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아빠, 무서운 얘기 해줘
아빠와 통화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Who + 조여름은?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시골 할머니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갈 때마다 한참을 걸어 올라야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부엌에선 전 지지는 냄새가 솔솔 났다. 고소한 냄새가 참 좋았다. 전쟁 후 지었다는 디귿자 모양의 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뀐 외양간을 제외하곤 그대로였다.
안방에 모인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얼굴이 발갰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어른들이 모여 있는 안방에 없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려주던 이야기꾼이라, 작은방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너희들, 이 아래 냇가 알지? 복숭아 나무들 사이로 흐르는 개울 말이야. 그쪽으로 다닐 땐 조심해야 돼. 혼자 다니면 안 되고 큰길로만 다녀야 되거든. 옆에 난 샛길로는 절대 혼자 걸으면 안 돼. 내가 어릴 때 말이다. 냇가에서 미역을 감다가 해 떨어지는 줄 몰랐는데….”
아버지가 운을 떼면 빨리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머리털이 우두두 서고 팔뚝엔 닭살이 돋았다. 잘난 척하던 사촌 오빠들도 이불을 붙잡고 오들오들 떨었다.
“그땐 가로등도 없었어. 밤이 되면 물 흐르는 소리만 졸졸 들렸지. 근데 너희 고모가 날 데리러 온 게 아니겠냐. 내 손을 잡고 소 끌듯이 데려가는데 손이 어찌나 차던지 몰라. 얼굴은 표정도 없이 파랬어. 뭔가 이상한 거야! 소름이 훅 끼쳐서 고모 손 뿌리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냅 다 뛰었지. 그날따라 길은 정말 천리만리 길었어. 그런데 대문 앞에 너희 고모가 있는 거 아니냐! 와 이제 왔노, 하면서. 그럼 아까 내 손을 잡은 그 사람은 누구지?”
악!! 어린 우리들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빠 얘기 듣는 게 참 좋았다. 사촌 오빠도 벌벌 떨게 하는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조금 더 커서는 아빠의 이야기들이 지어낸 얘기란 걸 알았다. 귀신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빠 옆에 앉아서 얘기를 듣는 일도 줄어들었다. 대학생이 되고 여름방학을 맞아 할머니 집을 찾았다. 나는 그간 많은 지식들을 배웠다. 정치와 경제가 돌아가는 문제를 공부했다. 도깨비 불은 오래된 나무에서 생기는 인작용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더는 아빠의 옛날 얘기에 흥미가 없어졌다. 시골에서 혼자 산책에 나선 나는 처음 보는 길로 들어섰다. 왼쪽엔 논과 저수지가, 오른쪽엔 산이 있는 아담한 길이었다. 십 분 정도 걷던 나는 오한을 느꼈다. 만물이 푸르러야 할 여름에, 오로지 이 길에 난 풀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노래를 불러봤지만 내 목소리는 산을 때리고 다시 내게 돌아왔다. 소름이 끼쳤다. 막다른 길도 없는 작은 시골길에서 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뛰었다.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했다.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냐. 그 길은 100만원을 준다 해도 안 갈 거다. 거긴 옛날부터 상여만 지나다니 는 길이야. 죽은 사람들만 다녀! 그 길에 들어서면 엄청 큰 황소도 울면서 주저앉았어. 우리 딸 이제 보니 용감하네.”
얼마 전 핸드폰을 열었더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나는 아빠 전화를 또 못 받았다. 아빠에게 전화했더니 밥은 먹었냐고 물으신다. 밤길 혼자 다니지 말라고, 차 많은 데 다니지 말라고 하신다. “내 나이가 몇인데요~”
하지만 아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때는 아빠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바보 같은 아빠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일 더하기 일 같은 공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있다. 아빠와 통화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사랑받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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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voice#20대 기고#8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