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크리스마스까지 3개월, 말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는 연습
두 명의 대학생이 꾹꾹 눌러 담아 왔던 마음을 잠시 펼쳐 보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어느덧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는 혼자, 누군가는 가족과, 또 누군가는 연인과 보내왔을 크리스마스. 그 계절이 다가오면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지 않나요?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평소 마음에 담아뒀던 친구에게 연락해본 적, 혹은 친구들과 모여 우리끼리 놀자며 솔로 파티를 결의했던 기억, 다들 하나쯤 있으실 텐데요.
이번엔 크리스마스를 곁들인 두 친구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이 친구들은 그 특별한 핑계 뒤에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마음 하나를 슬며시 옆에 두고 갑니다.
편지 01 | 9월 16일 #헤어진연인에게 - 익명 25살
영화 <이터널 선샤인>네가 있던 겨울
다시 만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때의 우리가 그리운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요즘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런가 봐. 이상하게 너와 함께했던 겨울이 자꾸 생각나. 사실 별거 없었잖아. 같이 밥을 먹고, 카페에 가고, 추우니까 손을 잡고 걷고.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한 걸 한 것도 아니었어.
그날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둘 다 수줍음이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도 못 하고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건 아직도 기억나.
그때는 그냥 좋았어.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아. 헤어지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됐어. 사람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
처음에는 너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어. 그런데 우리가 같이 듣던 노래를 들을 때, 같이 갔던 장소에 갈 때면 문득 네가 생각나더라. 정말 별것 아닌 순간들이 자꾸 떠올랐어.
내가 정말 너를 다시 만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그때가 그리운 건지. 어쩌면 너보다 너를 좋아했던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걸지도 모르겠어. 아무 이유 없이 네 연락을 기다리고, 별것 아닌 말 하나에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그냥 너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하루가 괜히 행복했어
그래서 더 모르겠어.
너를 보고 싶은 건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아. 우리가 겨울에 사귀어서 그런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너를 생각하게 돼.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크리스마스가 오면 너와 함께했던 시간과 그때의 추억들이 떠오를 것 같아.
벌써 우리가 헤어진 지 1년이 지났네. 우리의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아.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네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물었었잖아.
자기를 정말 사랑했었냐고
응.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했어.
너와 보낸 2년 9개월은 어떤 시간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었어.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오면 아마 네 생각부터 날 것 같아. 이제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여전히 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이상하고,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그래도 네 소중한 20대 초반의 시간을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지만, 아프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
편지 02 | 9월 16일 #멀어진친구에게 - 조혜니 25살

보통은 연인끼리 오붓하게 보내는 이미지가 강한 크리스마스인데, 괜히 기념일에 집에만 있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친해지고 싶은 동생이랑 농구를 보러 잠실에 갔었어. 가까워지고 싶었던 동생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 날이라 지금도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유난히 알고 싶고 나를 알려주고 싶어지는 상대가 생긴다는 거, 생각해보면 신비한 일 같아. 보통은 연인 사이에서나 겪는 과정 같지만, 친구 중에도 가끔 그런 사람이 있더라. 나는 대개 자기 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한테서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 같아. 아영이가 그랬어. 스무고개 하듯 조금씩 알아가야 하는 사람이었어.
우리는 크리스마스라고 나름 빨간색으로 드레스코드까지 맞춰 입고 농구장에 나란히 앉아 있었어. 그날 아영이랑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 우리는 유난히 잘 맞았어.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길 바라지만, 대화를 나눌 때마다 정말 척척 잘 맞았어.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웃음이 터지던 순간들이 참 좋았어.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아영이를 진짜 좋아하는 친구로 여겼던 것 같아. 이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조금 미운 마음도 있어서야.
갑작스러운 전개지만, 아영이는 학업으로 많이 바빠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연락도 만남도 편하지 않은 사이가 됐어. 속으로는 나만 못 만난 게 아니길 간절히 바랐어. 가장 아끼는 동생이었기에 계속 가깝게 지내고 싶었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름 값진 깨달음을 하나 얻었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면, 기대는 하더라도 실망은 하지 말자는 것. 내가 좋아서 마음을 보낸 건데 왜 돌려주지 않느냐는 태도는, 마치 은행강도 같은 거란 생각이 들었어. 맡겨놓지도 않은 돈을 찾으러 온 셈이니까.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제로는 아영이를 가끔 볼 때마다 조금씩 징징대긴 했어. 언니라는 체면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그저 아영이랑 놀고 싶고, 분좋카에 가서 비싸고 양은 적은 라떼에 조그만 디저트 하나 먹고, 사지도 않을 소품샵에 들어가서 귀엽다고 하면서 취향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혼자서 우정에 대해 고민하는 데에 약 2년을 썼어. 그리고 그 고민이 정리될 즈음, 아영이에게서 날이 선선해지면 회쏘 먹으러 가자는 디엠이 왔어.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필요한 시간과 적당한 때가 있다는 걸, 평생에 걸쳐 배우는 것 같아.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사람에 대한 감정은 각자 달라도, 그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꼈다는 점은 같았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100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여러분에게도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이번 기회에 그 마음을 슬며시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크리스마스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