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무지했던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방법

지방러의 꿈을 향한 첫 페이지
 신안이라는 섬 안에서 문화교류란 1도 없는 삶 속에서, 20살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라는 자격으로 육지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육지에 올라와서도 내 스스로의 고난과 역경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채 어느 지방대학교의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내가,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던 나의 첫 페이지를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양지근 | 목포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21학번
현 사회복무요원 복무중

이미지 캡션


" 우리 학교는 홍보를 너무 못해요 "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일 먼저 알아본건 '교내 홍보대사' 였다. 1학년이였다 보니, 단순히 전공 강의로는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난 면접으로 대학교에 합격했으며, 당시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 우리 학교의 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


 그 순간 너무 당황했지만, 난 마음을 추스리고 " 우리 학교는 홍보를 너무 못해요 "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내가 학교 홍보대사에 들어가 홍보에 이바지 하겠다." 라고 말을 했고, 면접 전형으로 최초합격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면접에서 한 나의 발언을 지키기 위해, 교내 홍보대사 미디어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꿈을 향한 첫 발디딤이었다.



" 이런걸 왜 만들어? "
이 활동을 통해, 난생 처음 촬영용 카메라를 만져 볼 수 있었고, 직접 편집을 하고 학교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활동을 하던 중 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 우리 영상을 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은데 계정을 어떻게 홍보할 수 있을까? " 이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바로 '숏폼' 이었다.

지금은 트렌드를 대표하고 있는 콘텐츠로 성장하였지만, 내가 활동한 당시에는 흔히 말하는 '음지 문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몇몇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숏폼을 활용하고 있었고, 담당자와의 상의 끝에 '챌린지'를 진행하였다.

물론 결과는 반반이었다. 커뮤니티에서는 ' 왜 한국에서 일본인이 유행한 챌린지를 하냐 ', ' 보기 싫다 ' 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 오히려 숏폼 때문에 채널에 관심이 간다 ', ' 이게 요즘 필요한 콘텐츠가 아니냐 ' 라는 의견으로 갈리며 학생들끼리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콘텐츠의 조회수는 계속해서 누적되었고, 평소에 1,000회도 겨우 넘기던 조회수가 1만 회를 넘어서며 효과는 확실해졌다.

이후 숏폼 콘텐츠를 적극 제작하며 SNS 유입과 콘텐츠 조회수는 급상승 하였고, 시간이 지난 2025년에도 우리 학교의 계정은 숏폼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물론 변화하는 시대와 트렌드에 따라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다. 무모했지만 나의 도전이 나 자신과 교내 홍보대사 동료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큰 전환점이 되었을거라 생각한다.



" 정말 할 수 있을까 "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3년이 되었고, 동시에 교내 홍보대사 팀장직을 끝으로 마치게 되었다. 예전처럼 강의와 근로장학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즉 정체기가 와버린 것이다. 내가 직접 찾지 않는 이상, 경험의 기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다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은 매우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장 성장 해야하고 열심히 달려야할 시기에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체기를 멈추기 위해 노트북을 열어 대외활동 공고를 찾아보았다.

이때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 신한은행 대학생 홍보대사 '였다. 홍보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청춘' 그리고 '열정', '기회'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적합했다. 나는 바로 지원 사이트에 들어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최대한 내가 가진 경험 그리고 열정을 제한되어 있는 글자수에 넘칠만큼 집어넣으며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덜컥 서류 합격을 헤버린 것이었다. 이름만으로 유명한 대외활동이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활동이었기 때문에 서류합격은 더더욱 기대를 못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합격수기를 계속 검색하면서 예상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답변하면서 면접 준비를 해나갔다.

그리고 면접 3일 전
덜컥 입원을 하고 말았다.



 심한 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오게 된 것이다. 보통 염증 수치를 기준으로 장염을 판단하는데, 난 입원해야할 수치의 3배에 도달했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많이 놀라했었다. 그래서 결국 입원복과 링거를 맞은 상태로 비대면 면접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잠시 용모가 단정하지 않더라도, 이 활동에 대한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단정한 복장을 입어야 하는 면접인데 입원복을 입고 면접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 할 수 있을까? " 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하지만 면접당시 면접관 분들은 내가 입원한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고, 부득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면접에 참여한 부분에 있어 매우 열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덕분에 최종으로 합격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계기로 앞으로 모든 활동과 과제 앞에선 열정적인 자세를 취해야겠다라는 큰 다짐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활동한 끝에 개인 우수상과 최종 우수(2등)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더 써내려가고 싶은 말은 많지만, "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 라는 물음에 해당되는 사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은 미숙했지만 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한창 놀 시간을 나의 결과물을 쌓는 것에 투자했다. 비록 어딘가에선 나보다 먼저 앞서나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자신을 포용하고 격려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숙제들을 마무리해갔다.

 아무래도 나에게 원동력은 내 스스로를 받아드리고 자학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위로 성장해나가야겠다는 다짐과 도전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지방대학교의 미디어 홍보대사라는 작은 집단에서 시작해 대기업 대외활동에서 첫 번째 성과를 이뤄내며 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고 있는 지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해 그 시간을 투자하고자 한다.

 이 다음 챕터에도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해 있길 바라며, 일기장과 같은 나의 글을 읽는 친구들 그리고 읽지 않더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쫓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원동력을 찾아가며 자신의 꿈에 도착해있길 바란다.



 내가 비록 조금은 아플지라도, 기회가 남들보다 늦게 찾아오더라도,
나만의 원동력을 찾는다면 누구나 하나 쯤은 가질 수 있는 성장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꿈을 위해 도전하고 달려나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대학생 #대외활동 #꿈
댓글 1개
현이
2025.08.10 16:00
저도 지방에서 대학교를 온 입장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도전을 하며 다양한 성과를 내신 것을 보고 자극받고 갑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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