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비독립일기] -4화- 아침밥을 먹지 않을 자유
엄마에겐 아침 시간의 자유로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1교시 수업이 있는 아침에는 늘 정신이 없다. 9시 정각에 출석체크를 하고, 1분이라도 늦으면 얄짤 없다. 아무리 서둘러도 왜 눈썹 그릴 시간은 매번 부족한지. 빠르게 눈썹을 포기하고 가방을 둘러멘 어느 날 이었다. 총알처럼 튀어나갈 기세로 방문을 열었으나 현관문까지 바로 도달하진 못했다. 현관으로 가려면 식탁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밥은?”
따가운 시선과 어김없이 들려오는 두 글자.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준비가 늦어져서 오늘은 아침밥을 못 먹고 가겠다고 말했다. 미처 그리지 못한 눈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엄마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활시위를 당기더니 순식간에 ‘따다다다다’ 쏘아댔다. 5분만 일찍 준비하면 될 걸 꼭 그렇게 늦냐, 조금만 일찍 일어나지 그랬느냐, 아니 어제 일찍 잤어야지, 몇 시까지 맥주를 마신 것이냐….
레퍼토리는 늘 비슷하므로 이때는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 아침에는 5초도 5분 같아서 길게 반박할 수가 없다. 멋쩍은 미소와 함께 엄마의 화살을 요리조리 피하며 슬금슬금 현관으로 향한다. 재빠르게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연다. 오늘도 뛰지 않고는 방법이 없겠다.

이 집에는 룰 같지 않은 룰이 하나 있다. 청소와 빨래를 안 해도 되고, 늦게 귀가하거나 오후가 다 돼서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절대 빼 먹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아침밥이다.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에 나가든, 몸 상태가 어떻든, 엄마가 집에 있든 없든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침밥주의자’ 엄마는 가족들의 건강한 식사를 챙기는 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는 엄마가 사랑으로 포장된 가사 노동, 특히 아침밥을 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또한 시간이 없을 때, 속이 안 좋을 때, 도저히 먹고 싶진 않을 땐 아침밥을 패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아침밥을 먹지 않을 자유가, 엄마에겐 아침 시간의 자유로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내 귀를 확 잡아끈 친구의 이야기. 친구네 집에도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단다. 그는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는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려 1년 동안 밥상에 앉아 밥은 안 먹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결국 부모님은 아침밥에 대한 결정권을 그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비산동(우리 동네)의 전설로 전해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했다. 1교시가 있는 날에는 바쁘다며 매일 밥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가고 기말고사 즈음이 되자 엄마는 내게 “오늘도 밥을 못 먹어서 어떡하냐”고 걱정할 뿐, 더 이상 밥을 먹으라고 강요는 하지 않았다. 한 학기 만에 이만큼 이루어 내다니! 이런 속도라면 금방이라도 자유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엄마의 집념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지. 나의 자유는 학기 중에만 유효했을 뿐, 방학이 되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더 자고 싶은 날에도 꾸역꾸역 아침밥을 먹는 게 힘들었지만, 학기 중에 다시 시작 될 쟁탈전을 위해 에너지를 아껴두기로 했다.
지금은 아침밥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크고 중요한 문제로 엄마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땐…. 음, 모르겠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도연이에게 맡겨야지.
Illustrator 남미가
#아침밥#비독립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