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비가 정말 많이 내리는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법

비가 온다고 여행이 망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떠난 여행인지?  
흰 종이 공포증에 걸려서 치유 목적으로 여행을 떠났다. 보통 대학생들이 과제 시즌에 많이 걸리는 병이다. 개똥 같은 글을 싸지른 벌로 독자들에게 몰매를 맞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여행을 갈 수밖에. 1년 중 가장 바쁠 때 과감히 휴가를 내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 상태로 있어봤자 하등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으니….  

오키나와를 영업한다면? 
가깝고 따뜻하다. 2시간 거리인데 우리나라보다 봄이 먼저 온다.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벚꽃을 볼 수 있다. 물론 비가 안 내린다면. 3월까진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이 많아 여행하기엔 좋지 않다. 그 때가 바로 내가 여행했던 시기. 7~8월엔 서핑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제주도와 비슷해 대중교통보단 렌터카를 이용해 여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해안도로인 58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5분마다 비취색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숙박비도 도미토리 1박에 2~5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  

레인맨이 알려주는 비 오는 날의 여행법 
‘저 친구는 착한 일을 많이 했으니 이번 유럽 여행에는 비를 내리지 말기로 하지’라고 날씨가 생각할 것 같은가? 천만에. 어딜 가나 날씨는 제멋대로다. 비 때문에 여행을 실패로 돌리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비행기 표를 끊는 순간 여행의 성패를 운에 맡기는 꼴이라니! 비가 온다고 여행이 망하는 건 아니다. 비 오는 날엔 너도나도 실내로 모여 들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차피 계획대로 안 된다’ 는 마음가짐으로 사람들과 신나게 놀자. 계획에는 없었지만 여전히 여행은 계속되는 중이다.



   
츄라우미 수족관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한곳을 바라보며 서 있는 커다란 홀이 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대형어류인 고래상어가 있는 곳이다. 고개를 돌려 수조를 보니 내 몸의 10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의 고래상어 두 마리가 보였다. 태어나서 본 생물 중 가장 컸다. 그런 생물이 아주 천천히 유영하는 모습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멍하니 앉아 한참을 봤다. 오후 6시가 넘자 폐장 안내 방송이 나왔고, 아이를 데리고 온 어른들은 자리를 떴다. 북적이던 고래상어 앞이 조용해지자 그 움직임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날씨가 마음을 삐뚤게 먹은 것이 확실했다. 해가 뜨면 비가 내렸고 해가 지면 비가 그쳤다. 그 타이밍이 너무 정확해서 비가 그치면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 정도였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온 게 그렇게 못마땅한가. 이렇게 가만히 당할 수만은 없었다. 야경을 찍기로 했다. 비 내리는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역시나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얼른 밖으로 나가 신나게 야경을 찍었다. 좋은 사진을 몇 장 건지려는 찰나 다시 비가 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다, 진짜.  
    
처음엔 숙소 옆 작은 바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잘 셈이었다. 그런데 새벽 2시까지 온갖 술을 마셔버렸다. 바 옆자리 카즈보(52)씨의 인생사를 들으며 계속 마셔댔다. 여행 내내 비가 와서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입에서 온갖 욕이 튀어나왔다. 날씨가 너무 좋잖아! 오늘 점심 비행기로 집에 가는 날인데! 숙취에 허덕이며 나하 공항 옆 세나가지마 섬으로 갔다. 처음으로 맑은 하늘을 찍었다. 사람들이 왜 슈퍼마리오 복장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사진을 찍고 그걸 물어보러 가다가 화장실에서 토를 했던 것 같다.  
 


Weekly Traveller 김준용    
#여행#오키나와#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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