷 (스파이는 아닙니다만..)

이현빈 l 유니스트 반도체공학과 24학번
TEAM l 두산 베어스
CAREER l 아버지의 팀을 뒤로하고 큰아버지를 따라나선 12년 차 소신 팬 
TMI l 10살 때부터 잠실을 누볐지만, 진짜 '입덕'은 중학교 시절 잠실 더비 응원석에서 터졌다. 정수빈의 레트로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일어나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깨달았다. 아, 내 심장은 곰의 박자로 뛰고 있구나!


"잠실의 주인은 당연히 우리"라고 생각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프로 스포츠의 주인은 결국 성적으로 말해야죠. 우승 횟수만 봐도 두산 6회, LG 4회로 우리가 앞서 있어요. 과거 LG 단장님이 우리 팀을 롤모델로 삼겠다고 밝힌 것 자체가 두산이 오랜 기간 ‘강팀의 기준’이었음을 증명하죠. 무엇보다 두산은 KBO 리그 원년 창단팀이자 원년 우승 팀이라는 압도적인 상징성을 가졌어요. 이 정도 데이터면 잠실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나요?

LG 트윈스가 잠실 주권을 주장할 때,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은?
최근 성적이 좋다고 주권을 주장하시는 건 조금 곤란해요. 비유하자면, 직원이 '이달의 우수 사원상' 한번 받았다고 회사의 주인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주인은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꾸준한 성과, 그리고 팀이 쌓아온 전통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명 ‘잠실 더비’ 날, 기싸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작년 여름에 LG 팬인 친구와 외야석에서 직관한 적이 있는데, 서로 점수가 날 때마다 장난스럽게 놀리며 응원했던 게 기억나요. 우리 팀으로 흐름이 넘어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래서 잠실은 우리 거지’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라이벌전 특유의 긴장감 덕분에 응원도 평소보다 훨씬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지독한 야구 사랑이 본인의 대학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야구는 제 대학 생활의 가장 큰 활력소예요. 시험 기간 독서실에서도 중계 창을 끄지 못할 만큼 애정이 큰데, 오히려 그 짧은 휴식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원래 P 성향이지만, 직관을 위해서라면 철저히 계획을 짤 만큼 야구는 제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야구는 반복되는 학업 속에서 지치지 않게 해줘요. 그리고 친구들과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기도 하는 야구 덕분에 제 대학 생활이 한층 더 생동감 넘칩니다.


올 시즌, 잠실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 선수들이나 상대 팀 팬에게 던지는 마지막 한마디가 있다면?
지난 시즌 성적은 조금 아쉬웠지만, 유망주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시즌이 어린 선수들을 토대로 또다시 두산 왕조를 재건하는 길의 첫 번째 페이지가 되길 바랍니다. 끝까지 열정적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저녁에 약속 있다고 하면 친구들이 '잠실 가냐'고 물어봐요."

ㅣ'졌지만 잘 싸웠다'에서 시작된 팬심, 어느덧 12년 차 잠실 터줏대감



함서형 l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23학번
TEAM l 두산 베어스
CAREER l 초등학교 4학년 때 직관 가서 역전 만루홈런으로 지고 두산 팬 됨
TMI l 2014년, 야구 규칙도 모른 채 따라간 경기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고 맛있는 것을 먹던 기억이 시작이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그 분위기가 좋아 자꾸 발걸음 하다 보니 어느덧 '잠실이 집보다 익숙한' 찐팬이 됐다. 처음 야구장 왔다고 홈런볼을 나눠주던 대학생 오빠들의 훈훈한 인심도 입덕에 한몫했다고!


"잠실의 주인은 당연히 우리"라고 생각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진정한 주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긁히지' 않는 법이죠. 상대 팀 팬분들이 아무리 주인이라고 주장해도 저는 그냥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기게 되더라고요. 반면 제 주변 LG 팬분들은 제가 한마디만 해도 금방 반응이 오시던데(웃음),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유를 가진 쪽이 진짜 주인이 아닐까요?

LG 트윈스가 잠실 주권을 주장할 때,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은?
성적이나 창단 연도 등 여러 논리를 봤지만, 제 기억엔 2018년 두산이 LG를 상대로 거둔 정규시즌 15승 1패라는 기록이 가장 강렬해요. 최근 몇 년간 부침이 있었다고 해도, 그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시점부터 잠실의 주권은 완벽하게 두산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일명 ‘잠실 더비’ 날, 기싸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티켓팅부터 전 좌석 매진까지, 확실히 라이벌전은 응원 열기부터가 달라요. 특히 잠실 더비에서 이기고 퇴근하는 지하철 안이 백미죠! 승리의 기운을 가득 안고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지하철에 오를 때의 그 뿌듯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거예요.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두산의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두산 우리두리 대학생 봉사단으로 변신

이 지독한 야구 사랑이 본인의 대학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저는 야구장에 정말 자주 가는 편이에요. 일부러 경기를 예매해두고, 야구장에 가기 전까지 모든 할 일을 끝내는 걸 목표로 삼기도 하죠. 시험 기간에는 집에서 언니와 나름의 ‘야구 공부법’을 실천하기도 해요. 우리 팀이 공격할 때만 야구를 보고, 수비할 때는 집중해서 공부하는 식이죠. 물론... 정신 건강을 위해 자주 하는 건 추천하지 않지만요! (웃음)

올 시즌, 잠실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 선수들이나 상대 팀 팬에게 던지는 마지막 한마디가 있다면?
잠실야구장이 돔구장으로 바뀌기 전 마지막 시즌인 만큼, 올해는 꼭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면 좋겠어요. 특히 제가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양의지 선수가 주장일 때 우승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 간절한 소망입니다. 올해 가을까지 오래오래 우리 팀 야구를 보고 싶어요.



누가 잠실의 진짜 주인인지 가리는 일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40년 넘게 이어온 가족의 자부심이고, 누군가에겐 고된 수험 생활을 버티게 해준 유일한 빛이었으니까.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지하철로 향하는 길, 1루와 3루의 유니폼 색깔은 달라도 팬들의 얼굴엔 닮은 구석이 있다. 응원가에 목이 쉬고 팀의 승패에 일희일비하며, 오늘 하루의 스트레스를 잠실 벌판에 다 쏟아버린 홀가분함이다. 결국 팀은 달라도 잠실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채워가는 우리 모두가 이 구장의 진짜 주인일지도 모른다.


지독한 야구 사랑으로 일상을 버티는 모든 대학생 팬을 응원한다. 승패를 떠나 오늘 잠실에서 가장 크게 소리치며 웃었다면, 당신의 오늘 하루는 이미 완벽한 승리다.


이 뜨거운 관중석 사이에서, 당신이 정의하는 잠실의 주인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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