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전공에 회의가 들어요

간절히 원했던 과에 입학했다.
from Reader / 신아연
 

초등학생 때부터 PD가 되고 싶어 미디어 영상학과에 입학한 1학년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 선택에 회의가 느껴집니다. 고작 2학기를 보냈지만, 전공을 배우면서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건지 의문이 듭니다.

 

평생 신나게 일할 직업으로 삼을지도 모르겠고요.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눈앞에 주어진 것을 하나씩 해나가라고 하네요. 하지만, 정말 하고픈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에 과 활동(영상 동아리 활동, 공모전 준비 등)을 하려니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과에 막상 입학하고 나니, 왜 제 생각이 흔들리는 걸까요. 이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작가님도 이런 시기를 겪었는지, 겪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네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누가 제 모습을 보기라도 했다면, 아마 청문회에 나온 이재용 부회장 저리가라 할 만큼 멍청해보였을 겁니다. 지난 회에 글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작가가 되고 나니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럽고, 심지어 글을 쓰기조차 싫어지는 아이러니를 겪었습니다. 물론, 첫해와 이듬해에는 신나게 썼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데뷔한 후 만 3년이 지나서부터, 글 쓰는 게 너무나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독자들의 기대는 점차 높아지고, 저 스스로 설정한 글의 기준 역시 높아졌습니다. 그럴수록 글을 쓰는 시간은 줄어갔고, 떠오른 소재들을 검열하는 시간만 늘어갔습니다. 결국, 오늘처럼 멍하니 네 시간 동안 모니터를 쳐다보며, 마치 청문회장에 끌려나온 죄인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3년째 이러고 있습니다. 한심한 모습 보여 드려 죄송하지만, 이게 바로 저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이럴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진화론을 믿는다면, 수렵 채취의 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해야 했으며, 창조론을 믿는다면 신으로부터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때부터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저는 여러 요소 중 실로 중요한 것이 바로 ‘노동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노동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노동자’입니다. 저는 문자 노동자입니다. 질문자님에게 현재 노동은 ‘학습’일 것이며, 이 학습을 토대로 이후에는 월급을 획득하는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할 것입니다.  

이야기가 많이 돌아갔네요. 핵심을 말할게요. 세상에 즐거운 노동이라는 건 없습니다. 돈을 받는 순간, 즐거웠던 취미는 ‘혹독하고 고된 노동’이 됩니다. 저의 경우 돌이켜보니, 제가 가장 즐겁게 쓴 글은 ‘원고료를 받지 않고 제 스스로 쓴 글’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신나서 평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섹스도 하루에 몇 번씩 평생을 매일 하면 신물이 나고, 맛집도 하루 세끼 매일 먹으면 다니는 것조차 지겹습니다(저는 실제로, 한 자동차 회사의 이벤트 덕에 프랑스에서 ‘미슐랭 레스토랑’만 8일간 다녔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지쳐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직업 따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인생은 이렇게 차갑다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다른 냉혹한 일들보다 자신이 택한 진로가 상대적으로 나아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D가 되기 싫다면, 그건 정말 되기 싫은 겁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찾아보면 됩니다. 이제 1 학년이니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정말이지 쇠털처럼 많습니다. 끝으로, 사견을 보탤게요.  

저도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습니다. 원래, 신문방송학의 전공 공부는 PD가 되려는 사람에게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실제로 그렇습니다). 전문대학이 아니라, 학문 중심의 종합 대학일수록 더욱 더 이론을 탐구합니다. 그리고 그 이론은 PD가 되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학문일 뿐입니다. 마치 인생에서 미적분은 필요 없지만, 대학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학을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이렇게 불합리합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시간이라 생각하세요. 저도 파이팅 할게요. 덕분에 저도 질문자님 생각하다, 이렇게 한 편 썼네요. 후후.
#803호#최민석#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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