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제1회 <글월문예> 최우수상작
작품명: 내 작은 친구에게

제1회 <글월문예> 최우수상작
작품명: 내 작은 친구에게
유수현,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24

토끼, 토순이, 토돌이, 토깽이, 토토에게.
네 이름을 지어주었다면 내가 널 기억하기 조금 더 수월했을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선물받았던 건지도 모르겠는 네게 처음으로 편지를 올려본다. 어린 내게 넌 단순 애착인형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어. 나는 마치 한몸마냥 너를 항상 품에 꼭 안고 다녔지.
가끔은 바닥에 끌기도 했을 테지만 그건 내 몸의 크기가 널 완벽히 품어주기에는 다소 작았기 때문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가 보자. 나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 너는 하얀 토끼라 부르기엔 때가 끼어 꼬질꼬질했고 꽃무늬 원피스와 리본은 내 무게에 짓눌려 언제나 반쯤 접히거나 뒤집어져 있었지. 본래 통통했을 네 몸매는 한숨 풀이 죽어 눅눅해진 솜으로 납작했어.
난 그런 네가 참 좋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네 몸 곳곳에 내 서투른 애정을 잔뜩 발라두었을 리 없잖니. 넌 말이야, 내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주었고, 외로움을 이겨낼 힘을 주었으며, 어떤 비밀도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해주었고, 누군가에게 애정을 건네는 방법을 알게 해주었어. 상냥한 너는 항상 과묵하게 나를 바라봐 주었잖아.
내가 너를 품에 안았던 것처럼 너는 그 변함없이 까만 플라스틱 눈으로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단다. 만약 애정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내가 네 털에 묻힌 콧물과 침과 눈물의 양을 측정해보라 하고 싶어. 아니면 네 콧잔등에 뽀뽀를 퍼부은 횟수나, 내가 무심코 붙이고 간 머리카락의 수를 세어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무엇이 되었든 그 수의 곱절 이상으로 너를 사랑한단다.
난 사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고는 어머니를 잃어버려 엉엉 울며 온 동네를 방황하다 경비실에 잡혀왔던 기억이나, 발등 위로 소형차가 지나갔던 그런 아찔하고 잊기 힘든 충격적인 순간들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 틈틈이 네가 있어. 널 안고 종횡무진 짧은 다리로 집을 누볐던 기억만큼은 (그리 또렷하지는 않아도) 내 머릿속에도 가슴속에도 남아있어. 그리고 널 떠나보냈던 날의 기억은 또 얼마나 선명한지 아니.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이별이 바로 너와의 이별이다.
머리 위로 벼락이 꽝 내리치는 것 같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해. 낡았다, 찢어지겠다, 버려라. 노래를 부르시던 어머니가 결국 더 참지 못하고 결단을 내리셨던 걸까. 어느 날 태연히 “버렸어.”라며 말씀하시고는 새 인형을 마련해오신 어머니는 아마 한동안 내 폭풍 같은 원망을 감당하셔야 했을 거야. 당장 다시 주워오라며 바닥에 드러누워 나라 잃은 백성처럼 서럽게 울었지. 나라가 뭐야, 나는 내 세상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너는 내 둘도 없는 친구였고 소중한 가족이었고 어둠 속에서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준 히어로였는데. 소중했던 만큼 많이 아프고 슬펐어.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 지금은 아주 옛날의 일이라 상처에도 많이 무뎌졌거든. 뭐, 이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 당시에는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릴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덤덤해지는 것. 그럼에도 세계는 여전히 흘러감을 아는 것. 그러나 아픔을 잊은 건 절대로 아니지. 내가 널 잊어버릴 리 없지. 이왕이면 네가 멀리멀리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한다는 마음이 있다. 어딘가의 쓰레기장에서 뒹굴고 있지만 않길 바라. 내가 아닌 누군가라도 좋으니 너를 꼬옥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길. 진심으로 바라며.
네가 떠나고 몇 년이 지났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어. 앞서 말했듯 나는 기억력이 정말로 좋지 않거든. 그런데 작년 어느 날이었을까. 기숙사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인터넷 쇼핑창 스크롤을 내리던 때였어. 그러다 내 눈길이 어딘가에 사로잡혔지. 익숙한 리본, 원피스, 부슬부슬한 털, 롭이어 귀… 드디어 널 찾은 거야!
나는 벌떡 일어나 폰을 붙잡고 들뜬 마음으로 손가락을 꾹꾹 눌렀어. 옵션 선택, 화이트, 장바구니 담기, 주문하기, 결제, 비밀번호 입력… 주문 완료! 나는 잠시 잊고 살았던 추억을 기쁘게 되새기며 널 기다렸어.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인지 몰랐다. 마침내 네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박스를 뜯었어.
비닐을 벗겨내고 널 다시 품에 안았단다. 오랜만에 만난 너는 참… 작았어. 분명 이 느낌이 아니었는데. 너는 좀 더 넓은 품으로 나를 감싸 안아주었는데. 알아, 내가 너무 커버린 거지.
나는 다시 네 리본을 매만지고 털을 쓰다듬었어. 먼지라고는 티끌도 찾아볼 수 없이 새하얀 토끼. 조금 단단하게도 느껴지는 풍만한 솜. 그럼에도 한결같이 까만 플라스틱 눈. 언제나 나를 바라보던, 아니 어쩌면 저 멀리를 바라보던 그 눈.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또 한 번 너를 안았어. 네가 품속에 파고들었고 나는 네 조그만 머리통 위로 얼굴을 묻었어. 그때 알았어. 내가 알던 너는 이미 오래전 그날에 멀리 떠나갔다는 걸.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토끼는 네가 아니라는 걸. 가슴 한 켠이 시큰해지는 동시에 뜨끈뜨끈한 애정이 피어올랐어. 이별은 오래전이었지만 너와 진정한 의미로 작별을 나눈 날은 바로 그때였어. 난 마침내 네게 손을 흔들어줄 수 있게 되었단다. 너무나 사랑하고 아꼈던 나의 작은 친구야.

그리고 나는 새로운 아이를 만났지. 너와 많이 닮아 푸근하고 어여쁜 토끼. 나는 베개맡에 아이의 자리를 마련해주었어. 이제는 인형을 안고 자지 않아도 밤이 무섭지 않게 되었거든. 그런 어색한 동거를 이어온 지도 벌써 1년이 더 넘었구나. 하지만 나는 다시 작별을 준비하려고 해. 이 아이는 곧 내가 사랑하는 조카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주러 갈 거야. 네가 내게 많은 걸 가져다주었듯이 또 많은 날들을 지켜주었듯이 이 아이도 분명 그래줄 테지.
사랑을 전하고 받는 일은 말이야, 누군가의 삶을 이전보다 조금 더 아름답게 꾸며줄 것이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발걸음에는 단단하게 힘을 실어줄 것이며, 무수한 꿈과 추억을 선물해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날의 포옹은 오늘날의 포옹으로 이어지고 그날의 눈물과 웃음은 다시 오늘날의 내게로, 미래의 누군가에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금 나는 그 아름다운 순환의 고리를 지나고 있다고.
토끼야, 다시 한 번 네게 감사해.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지도 모르지. 아니, 영영 곁에서는 떠나갔더라도 너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깡충깡충 뛰어놀며 살고 있지. 그런 너를 추억하며 나는 오늘도 사랑으로 살아간다. 분명 앞으로도 그럴 거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으며 어떤 이름을 가졌던지도 모르겠는 너에게
네 둘도 없는 친구가.

당선소감

언젠가는 완벽한 작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손을 흔드는 속도와 각도, 잘 가라고 말하는 톤은 어느 정도가 가장 적당한지. 마주 본 시선은 언제 떼어야 하며 등은 언제 돌려야 좋을지,
아무 말 없이 포옹하거나 짧은 키스를 남기는 것이 좋을지. 그렇다면 또 어느 정도의 세기로 껴안아야 하며 키스하는 부위는 어디가 가장 적절할지. 속도는, 시간은, 웃는 표정이 좋을지 우는 표정이 좋을지. 돌아섰다면 걸음은 주저 없어야 하는지 몇 번은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아쉬움을 드러내고 거둬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만 가장 완벽한 작별을 할 수 있을지. 이별의 순간에 미련을 남기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꼭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저는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편지지가 제 손을 떠나간 그 순간 살면서 처음으로 완벽한 작별을 해내었다는 후련함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명확한 형태를 정의 내리지는 못하겠네요. 다만 어떤 종지부, 까만 온점이 가슴에 콕하고 찍히는 기분이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각기 저마다의 완벽한 작별의 방식과 무수한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저만의 한 방식을 깨닫게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였던, 어쩐지 쑥스럽기도 한 저의 작별 과정에 동참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이 영광을 제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립니다.
편집부 선평


"혹시 OO를 '멀리 떠난 친구'라고 해도 되나요?"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회신했습니다. "여러분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기겠습니다." 답장을 보내고 나서도 어떤 사연이 닿을지 가늠할 수 없어, 지원자들의 편지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수백 통이 넘는 편지를 뜯어 보면서,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원자들이 '친구'로 호명한 대상은 다양했습니다. 대학 동기, 애인, 반려동물,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모두가 누군가의 친구였습니다.
다소 T스럽게 얘기해 보자면, '토끼 인형'이라고 하는 사물과 사람의 관계는 친구라기보다 일방적인 소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엔 누구나 한 번쯤 생명이 아닌 사물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합니다. 그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어른들은 '친구' 대신 '애착'이라고 표현하지요.
우리는 소중하지 않은 관계에서 이별을 말하지 않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운 이유는 그 관계가 남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화자에게 토끼 인형은 '생애 첫 이별'을 경험하게 한 존재였습니다. 어린 화자가 토끼 인형을 친구라고 여긴 것은 화자가 그 인형에게 쏟은 애정 때문입니다. 그 친구를 잃은 경험은 관계 맺기가 서툰 어린 화자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화자는 우연히 옛 친구를 발견하고 구입합니다. 화자에게 토끼 인형이 '새 인형'으로 대체된 사실은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새 인형을 다시 품에 안은 그 순간, 화자는 비로소 과거의 토끼 인형과 정말로 이별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모습은 같으나, 대상의 존재가 오히려 그 부재를 인지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화자는 이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 애착과 사랑을 다른 곳으로 양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비록 네가 그 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너에게 느꼈던 애정을 너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을 거야."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아픔을 받아 안는 성숙함이 종종 우리를 치유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폭이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 폭을 가만히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의 삶은, 분명 누구보다 풍요로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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