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연애가 망해도 인생은 남는 것
사랑은 가장 크게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연애(煙靄). 연기와 아지랑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3월이고, 이제 곧 따뜻한 봄날이 올 테고, 어느 볕 좋은 날에는 아지랑이가 연기처럼 피어오를 것이다. 그러면 연애(戀愛)하기 참 좋을 것이 다. 연애(戀愛)의 기운은 연애(煙靄)와 같이 사뿐하고 간질간질하게 마음속에 차오르겠지.
그 기분, 잘 안다. 나이가 있으니만큼 나도 연애를 제법 해보았다. 옛날부터 연애만 하면 그 사람과 함께 머리가 하얗게 세어 손잡고 오솔길을 걷는 상상을 했다. 십 대 때부터 누가 좋아지면 그렇게 믿곤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다. 백세 인생인데 얼마나 긴 시간을 한 사람과 보내겠다고 믿은 거야, 대체. 그렇지만 연애를 했다 하면 무척 열심인 나는 이십 대 때도 삽십 대 때 도 철석같이 그렇게 믿었다. 이 사람과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함께할 거라고. 열정이 오랜 시간을 먹고 화학 변화한 그 무언가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값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 모든 연애는 차례로 다 망했다. 차이기도 하고 차기도 했다. 짧게 사귄 사람도 있었고 몇 년씩 사귄 사람도 있었다. 실연 후 흘린 눈물만 해도 그 얼마며, 마신 술만 해도 얼마인가. 죽으려고 한 적도 있다. 용기가 없어 그때 못 죽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연애로 힘들고 아프던 건 결국엔 다음 연애로 치유되었다. 다음 연애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드디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면 ‘아,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그 사람과 헤어졌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일종의 위로다. 어찌 보면 사랑은 인생의 가장 큰 위로 같다. 종교를 진지하게 믿기엔 과학 서적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사실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세상에 나타난데 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의미를 찾기엔 완벽하게 허무한 삶에서, 한 존재가 다른 수많은 존재들 중에 하필이면 바로 그 단 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막연히나마 ‘아,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이 세상에 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사건이라니, 대단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종교가 주는 위로에 필적하는 위로다.
누가 종교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전능한 신보다는 무능한 인간들 사이의 사랑을 더 믿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사랑은 인간에게 닥치는 가장 근사한 이벤트이자, 동시에 가장 크게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사랑은 개체에서 전체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본 자만 이 인류를, 나아가서는 전 존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여기는 바로 그 마음이 결국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불러오는 신비라니. 사랑의 강력한 힘은 그와 나 사이를 경계 짓는 울타리를 부숴버린다. 사랑만이 전면적으로 상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또 기꺼이 상대를 내 안에 들여앉히는 기회가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는 넓어진다. 진정한 사랑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이유다.
사랑은 처음에는, ‘빠지는’ 듯 느껴진다. 어디론가 떨어지는 것 같 기도 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떠밀고 가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잘 유지하려는 서로의 노력과 기술이 없이는 사랑이 건강하게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끝난다. 다행인 것은 사랑이 끝나도 사랑한 경험과 넓어진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물론 나의 경우 저주와 눈물바람, 술 취한 다음 날 통화기록 보고 경악하기 등등 다양한 활동으로 에너지를 다 소진한 뒤에야 그런 성숙한 감사의 시간이 찾아왔지만.
언젠가는 나와 헤어진 사람이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파 견디기가 힘들었다. 견디다 못한 나는 ‘최대의 복수는 그들 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무라카미 류의 말을 염불처럼 되뇌며 어떻게든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노력이 빛을 발하며 사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해 살았더니 애초에 왜 복수하려고 했는지조차 잊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그게 좋은 실연 극복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나는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그래선지 요즘 나는 사랑이 받고 있는 두 가지 오해가 안타깝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에서 사랑을 사치로 여긴다는 것. 스펙 쌓기와 취업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사랑할 시간도, 여유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인생 자체의 목적이자 이유였다. 그러니 빡빡한 삶 사이로 만약 사랑의 조짐이 찾아온다면, 인생에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니 억누르지 말기를. 좋은 사랑이라면 동력이 되고, 배움이 되고, 안정과 위로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랑이 썸이라는 이름의 게임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물론 사랑의 초기에는 썸이 필수다. 무턱대고 “좋아합니다! 사귀어 주십시오!”를 외치는 것은 무례하기 때문이다. 상대도 내게 마음이 있는지 알기 위해 신호를 주고, 돌아오는 신호를 해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썸이 마냥 썸으로만 머무르는 것은 내 생각엔 에너지 낭비다. 사랑은 게임이 아니며, 아주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진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마치 내가 사랑에 달관한 사람처럼 굴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지금껏 연애가 다 망해온 사람이란 말이다! 하지만 자신 있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연애가 망해도 그 경험은 인생으로 남는 것. 눈부신 시간이 있어야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다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 빛나던 연애들을 다시 하고 또 망하는 쪽을 택하겠다.
이상의 ‘권태’에 이런 부분이 있다.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 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 이니 말이다.”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봄 볕이 길어지니 마음속에 간질간질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여러 분도 나도, 올봄엔 잘 좀 해봅시다.
그 기분, 잘 안다. 나이가 있으니만큼 나도 연애를 제법 해보았다. 옛날부터 연애만 하면 그 사람과 함께 머리가 하얗게 세어 손잡고 오솔길을 걷는 상상을 했다. 십 대 때부터 누가 좋아지면 그렇게 믿곤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다. 백세 인생인데 얼마나 긴 시간을 한 사람과 보내겠다고 믿은 거야, 대체. 그렇지만 연애를 했다 하면 무척 열심인 나는 이십 대 때도 삽십 대 때 도 철석같이 그렇게 믿었다. 이 사람과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함께할 거라고. 열정이 오랜 시간을 먹고 화학 변화한 그 무언가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값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 모든 연애는 차례로 다 망했다. 차이기도 하고 차기도 했다. 짧게 사귄 사람도 있었고 몇 년씩 사귄 사람도 있었다. 실연 후 흘린 눈물만 해도 그 얼마며, 마신 술만 해도 얼마인가. 죽으려고 한 적도 있다. 용기가 없어 그때 못 죽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연애로 힘들고 아프던 건 결국엔 다음 연애로 치유되었다. 다음 연애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드디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면 ‘아,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그 사람과 헤어졌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일종의 위로다. 어찌 보면 사랑은 인생의 가장 큰 위로 같다. 종교를 진지하게 믿기엔 과학 서적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사실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세상에 나타난데 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의미를 찾기엔 완벽하게 허무한 삶에서, 한 존재가 다른 수많은 존재들 중에 하필이면 바로 그 단 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막연히나마 ‘아,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이 세상에 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사건이라니, 대단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종교가 주는 위로에 필적하는 위로다.
누가 종교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전능한 신보다는 무능한 인간들 사이의 사랑을 더 믿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사랑은 인간에게 닥치는 가장 근사한 이벤트이자, 동시에 가장 크게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사랑은 개체에서 전체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본 자만 이 인류를, 나아가서는 전 존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여기는 바로 그 마음이 결국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불러오는 신비라니. 사랑의 강력한 힘은 그와 나 사이를 경계 짓는 울타리를 부숴버린다. 사랑만이 전면적으로 상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또 기꺼이 상대를 내 안에 들여앉히는 기회가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는 넓어진다. 진정한 사랑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이유다.

사랑은 처음에는, ‘빠지는’ 듯 느껴진다. 어디론가 떨어지는 것 같 기도 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떠밀고 가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잘 유지하려는 서로의 노력과 기술이 없이는 사랑이 건강하게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끝난다. 다행인 것은 사랑이 끝나도 사랑한 경험과 넓어진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물론 나의 경우 저주와 눈물바람, 술 취한 다음 날 통화기록 보고 경악하기 등등 다양한 활동으로 에너지를 다 소진한 뒤에야 그런 성숙한 감사의 시간이 찾아왔지만.
언젠가는 나와 헤어진 사람이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파 견디기가 힘들었다. 견디다 못한 나는 ‘최대의 복수는 그들 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무라카미 류의 말을 염불처럼 되뇌며 어떻게든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노력이 빛을 발하며 사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해 살았더니 애초에 왜 복수하려고 했는지조차 잊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그게 좋은 실연 극복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나는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그래선지 요즘 나는 사랑이 받고 있는 두 가지 오해가 안타깝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에서 사랑을 사치로 여긴다는 것. 스펙 쌓기와 취업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사랑할 시간도, 여유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인생 자체의 목적이자 이유였다. 그러니 빡빡한 삶 사이로 만약 사랑의 조짐이 찾아온다면, 인생에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니 억누르지 말기를. 좋은 사랑이라면 동력이 되고, 배움이 되고, 안정과 위로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랑이 썸이라는 이름의 게임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물론 사랑의 초기에는 썸이 필수다. 무턱대고 “좋아합니다! 사귀어 주십시오!”를 외치는 것은 무례하기 때문이다. 상대도 내게 마음이 있는지 알기 위해 신호를 주고, 돌아오는 신호를 해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썸이 마냥 썸으로만 머무르는 것은 내 생각엔 에너지 낭비다. 사랑은 게임이 아니며, 아주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진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마치 내가 사랑에 달관한 사람처럼 굴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지금껏 연애가 다 망해온 사람이란 말이다! 하지만 자신 있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연애가 망해도 그 경험은 인생으로 남는 것. 눈부신 시간이 있어야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다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 빛나던 연애들을 다시 하고 또 망하는 쪽을 택하겠다.
이상의 ‘권태’에 이런 부분이 있다.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 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 이니 말이다.”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봄 볕이 길어지니 마음속에 간질간질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여러 분도 나도, 올봄엔 잘 좀 해봅시다.
Writer 김하나카피라이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저자
Illustrator 키미앤일이
#연애#사랑#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