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비독립일기] -1화- 오빠가 돌아왔다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오빠

지난해 2월, 나의 형제는 이삿짐을 옮긴다며 새벽 3시에 온 가족을 지하주차장으로 불러냈다. 렌트한 스타렉스에서 지난 4년간 그의 자취 생활을 책임졌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몽사몽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너 번 오르락내리락하니 이삿짐 옮기기가 끝났다. ‘이 시간에 유난스럽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단 졸리니 자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제대로 실감나지 않았다. 네 가족이 다시 한집에 살게 됐다는 게.
     

  이튿날 아침, 여느 때처럼 엄마와 아빠는 출근 준비를 했고, 대학원생인 오빠도 학교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가 좋아하는 장조림 끓는 냄새가 집 안을 가득 메웠다. 평화로웠다. 하지만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나는 앞으로의 고난을 직감했다. 샤워기가 바닥에 나뒹굴고, 클렌징 폼은 저 멀리 가있었으며, 렌즈 케이스 뚜껑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래, 그래도 오늘은 형제가 집에 돌아온 기쁜 날(가족 공식 경사)이니 1절만 하자. 나는 정말 가볍게 왜 샤워기가 바닥에 있느냐고 물었다.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일 다시 쓸 거야.” 아무 의미 없는 물음이었단 걸 깨닫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욕실 안에서는 각종 향들이 진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생협에서 오래 활동해온 엄마는 집의 치약, 샴푸, 린스, 보디 워시 등을 계면활성제와 인공 향이 없는 제품으로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나는 반년 전부터 생협 제품의 장점에 수긍하고 사용을 시작한 참이었다.  

그런데 이 달콤한 냄새는? 안 봐도 뻔했다. 자취방 근처 대형마트에서 여러 개를 묶어 파는 행사 제품들을 집어왔으리라. 오랜만에 맡는 인공 향에 머리가 어질했다. 그간의 자취 생활동안 오빠의 생활이 얼마나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었는지 실감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삿짐을 옮겼던 새벽 3시도 자취생 오빠의 생활 패턴에서는 초저녁에 속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 부분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1절을 할 영역이라 잠자코 있었지만.
   

나갈 준비를 마친 가족들은 장조림이 올라온 식탁에 둘러앉았다. 엄마는 1절로 샴푸가 아닌 집 밥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간의 자취 생활 동안 네가 얼마나 집 밥을 먹지 않고 바깥 밥만을 먹었으며, 그것이 몸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건강이 나빠지면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일그러지며….  

엄마의 일방적인 말들이 쏟아지는 동안 나는 마음이 매우 편안하고 조금은 즐겁기까지 했다. 오빠도 드디어 엄마의 잔소리 궤도 안에 진입한 것이다. 나는 이제 외롭지 않다! 혼자가 아니다! 입 꼬리를 씰룩거리며 속으로 만세를 부르려는데 심상치 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엄마의 모닝 잔소리에 침묵하는 나와 달리 오빠가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밥 잘 해 먹었고, 밥은 학교를 다니니 안 사 먹을 수 없고,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단다. 공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나는 조용히 장조림만 집어먹다가 서둘러 일어섰다. 이런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까지 평화 유지 노력을 했다가는 과로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한참 만에 오빠의 반격에 수긍했다. 그렇게 가족 공식 경사인 ‘형제 오신 기쁜 날’의 첫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807호 - 비독립일기]

Writer 김도연 Illustrator 남미가  
#독립일기#비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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