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다를 수 있는 용기

남들과 다르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성장하면서 내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넌 그냥 달라”였다. 부모님의 직업으로 인해 불과 다섯 살 때부터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무려 아홉 번을 이 나라 저 나라로 전학 다니며 살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반 아이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본에서 귀국해 처음 한국의 초등학교로 전학 왔을 때는 한국어가 서투르다는 이유로 짝이었던 반장 남자아이가 담임선생님 몰래 나를 괴롭히고 따돌렸다. 다른 아이들은 반장이 무서워 나서거나 도와주지도 않았다. 전학생을 향한 텃세인가 싶어 처음엔 참아보려고 했지만 나의 ‘다름’이 그 아이에게 대체 어떤 직접적인 해를 미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수업 도중 책상을 뒤집어 엎어버렸다. 그제야 담임선생님은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상황 판단을 하고 짝을 바꿔 주었다. 그렇게 ‘다름’은 내가 겪어야만 했던 트라우마였다.  

그 후 성장기를 외국에서 보낸 뒤 다시 한국의 대학에 왔을 때도 “넌 달라”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내 의견을 무시하기 위해 그 말을 악용할 때 면 나는 그 부당함에 한껏 저항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름’을 ‘틀림/나쁨’과 같은 뜻으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겁도 없이 선배들에게 데모의 방법론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면, 대답에 궁해진 그들은 “너는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우리나라가 처한 아픔을 이해할 수가 없어”처럼, 내 입을 쉽게 막을 수 있는 동문서답으로 소통을 차단했다.  

하지만 ‘(남들과) 다름’이라는 한때 나의 콤플렉스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작가로서 자유롭게 글을 쓰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특장점이 되었다. 사회에서도 ‘다름’은 그 사람만의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훨씬 존중받게 되었다. 언뜻 보면, 사람들도 예전에 비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된 듯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주로 피상적인 차이다. ‘당찬 자기 표현’으로 불리는 것들은 대개 가변적인 일상 탈출이거나, 일시적으로 남들 사이에서 튀는 것을 즐기는 정도에 불과하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상대적으로 엇비슷한 성향을 가진 주변 친구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특별히 내가 남들과 다름을 의식할 일도 없다.  

그러다가 대학이라는 보다 큰 사회에 들어오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마다 다른 환경과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부대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고, 처음에는 그 다름에 당혹해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선배 들이나 동기들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며, 유연하게 변하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영향을 받는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때로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주변 사람들과 불화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바를 도저히 내 기준으로는 납득할 수가 없는 경우가 생긴다. 아무리 입장 바꿔서 생각해본들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주변에 쉽게 순응하지 못하는 내가 괴롭다. 특히 대학이라는 환경은 일견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로울 것 같지만, 은근히 획일성이나 집단주의를 ‘커뮤니티’나 ‘협동 정신’이라는 미명하에 강요하기도 한다. 내가 남들과 다를 때. 내가 가진 생각이 소수의견일 때. 본질적이고,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가령 학생들이 한가득 모인 강의실에서 교수(혹은 선배) 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어떤 논지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나는 ‘찍힘’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안고서라도, 모두가 있는 앞에서 손을 번쩍 들고 정면으로 그 교수(혹은 선배)를 향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그런 피로가 쌓이다 보면, 저들 말대로 혹시 나야말로 틀린/잘못된 생각을 가진 게 아닐까, 라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에 직면하게 된다.  

마음 편하게 살아가려면 다수 의견에 맞추는 시늉이라도 하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인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어른 으로서의 첫 관문으로―독립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그리고 어른이 갖춰야 할 대표적인 자질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진실할 것’ 이다. 주변과 불화해도 자신의 마음만은 속이지 않도록. 자유라는 것은 그렇게 자신이 품은 생각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모순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나는 남들과 다른가? 그 ‘다름’이 나 라는 사람을 설명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다름’이란 ‘나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인데, ‘나다움’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소신과 가치관이 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새내기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남들과 다르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남들과 같은 것이 안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속이면서 남들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 부족을, 불안정한 자아를, 타인들의 인정으로 채우려는 무모한 시도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게 맞겠지, 라며 너무 쉽게 내면의 목소리를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앞에서 말 못 하는 대신,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그 좌절된 자아를 폭력적으로 풀어내며 해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굴절된 자아만을 키울 뿐이다.  

나의 고유한 색채를 스스로가 존중해줄 수 있다면 상대의 다름도 존중할 수 있는 힘과 아량을 가지게 된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기에 저마다의 빛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름이 꼭 완벽할 필요도 없다. 나 자신의 전혀 잘나지 않은, 미흡한 부분들이야말로 스스로를 더 사려 깊게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러한 불완전함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낸 인생이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이다. ‘너’와 ‘내’가 서로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인정하고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아름답고 성숙하고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넌 그냥 달라.” 한때는 나를 외롭게 만든 상처의 말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내가 그 누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임을 안다. 그간 많은 대학생들이 나에게 개인적인 상담 메일을 보내, 남들과 다른 자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피력해왔다. 모든 형태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사실 정면 돌파밖에는 없다. ‘다름’을 용기 있게 드러내 보이는 것, 생각보다 그것이 힘들지 않음을 경험하는 것,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그 갈등을 스스로 감당해보는 것,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807호 - THINK]

Writer 임경선 slowgoodbye@naver.com 작가, 『자유로울 것』, 『태도에 관하여』 저자
Illustrator 키미앤일이
#고민#고민상담#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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