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세상은 넓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넓히는 거였다

졸업 전, 각자만의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간 이들의 이야기
바쁘다, 바빠 대학생 생활.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요즘의 대학생들은 매일 수십 개의 정보와 크고 작은 경험을 마주한다. 하지만 우리가 점점 놓치고 있는 것도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콘텐츠,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관계, 정답처럼 소비되는 갓생 서사 속에서 우리는 점점 '세상을 넓게 바라본다'는 게 무엇인지 체감하기 어려워졌다. 익숙한 범위 안에서 벗어나 정말로 세상을 넓게 바라본다는 건, 어디에서 시작될까.

대학 생활의 끝자락에, 각자의 방식으로 본인만의 세상을 넓힌 두 사람을 만나봤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복수전공 영화과에서 막학기에 영화 7개 제작하기

오혜인,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크리에이터 '혠이(@_sun_in)', 유튜브 및 인스타그램 채널 운영 중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유튜브 '혠이'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오혜인입니다. 현재 약 9년째 유튜브를 운영하며 일상을 담은 콘텐츠를 올리고 있습니다.


채널에서 '막학기 대학생'의 일상을 담은 영상도 자주 보이던데, 막학기를 앞둔 당시에는 기분이 어땠나요?
1년의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막학기를 앞둔 상황이었는데요. 휴학 당시만 해도 마지막 학기는 당연히 학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아 있는 학점도 6학점 뿐이어서 비교적 여유롭게 학기를 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타과생 혼자 막학기에 영화 7편 만들기' 브이로그도 올렸는데요. 부담이 큰 영화 제작 수업을 막학기에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영화 제작 수업은 사실상 필수에 가까운 선택이었습니다. 복수전공 6학점만 남겨둔 상황에서 선택지는 영화과 수업과 미대 수업 두 가지뿐이었어요. 수강신청 당일 미대 수업 신청에 실패해서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요.

OT수업에 들어가니 당일에 바로 7개의 영화 기획안을 작성해 제출해야 했습니다. 접근 방법도 감이 잡히지 않았고,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개의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상황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았어요.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이후 교수님께 직접 수강 허가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뒤, 미대 수업 OT에도 참석했어요. 하지만 이전에 다뤄봤던 디지털 작업이 아닌, 순수하게 손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수업이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그림'과 '영화'라는 두 선택지 앞에 서게 되었어요. 그림은 못 그리지만, 그래도 영상은 어떻게든 만들 수는 있다는 마음 하나로 결국 영화 제작 수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필수에 가까운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수업을 선택한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영화 제작 수업 OT 당일,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기획안을 썼어요. 그런데 제출하는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남은 건 저뿐이었습니다. 편하게 보내고 싶었던 학기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서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것 같아요. 또한, 제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이 가장 컸습니다.


영화과 브이로그 영상 속 우는 장면은 사실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웃음) 그때는 한 일주일 정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수업을 선택한 이후, 취업 준비를 병행하겠다는 계획 자체를 어느 순간 잊고 지냈습니다. 불안하다기보다는 '취업'이라는 걸 따로 생각할 여유도 없었어요. 당장 눈앞에 놓인 영화 7편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혜인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를 만들면서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결국 끝까지 7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는 사실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저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있더라도 '이번에도 못할 건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버티게 되는 것 같아요.

7편의 영화 포스터

지금 돌이켜보면 OT 당일 기획안을 쓰면서 일부 주제에 대해서는 '이건 이렇게 찍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요. 막막함 속에서도 잠깐이나마 느꼈던 그 흥미가 결국 저를 이 수업으로 이끈 것 같습니다. 사실 선택의 순간에서부터 이미 저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지게 된 거였어요.

'세상을 넓게 바라본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나요?
거창한 무언가를 해야 시작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별 의미 없어 보이거나 괜히 했나 싶었던 경험들도 지나고 나면 어디든 다 닿아 있더라고요. 

그 경험이 크지 않아도 괜찮아요. 작은 경험들이 쌓일수록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만큼 더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찾아가 보는 일, 시각장애인 졸업앨범 제작하기

황서영,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22학번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듣고 만질 수 있는 시각장애인 졸업앨범을 제작한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부 황서영입니다.


시각장애인 졸업앨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이 학문은 이론만큼이나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부생으로서 전공책과 PPT로만 배우는 과정이 과연 충분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사회공헌 프로젝트 공고에서 '시각장애인 졸업앨범 개선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제 아이디어가 실제 대구 특수학교 졸업앨범에 반영된다는 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동안 전공지식을 수동적으로 배워왔다면, 이번에는 직접 부딪히며 능동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기존 졸업앨범에 '음성 롤링페이퍼'를 추가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아이디어는 어떤 고민에서 출발했나요?
사진으로만 남는 졸업앨범이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에게는 '눈으로 보는 졸업앨범'보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졸업앨범'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귀로 들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졸업앨범 제작 과정

그래서 학창시절  학기의 마지막마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적어주던 롤링페이퍼를 떠올렸고, 이를 음성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의 얼굴을 3D 프린팅한 졸업앨범에 음성 롤링페이퍼를 추가했고, 그렇게 친구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고 목소리를 들으며 회상할 수 있는 '듣고 만질 수 있는 졸업앨범'이 탄생했습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다시 보게 된 순간이 있었나요?
음성 롤링페이퍼 인터뷰를 위해 대구에 위치한 특수학교인 광명학교에 직접 방문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생각과 달리 유치반부터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은 물론 저보다 나이가 많은 성인반 학생들까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교생활 중 가장 재미있었던 시간이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 한 시각장애인 학생이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답해준 순간이었습니다. 대답을 들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왜 저는 시각장애인이라면 당연히 그림을 즐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림은 꼭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 저조차 이토록 쉽게 '당연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때 '당연함'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이 경험의 영향을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이 경험은 저에게 단순한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넘어 작은 관심과 시도가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따뜻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해준 경험입니다.

프로젝트 기획부터 제작 과정까지 담은 콘텐츠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영상이 60만 조회수를 넘기면서 많은 분들이 댓글과 DM으로 응원을 보내주셨어요. 제 콘텐츠를 보고 용기를 얻어 더 따뜻한 세상을 위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대학생 분도 있었고, 여러 장애인복지단체에서도 더 좋은 서비스를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대구광명학교 감사패

무엇보다 가장 뿌듯했던 연락은 앨범을 받은 시각장애인 학우의 가족 분들에게 받은 메시지였습니다. 앨범을 받고 정말 좋아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주고 이런 변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셨을 때, 저의 작은 시도가 누군가의 일상에는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의미 있는 고민과 시도는 결국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또 다른 따뜻한 도전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세상을 넓게 바라본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나요?
처음에는 세상을 넓게 본다는 것이 남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누군가는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직접 그 현장에 찾아가 경험해보는 일이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보는 것. 나와는 다른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궁금증을 가져보는 것. 저는 그런 작은 질문들과 수많은 시도들이 쌓이는 과정이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넓게 본다는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성장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도전은 각자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내가 보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이다.

자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일, 타인의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는 일 모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넓히고 있는가. 



#대학생#성장#경험#변화#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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