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비독립일기] -5화- 용돈 생활자가 사는 법

기왕 선택한 쌀벌레 인생!
   
나는 용돈을 받는다. 나이가 몇인데 부모에게 손을 벌리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돈을 버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본 결과 경제적 자립 시기를 최대한 뒤로 미루리라 다짐하게 됐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정한 독립은 경제적 독립이야.” 뭐, ‘진정한’ 독립 좀 안 하면 어때, 라고 생각할 즈음 부모님으로부터 용돈 예산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떤 용도로 얼마를 쓸 것인지 적어서 내자 협상 테이블이 열렸고, 쌍방의 조정 과정을 거친 후 약간 삭감된 액수의 용돈이 책정됐다. 돈에 대한 협상을 노동 현장이 아닌 집에서 먼저 배운 셈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려면 지낼 공간이 필요하고, 먹을 밥이 필요하고, 입을 옷이 필요하다. 대중교통도 타야 하고, 가끔 친구도 만나야 하며,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를 타코야키 트럭을 위해 가슴속에 늘 3000원 정도 품고 다녀야 한다. 돈에 쪼들리면 삶의 질도 급격히 쪼그라든다.  
    
그것을 마음 깊이 느낀 건 코트가 필요했던 지난 겨울이었다. 세일 중인 코트, 마치 날 위해 제작된 듯한 핏 모두 운명적이었지만 이내 잡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장 돈을 많이 벌지만 옷은 몇 벌 없는 아빠, 티 한 장도 살까 말까 하는 엄마….  

얼마 전, 나의 소비에 대해 지적하는 엄마에게 “용돈은 내 돈이니까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잖아!”라고 말하자 “그게 왜 네 돈이야”라는 답을 들었던 터였다. 나는 오랫동안 코트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엄마에게 “잘 샀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스타일인지까지 고려해야 했다.  

아, 누구를 위한 코트인가. 결국 나의 행복이 가족의 행복이기도 하다는 꽃 중의 꽃 ‘자기 합리화’를 피워내며 코트를 구매했지만, 새 옷을 들고 나오는 내 얼굴은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용돈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에서 육체적 편안함을 보장하지만, 거의 모든 소비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정신적 고통과 심심찮은 수치심을 동반한다. “그걸 그 돈 주고 샀어?” 등등, 돈을 주는 이들의 온갖 코멘트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정해진 용돈은 학교 다니면서 꼬박꼬박 밥만 먹어도 아슬아슬한 액수였다. 그렇게 몇 학기를 보내자 주머니와 정신이 둘 다 피폐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지출부터 줄여보기로 했다.  

첫 주자는 학교에서 매일 먹는 밥값이었다. 고장 난 전자레인지를 한 학기째 바꿔주지 않는 학교에 건의를 넣었고, 본격적으로 도시락 생활을 시작했다. 저녁에 냉장고를 뒤져서 반찬을 만들고, 시간이 없을 땐 집에 있는 반찬들을 탈탈 털어 담았다.  

집 냉장고에는 언제든 네 명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들이 들어 있었기에 공간의 비독립은 이럴 때 빛을 발했다. 시험 기간에는 두 끼도 거뜬했다. 학점 관리보다 도시락 싸기에 더 열과 성을 다하는 바람에 엄마는 도시락 먹으러 학교에 가냐며 의아해했다.  

이 생활은 바닥 난 통장 잔고로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점과 속이 더부룩한 외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큰 기쁨을 주었다. 도시락 생활이 이어지자 친구와의 차 한 잔이나 영화 한 편을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누군가는 혀를 쯧쯧 찰지도 모른다. “나 같으면 차라리 돈을 벌겠다!” 이런 내 모습이 쌀벌레 같다고 해도, 기왕 선택한 쌀벌레 인생! 할 수 있는 데까지 소소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싶다.

Illustrator 남미가  
#비독립일기#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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