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28살 학생입니다. 늦은 나이에 입학해서인지, 또래들보다 젊게 생각하고 젊게 입는 편입니다. 저보다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서이기도 하겠지만, 근원적으로는 제가 아마 ‘어른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계속 소년처럼 하고픈 말은 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꾸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6살 어린 여자친구가 이런 절 보고 철이 없다고 하네요. 어른답지 못하다고 힐난해서, 급기야 절 떠날까봐 걱정까지 됩니다. 이제는 저도 성숙해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어른스러워질까요?

비슷한 메일을 다른 학생들에게도 받았습니다. 어떤 학생은 ‘어른과 꼰대의 차이점’을 물었고, 다른 학생은 ‘어른이란 과연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질문자님은 ‘어떻게 하면 어른스러워질지’ 물었고요. 이외에 유사한 메일까지 종합해보면, 질문은 이렇게 수렴됩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어른이 되는가?’

학생 때는 ‘가르쳐주는 이’가 많습니다. 교수도 있고, 선배도 있습니다. 그런데 졸업하고 나면 ‘일 시키는 사람’은 있어도, 진심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육체는 시장에 있지만, 영혼은 사막에 있는 것처럼 고독해집니다. 저 역시 사회에 나갔을 때, ‘선생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습니다. 해서, 제일 먼저 신경 쓴 게 바로 ‘혼자서 공부하는 법’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독서하고, 다시 머릿속을 비워냈습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문했던 것에 대해 심플한 답이 떠올랐습니다.

복잡하고 세세하고 쓸데없는 것은 시간의 강에 떠밀리어 가버리고, 단순하지만 중요한 것들만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예컨대, ‘돈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같은 주제들을 하나씩 질문하고, 고민한 뒤, 다시 비워냈습니다. 제대 후, 하루에 하나씩 이렇게 고민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는 ‘술에 대한 자세’, ‘관계에 대한 자세’, ‘돈에 대한 자세’, ‘소비에 관한 자세’ 등, 살면서 다뤄야 할 것들에 대해 세부적인 태도와 철학을 가지게 됐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닙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결정해야 할 것 천지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살지, 누구에게 투표를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누구에게 화를 내고, 누구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지, 끊임없이 결정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 결정들이 쌓여, 결국 생의 색깔이 정해집니다. 그렇기에 나만의 생각과 태도는 내 생의 뿌리처럼 중요합니다.

그리고, 늙어가는 노인이 아니라, 영혼이 성숙해가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불합리와 부정한 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그로 인해 잃을 것이 생긴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꼰대’가 아닌 ‘어른’은 현실에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고, 내가 희생하더라도 ‘그릇된 현실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데,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애써 노력해서 형성한 ‘자신만의 견해’를 언제든지 바꾸고, 폐기처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세상의 기준 역시 조금씩 살기 좋은 방향으로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초보 어른으로서 구축한 ‘태도와 자세’는 허물 수 없는 성벽이 아니라, 흐르는 물에 잠시 묶어둔 부표와 같습니다. 더 멋진 생각과 더 나은 자세가 발견되면, 그 새 흐름에 묶어둔 부표를 과감히 떠내려보내는 것, 이게 바로 ‘좋은 어른이 되는 자세’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변하고, 끊임없이 깨어지는 것, 저는 이것이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훌륭한 어른이 되시고, 여자친구와도 오래오래 사랑하시길.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