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경상도인들의 다정함은 남다르다

알고 보면 겉바속촉 그 자체인 경상도식 표현법
경상도 출신 에디터가 상경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은 '경상도 사람들은 무뚝뚝하지 않아? 말투가 무서워'라는 말이었다. 이처럼 타지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을 떠올릴 때면 항상 ‘상남자’, ‘상여자’ 같은 이미지가 따라붙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알고보면 이들은 겉바속촉 같은 사람들이다. 말은 짧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 누구보다 따뜻한 다정함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경상도인들은 다정함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말보다는 행동으로, 상여자식 표현법

유예진, 덕성여대 경영학과 22학번, 구미시 출신



경상도 사람들의 애정 표현 방식이 있다면
어른들이 저희 같이 어린 사람들을 부를 때 이름 끝글자를 늘려 부르시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아요. 제 이름이 예진인데, 친할아버지와 고등학생 때 수학 학원 선생님께서 항상 저를 "지니야~"라고 불러주셨거든요. 

그리고 경상도 친구들끼리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때, "돌았노", "미친 거 아이가" 하면서 사투리로 추임새를 넣어줘야 제대로 듣고 있다는 뜻이에요. 저렇게 호들갑을 떨어줘야 공감하고 있다는 증표입니다.


경상도식 플러팅이 있다면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해요. 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건 오글거려서 잘 못하겠더라고요. 몇 년 전, 아빠가 결혼기념일에 갑자기 꽃다발을 사 와서 식탁 위에 툭 올려두신 적이 있어요. 엄마는 쑥스러운 듯 "갑자기 이런 걸 왜 사 왔노"라고 하셨고, 아빠도 민망했는지 "걍 받아라, 결혼기념일 아이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경상도에 "오다 주웠다"라는 플러팅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웃음).


경상도 사투리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
"잠 온다"라고 하면 서울 친구들이 "잠이 오고 있어? 잠이 걸어와? 잠 잘 오고 있대?"라면서 장난으로 놀릴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응, 잠이 온다. 잠이 와. 잠 is coming."이라고 받아칩니다. 주변 반응 때문에 종종 놀림거리가 되는 사투리이긴 하지만, 저는 '잠 온다'만큼 졸린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잠 온다고 할 겁니다(웃음).


반대로 서울에 와서 충격 받았던 에피소드
친하지 않은 연상의 이성을 금방 "오빠"라고 부르는 문화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경상도에서는 시간이 좀 지나도 보통은 "00님"이라고 하거나, 애매하면 그냥 이름 부르는 걸 포기하고 바로 본론부터 꺼내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는 너무 애교 있는 표현 같고, 괜히 상대방한테 관심 있는 느낌이라 입이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은 "디다"라는 말을 모르더라고요. 엄청 고되고 힘들다는 뜻인데, 알바 끝나고 썼다가 친구가 "디다가 뭐야? 뭐가 되었다는 거야?"라고 해서 엄청 웃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정말 힘든 날에만 나오는 레어 사투리에요. 그냥 힘든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힘들 때 쓰는 말입니다.



못 들었을까봐 같은 말을 두 번씩 말해줌

이승준,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2학번, 부산광역시 출신



경상도 사람들의 애정 표현 방식이 있다면
같은 말을 두 번씩 말해요. "맞다 맞다", "진짜가 진짜가", "알았다 알았다" 이렇게요. 이게 진짜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있다는 방식이거든요. 경상도인들만의 강조 표시라고 해야 할까요. 한 번 말하는 것보다 두 번 말해야 더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네 말 제대로 들었다"는 확신을 주는 거죠.


경상도식 플러팅이 있다면
고향에서는 친구들에게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면 거의 플러팅이에요. 저는 친구 사이에서는 절대 성을 빼고 부르지 않거든요. 너무 오글거린다고 해야 할까요? 민망해서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여자친구에 의하면 처음 만났을 때 사투리를 많이 안 쓰려고 했던 게 오히려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처럼 보여서 플러팅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경상도 사투리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
군대에 있었을 때 있었던 일이에요. 제가 사투리를 쓰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온 동기들이 그걸 따라 하면서 ‘가짜 사투리’가 유행하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오글거리고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가짜 사투리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섞어서 쓰게 됐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동기랑 통화했는데 아직도 그 말투를 쓰고 있어서, 통화 내내 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나네요.


반대로 서울 말에 충격 받았던 에피소드
부산에 살던 친구가 서울로 대학을 가서 4년 정도 지낸 뒤,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하다가 “졸려”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그때는 좀 충격이었어요. 순간 주먹이 올라왔다가 내려갔다고 해야 하나(웃음). 실제로 들으니까 왜 오글거린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또 서울 사람들은 ‘한 바닥’이나 ‘한 코스’ 같은 표현을 잘 안 쓴다는 것도 들었을 때 충격이었어요. ‘한 바닥’은 한 페이지를 일컫는 말이고 ‘한 코스’는 버스나 지하철 한 정류장을 뜻하는 말인데, 그런 표현을 안 쓴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안부를 전할 땐 밥 먹었냐고 물어봄

이명재, 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22학번, 대구광역시 출신



경상도 사람들의 애정 표현 방식이 있다면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게 애정 표현입니다. “밥 뭇나?”, “끼니 챙기무라” 이렇게요. 다소 퉁명스럽게 들릴 수는 있지만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관심의 표현이에요. 애정이 없으면 아예 질문조차 안 하거든요.

실제 아버지와의 통화 내역

우선 경상도 남자들끼리는 “사랑한다”는 말은 일단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안부 전화가 엄청난 관심이에요. 그런데 이마저도 통화 시간이 1분을 넘는 경우는 손에 꼽는 것 같아요. 전화를 하면 용건만 간단히 전하고 안부만 빠르게 확인한 뒤, 마치 폭탄을 해체하듯 빠르게 끊습니다(웃음).


경상도식 플러팅이 있다면
조공식 플러팅을 하는 것 같아요. “니 이거 좋아한다매” 하면서 서프라이즈로 선물을 조공하죠.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을 기억해뒀다가 자연스럽게 챙겨주는 방식인데, 저도 연애할 때는 이런 식으로 플러팅을 많이 했어요. 아프다고 하면 “괜찮냐”는 말 대신 죽을 사다 줬죠.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오해받은 순간
평생 경북에서 살다가 충청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요, 초반에 동기들이 계속 “블루베리 스무디 해봐” 같은 말을 사투리로 해보라고 시키더라고요. 처음에는 몇 번 맞춰서 해줬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니 조금 피곤해졌죠. 

그래서 “조금 피곤하니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고마 좀 시키라 천날만날 시키고 자빠졌노?"라고 말했는데, 옆에 있던 동기가 놀라서 사과하는 일이 있었어요.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였지만 화가 난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비교적 다정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충청도에 처음 왔을 때 오해했던 에피소드
진짜 모든 여자애들이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다들 너무 나긋나긋하더라고요. 저를 부를 때도 “이.명.재”가 아니라 “명재야~”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주니까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할아버지가 농담처럼 말씀하시던 “착각은 자유다”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경상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원래 말투 자체가 친절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경상도인들의 표현 방식은 남들에게 다소 무뚝뚝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쑥스러워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 그 뒤에는 누구보다 귀여운 다정함이 숨어 있다.


#경상도#사투리#다정함#표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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