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사색을 배운 4300km PCT
진정한 사색의 길이었다.
삶의 방향을 잃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영화 포스터를 마주쳤다. 반사적으로 이끌려 들어간 영화관에서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스크린 속 주인공의 삶은 나락에 빠져 있었다. 변화가 절실했던 그녀는 PCT(Pacific Crest Trail)를 선택했고, 험난한 길 위에서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려 노력했다. 그녀의 선택에 큰 위로를 받은 나는 궁금해졌다. ‘저 길은 어떤 길이길래 나락에 빠져있는 한 사람의 삶을 위로할까?’ 그렇게 먼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PCT는 미서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300Km를 걸어서 여행하는 장거리 트레일이다. 낯선 자연과 언어, 사람들에 둘러싸여 걸었던 6개월간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바로 ‘사색’이었다. 흔한 물과 전기, 쉬어갈 그늘도 없는, 모든 것이 결핍된 곳에 서니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관계에 얽매였던 학창시절, 대학 진학에 실패했던 20살, 대학의 문을 두드렸던 24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카메라를 잡았던 순간, 아스팔트 정글 같은 서울에서 고독함에 몸서리치던 날들. 그리고 소중한 줄 모르고 지냈던 가족, 친구, 사랑….
바쁜 일상 속에 놓쳐왔던 소소한 행복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매일 마주하는 대자연의 품 속에서 지금까지 내 삶을 이뤄온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자기혐오와 오만함으로 젊음을 낭비했던 순간까지도. PCT는 내 그림자에 가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준, 진정한 사색의 길이었다.
관계에 얽매였던 학창시절, 대학 진학에 실패했던 20살, 대학의 문을 두드렸던 24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카메라를 잡았던 순간, 아스팔트 정글 같은 서울에서 고독함에 몸서리치던 날들. 그리고 소중한 줄 모르고 지냈던 가족, 친구, 사랑….
바쁜 일상 속에 놓쳐왔던 소소한 행복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매일 마주하는 대자연의 품 속에서 지금까지 내 삶을 이뤄온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자기혐오와 오만함으로 젊음을 낭비했던 순간까지도. PCT는 내 그림자에 가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준, 진정한 사색의 길이었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하고 나서 가장 기대했던 구간은 모하비 사막이었다. 처음 겪는 사막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영화를 보고 호기심을 품었던 곳이어서일까? 기대 속에 만난 사막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죽일 듯이 내리쬐는 햇볕, 찾아보기 힘든 그늘과 물. 때문에 평균 4~5리터의 물을 짊어져야 했고, 한낮의 더위를 피해 야간 하이킹을 해야 했다. 매일 반복되는 더위 때문에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고, 여러 날 걷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그럼에도 상상만 하던 모하비 사 막을 걷는 순간은 진정 꿈을 살아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워싱턴 주로 올라오고 캐나다 국경에 가까워지니 트레일의 색깔이 바뀌었음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계절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고, 이 길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더 이상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레일 막바지에 이르러 가장 내 가슴을 울렸던 생각은 ‘과정의 아름다움’이었다. 서른개 넘게 생긴 물집들, 모기와 진드기로 망가진 피부, 곰의 습격을 받아 가방을 통째로 잃었던 순간 등 모든 과정들이 모여 트레일을 노랗게 혹은 빨갛게 물들인 것은 아닌지.

6개월의 산행을 위해서는 음식 조달이 필수적이다. 오레건에 선 주로 호수에 앉아 다음 보급지에 대한 일정을 짜곤 했는데, 크레이터 호수는 미국에서 가장 깊은 호수여서 관광객이 넘쳐났다. 예전에 ‘Deep Blue Lake’라고 불렸다는데 보는 순간 단박에 이해가 됐다.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대자연을 바라보는 순간,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얻는 게 뭐냐던 친구의 물음이 떠올랐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걷는 게 힘들 때쯤, 내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은 항상 마음을 훔치고 걸음을 붙잡았어. 그리고 저절로 셔터에 손이 가더라고. 이거면 된 거 아냐?”

Traveller 황재홍 roror4706@gmail.com
한 장의 사진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 사진작가이자 세계 여행자
한 장의 사진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 사진작가이자 세계 여행자
#여행#P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