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예비군의 편지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받았다.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받았다. 노란 개나리가 핀다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왜 이들이 보내는 편지는 하나같이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 일까. 처음, 이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스무 살이 되었던 나는 처음 맛보는 소주를 마시며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술을 마시기 위해 대학교에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쯤 편지한 통이 집에 도착했다.여자라곤 어머님과 여동생밖에 알지 못하던 내게 연애편지 따위가 오진 않을 터.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편지를 열어보았다. 입영 통지서였다.
입영 통지서를 본 그 순간을 이야기하자면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춘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제 자리에서서 입영 통지서를 읽고 또 읽었다. 혹시 잘못 온 건 아닌지. 아니면 핸드폰 요금 고지서나 시시껄렁한 보험 상담은 아닌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입영 통지서가 분명했다. 그날부터 나는 예비 군인이 되었다. 내 시간은 입영 통지서를 받아 든 순간부터 정지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서였을까.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손에 쥔 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장롱 속 깊숙이 처박혀 있는 군복을 꺼냈다. 잠기길 거부하는 바지를 억지로 잠가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군인 아저씨였다. 내가 과연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카드 대금 납기 기한도 지키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런 걱정을 뒤로 한 채 훈련소로 향했다.
스무 살이 되었던 나는 처음 맛보는 소주를 마시며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술을 마시기 위해 대학교에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쯤 편지한 통이 집에 도착했다.여자라곤 어머님과 여동생밖에 알지 못하던 내게 연애편지 따위가 오진 않을 터.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편지를 열어보았다. 입영 통지서였다.
입영 통지서를 본 그 순간을 이야기하자면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춘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제 자리에서서 입영 통지서를 읽고 또 읽었다. 혹시 잘못 온 건 아닌지. 아니면 핸드폰 요금 고지서나 시시껄렁한 보험 상담은 아닌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입영 통지서가 분명했다. 그날부터 나는 예비 군인이 되었다. 내 시간은 입영 통지서를 받아 든 순간부터 정지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서였을까.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손에 쥔 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장롱 속 깊숙이 처박혀 있는 군복을 꺼냈다. 잠기길 거부하는 바지를 억지로 잠가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군인 아저씨였다. 내가 과연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카드 대금 납기 기한도 지키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런 걱정을 뒤로 한 채 훈련소로 향했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나와 같은 군복을 입은 청년이 버스 정류장에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다리를 까딱거리던 그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사는 이 동네에도 나와 같은 ‘예비군’이 있었구나. 예비군이 아닐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드를 입고 담배를 사러 나온 저 녀석도, 반듯한 정장 차림에 저 회사원도 유사시엔 총을 들어 조국을 지킬 예비군이었다.
우리는 지금 인사하기도 모호한 이웃 주민일지 몰라도 언제든지 뜨거운 전우애를 뽐내며 피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넘치는 애국심을 참지 못하고 그의 곁으로 슬그머니 가 앉았다. 그는 흘깃거리며 나를 보더니만 옆으로 조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버스가 도착했다.
도시를 벗어난 버스는 황량한 논밭 사이를 가로지르며 마지막 종착지, 예비군 훈련소를 향해 갔다. 훈련소로 가는 길을 지루했다. 창밖 에 펼쳐진 뿌연 하늘을 보며 노래를 들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듣고 있자니 괜히 울적해졌다.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를 제외하면 나와 같은 예비군들밖에 없었다. 각기 다른 군복과 전투화를 신은 우리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잠을 자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예비군 역시 전역모를 푹 눌러쓰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도 기다리고 기다렸던 전역 날이 있었 을 것이다. 그날, 그도 마찬가지로 전역모를 쓰고 부대를 걸어 나갔을테다. 전역모는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한 부대원들이 주는 작은 선물이다. 그 선물엔 그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1년 9개월간 그들이 염원했던 소망과 매일 바랐던 꿈들이 고운 오색 실들로 박음질되어 있다. 그래서 전역모는 작은 선물인 것이다.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버스가 정차했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했다. 저 멀리 훈련소가 보였다. 앞자리에 앉았던 그도 잠에서 깬 듯했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그의 전역모 뒤편에 적힌 ‘섹스하고 싶다’라는 문장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긴 채 급히 버스에서 내려 훈련소로 향하는 무리에 끼었다.
WRITER 김동하 kamdunga2002@gmail.com 문학과 여행 그리고 살사 댄스를 좋아하는 청년
우리는 지금 인사하기도 모호한 이웃 주민일지 몰라도 언제든지 뜨거운 전우애를 뽐내며 피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던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넘치는 애국심을 참지 못하고 그의 곁으로 슬그머니 가 앉았다. 그는 흘깃거리며 나를 보더니만 옆으로 조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버스가 도착했다.
도시를 벗어난 버스는 황량한 논밭 사이를 가로지르며 마지막 종착지, 예비군 훈련소를 향해 갔다. 훈련소로 가는 길을 지루했다. 창밖 에 펼쳐진 뿌연 하늘을 보며 노래를 들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듣고 있자니 괜히 울적해졌다.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를 제외하면 나와 같은 예비군들밖에 없었다. 각기 다른 군복과 전투화를 신은 우리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잠을 자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예비군 역시 전역모를 푹 눌러쓰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도 기다리고 기다렸던 전역 날이 있었 을 것이다. 그날, 그도 마찬가지로 전역모를 쓰고 부대를 걸어 나갔을테다. 전역모는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한 부대원들이 주는 작은 선물이다. 그 선물엔 그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1년 9개월간 그들이 염원했던 소망과 매일 바랐던 꿈들이 고운 오색 실들로 박음질되어 있다. 그래서 전역모는 작은 선물인 것이다.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버스가 정차했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했다. 저 멀리 훈련소가 보였다. 앞자리에 앉았던 그도 잠에서 깬 듯했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그의 전역모 뒤편에 적힌 ‘섹스하고 싶다’라는 문장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긴 채 급히 버스에서 내려 훈련소로 향하는 무리에 끼었다.
WRITER 김동하 kamdunga2002@gmail.com 문학과 여행 그리고 살사 댄스를 좋아하는 청년
#20's voice#예비군#편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