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쁜 버릇

나는 예민하다는 말이 싫었다.
   
트위터를 하다가 눈에 띈 리뷰가 있었다. 정신의학과전문의 하지현 선생님이 일자 샌드의『센서티브』라는 책을 읽고 쓴 서평이었다. 이 글은 몇 가지 테스트로 시작한다.

  1. 남들이 언쟁을 하는 불편한 상황이 되면, 나와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긴장이 되면서 덩달아 힘들어진다. 
  2. 시끄러운 쇼핑몰이나 대형 서점에 갔다 오면 괜히 피곤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
  3.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기준점이 높은 편인데 그걸 지키지 못하면 남들이 칭찬을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4.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거나 부탁하느니 차라리 내가 혼자 하고 만다.

이 중 3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당신은 민감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나는 더 많은 해당 사항을 인심 좋게 열거할 수 있다.  

3M 귀마개를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너무 북적이는 카페도 신경 쓰이지만, 너무 조용한 카페도 마찬가지로 신경 쓰인다. 아무리 유명하고 맛있다는 음식점에 가도 흘러나오는 음악이 마음에 안 들거나 너무 크거나, 시끄러운 손님이 많다면 다시 나온다. ‘성격이 지랄 맞다’, ‘까칠하다’, ‘깐깐하다’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예민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예민하다는 걸 몰랐다는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는 예민하다는 말이 싫었다. 그 말에 함의된 모든 뉘앙스가 너무 싫었 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었던 것은 “나는 예민하다”라는 말 속에 ‘그러니까 당신이 알아서 조심하라’는 묘한 권력성이 느껴진다는 점이 었다. 언제나 나는 털털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주장했고, 그렇게 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오래 알고 지내는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날 목사님은 일 때문에 홍대에 올 일이 있으셨고, 마침 홍대에 있었던 나는 목사님을 만나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나는 문득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나 얘기했다. 별거 아닌 친구의 말 한마디가 왜 이렇게 며칠째 거슬리는지 모르겠다고, 왜 점점 사람이 쪼잔해지는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상하다고. 내 얘기를 가만 듣고 있던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수진씨는 자기가 되게 털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요. 수진씨는 되게 예민한 사람이에요.”나는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에이- 저 예민하지 않아요.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정도인 걸요.”그런데도 목사님은 이상하게 완강했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목사님이 저를 얼마나 자주 본다고 그렇게 다 안다는 듯이 말씀하세요.”나중에 이렇게 말하는 내 언성은 조금 높아져 있었다. 목사님은 이렇게 얘기하셨다.“저는 지금 수진씨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제가 생각하는 수진씨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뿐이에요. 왜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나요. 수진씨는 예민해요. 그걸 부정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언제나 컸잖아요, 생각해봐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예민하게 살아요. 괜찮아요.” 



충격적이었다. 내가 너무나 싫어해오던 ‘예민하다’는 단어가 알고 보니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적절하게 설명해 주는 말이었다는 것이. 목사님의 말이 영 잊히지 않아 오랫동안 거듭해서 나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그냥 지나쳐왔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버스 안이건, 카페 안이건, 어느 장소를 가도 거슬리는 소음이 싫고, 안 좋 아하는 음악이 들리는 게 싫어서 3M 귀마개를 꼽고 다녔던 것, 털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 들에게 언제나 성격 좋게 굴지만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예민함 때문에 ‘알고 보면 까칠하고 못된 사람’이 될 때가 많았다는 것, 그런 평가를 듣는 게 싫어서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 자체를 겁먹게 되었던 것, 상대적으로 친밀한 관계인 가족들이나 연인들과는 툭하면 부딪혔고 나의 문제는 그들에게 언제나 사소했다는 것, 그래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흥분하고 난리냐” 혹은 “나니까 네 성격을 받아준다”라는 말이었다는 것,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미친 사람처럼 화를 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밤이면 조용하고 익숙하게 자기혐오에 취하다 잠들었다는 것…….  

목사님의 말씀 덕분에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나를 혐오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는 것.  

나는 예민하다. 목사님은 예민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속 편하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민한 성격으로 사는 일은 괜찮지가 않다.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지치는 게 일상이 된다.  

자신이 특별히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굳이 자기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나의 예민함이 못마땅하다.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날 이후, 이것만은 명심하려고 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음’ 을 자기혐오로 기어이 끌고 가선 안 된다는 것. 나를 미워하는 일이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나의 예민함을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봐주었던 목사님 덕분에 내 성격을 나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런 태도를 배운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안심하곤 한다. 이것은 나의 생존에, 내가 나로 사는 일에 아주 강력하게 요구되는 근육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단련시켜나갈 것이다, 이 근력을.



Writer 요조(뮤지션) mayonnaizoh@gmail.comIllustrator 키미앤일이  
#요조#예민함#자기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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