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제1회 <글월문예> 우수작

작품명: 사월 첫날의 날씨 속에

제1회 <글월문예> 우수작

작품명: 사월 첫날의 날씨 속에

익명,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교육과




안녕.
 
편지의 모든 시작은 안녕이지. 아주 가벼운 안부를 전하든 담담하게 헤어짐을 고하든 단지 안녕-이라는 말이 하고 싶어서 몇 장의 편지지를 구겨 버리든. 그런데도 이상하게 너에게는 안녕이라는 말을 건네기가 어색해. 몰래 좋아하던 사람 앞에 선 것처럼 쭈뼛거리게 되네. 말로 전하면 커다란 눈이 더 동그래지겠지. 우린 함께이지 않은 적 없었으니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나는 순식간에 스물이 됐어. 스무 살 넉 달 차의 나는, 조금 따가워지기 시작한 한낮의 햇볕에서 사월의 익숙한 무기력을 봐. 아스팔트 바닥에 눌어붙은 이름 모를 꽃잎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어때. 널 닮은 것 같아? 너도 봄이 오면 유별나게 슬퍼지는 스무 살이었으려나. 너는 목련을 정말 좋아하잖아. 그래서 아주 어릴 적부터 나에게 봄의 시작은 늘 목련이었어. 까만 밤을 배경으로 피는 흰 꽃들은 가만 보고 있자면 좀 속절없어지지. 여리게 움트는 것들을 바라보며 너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 있을까. 대개 발걸음이 들뜨고 아무런 염려 없는 봄날인 듯 웃고. 지나치게 젊은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딱 이맘때의 네 생각을 자주 해.
 
너는,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마이마이를 틀고 유재하의 1집 앨범을 듣는 스무 살이었댔지. <사랑하기 때문에>가 좋아서 큰맘 먹고 샀는데, 수록된 줄도 몰랐던 <우울한 편지>를 듣고 그만 울어버렸다고. 가방 안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꺼낸, 예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가 무엇을 말하려 했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그걸 읽은 사람의 눈도 그렇게 젖어 들었을까. 도로를 달리는 부산스러운 소음과 매캐한 더운 공기 속에서 들어찬 눈물은 작은 빛을 내어 부서지고. 테이프를 몇 번씩 돌려가며 침잠하던 너에게 얼마나 밭은 파도가 쳤을지. 

그에게도 스무 살이 있었고 너에게도 스무 살이 있었듯 이젠 내가 꼭 그만큼의 시간을 건너왔어. 스물에서 고작 여섯밖에 더 살지 못한 그를 기리며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가 열리는 걸 알아? 강의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재작년 대상 수상곡을 몇 번씩 돌려 듣는 스무 살의 나는 너와 말이 참 잘 통했을 거야. 우리가 같은 시절을 지날 수 있었다면. 테이프를 두 손으로 나눠 든 채 이 앨범은 스킷까지 모조리 좋다며 나란한 어깨를 맞부딪혔을 텐데. 모든 가사가 정말 시와 같다며 감탄하는 네 눈동자에 가끔은 눈물 대신 내 얼굴이 어른거릴 수 있었을 텐데. 나와 같은 자리에 쓱 들어가는 보조개가 아주 귀여웠을 텐데. 뭐 그런 생각들을 해. 그래서 요즘 내가 유재하의 앨범을 자주 들려주잖아.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스무 살이 되는 네 표정이, 네 콧노래가 그렇게 좋더라. 말간 얼굴에 설핏 비치는 내 친구를 나는 단번에 알아봐. 이럴 때면 노래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을까 생각하게 돼.
 

여기는 중앙도서관 4층이고, 창 바깥으로는 비에 젖은 나무가 늘어서 있어. 빗물에 흐드러진 벚꽃이 점처럼 흐드러져 보여. 탁자 위에는 먹다 남은 케이크 박스와 여러 사람에게 받은 생일 편지가 놓여 있어. 우리가 이렇게 환한 날에 만나게 될 거란 걸 알았어? 만우절에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만나서, 서로의 스물을 눈물겨워할 거란 걸 알아챌 수 있었어? 더는 희지 않은 목련이 사람들의 밑창에 끌리고 동시에 어디선가 다른 봄꽃이 뭉쳐 필 때면, 내가 태어난 날이 지체 없이 돌아오고 나는 너에게 줄 꽃다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 언젠가부터 내 생일이면 너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어져. 그리고 또 언젠가,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봄 중에, 한 번은 꼭 목련을 선물하고 싶다. 내가 목련을 선물할 때까지, 그러고도 한참의 봄을 꼭 같이 맞자.
 
보드라운 두 손을 잡아본 것 같다가도 봄날 아지랑이 너머 흐릿하기만 한, 아주 멀리 간 나의 친구, 엄마의 스무 살에게. 스무 살의 내가 이렇게 써. 너에게 이 편지를 전할 방법이 있을까. 아주 기적 같은 일이 태연한 낯을 하고 벌어져서, 그래서 어쩌면 정말 너와 마주한다면 그 수줍음 많은 소녀보다 내 얼굴이 더 달아오를 수도 있겠다. 

너는 나의 스물을, 서른을 보지만 난 그럴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꼭 힘주어 말해주고 싶은 건, 나와 같은 나이의 네가 그 노랫말처럼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느지막한 봄비와 함께 기온이 올라가면 반드시 목련의 봉오리가 터지듯 나도 너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그 사랑이 수십 년을 이어가 우리는 언제나 사월 첫날 같은 날씨 속에 있을 거라고. 무지 애틋한 얼굴을 하고 말해주고 싶다. 이 편지가 그의 노래만큼이나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만 줄일게. 사랑하는 엄마의 스무 살에게.
 
안녕!




당선소감



안녕하세요!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인 스무 살 OOO입니다. 당선 소감을 쓰자니 조금 쑥스럽습니다. 붐비는 기차 안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몇 줄씩 써내릴 때보다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감사드립니다. 수신자 없는 편지는 없다지만, 누군가 제가 쓴 글을 알아봐 주실 때면 매번 한가득 놀랍습니다. 사월 어느 날, 대학내일 매거진에서 우연히 ‘편지 좀 쓰는 대학생’이라는 문구를 본 순간 사람에 대한 사랑이 많은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편지라는 단어 앞에서는 언제나 그 애의 생일날 답장으로 받은 몇 줄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네가 사랑할 구석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임을 알아달라던 말, 이렇듯 편지라는 매개는 늘 저에게 아주 다정합니다. 

이번에는 유달리 더 다정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스무 살에게, 아주 멀리 떠난 내 친구에게, 애틋해 마지않는 어린 얼굴에게 눌러 적은 편지가 무사히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날로그의 힘을 믿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필압까지 모조리 받는 이를 향한 애정입니다. 

그런 마음을 목도하고도 눈물이 고이지 않는 날까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쭉 편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집부 선평


편지는 시간과 공간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펜을 들어 어디엔가 적어 보내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편지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안부를 전하고, 나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닿게 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편지를 받을 수 없는 ‘스무 살의 엄마’입니다. 화자보다 먼저 스물을 지난 엄마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평행한 다른 시간선 위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만난 적은 없지만 이미 너무 멀리 떠나 버린 친구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젊은 시절을 영영 만날 수 없습니다. 화자의 말처럼요. 

“너는 나의 스물을, 서른을 보지만 난 그럴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편지는 그 불가능을 무너뜨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화자가 유재하의 앨범을 들려줄 때마다 엄마는 “어김없이 스무 살이 되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마이마이로 <우울한 편지>를 듣다 울어 버린 스무 살과, 이어폰으로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듣는 스무 살. 두 사람은 사십여 년의 시차를 두고 친구가 됩니다.
 
만날 수 없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부질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화자가 전해질 수 없는 안부를 적는 이유는 단지 만남을 바라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곁에 있는 엄마를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일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편지는 수신인이 읽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눌러 적은 마음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사랑의 서사일 것입니다.

#대학내일#글월문예#우수작#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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