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살자, 우리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고픈 사람들의 이야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거야."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이라는 노래가 과거 인스타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가사를 보기만 해도 청춘 같지 않은가? 낭만이란, 젊음이란,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라는 말,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괜찮을 거라는 말. 왠지 모르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쉽게도 현실은 노래와 다르다. 낭만보다는 야망이, 젊음보다는 노련함이, 사랑보다는 혐오가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가치들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실은 자주 있다. 낭만보다는 스펙을 쌓고 앞으로 빨리 달려나가야 하며, 멈춰 서도 안 되고, 쉬어서도 안 되고, 뒤처져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세상.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보단, 내가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세상.
하지만 나침반 없이 떠나는 항해는 결국 방향을 잃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빨리 가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낭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나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느리더라도 나만의 보폭으로 나아가는 법을 아는 것이 이 세계의 유일한 낭만이길 바라며 이 글을 세상의 모든 20대들에게 바친다.
01. "편지의 신중함이 좋아요."

박윤서 |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22학번
편리함의 시대에서 진심을 전한다는 것
편리함의 시대, 극효율의 시대, 빨리빨리의 시대를 넘어 이른바 챗GPT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세상에서 '진심을 전하는 일'이란 꽤나 촌스럽고 밍밍한 일처럼 느껴진다. 직접 고른 선물 대신 기프티콘을, 손편지 대신 SNS 메시지로 간단하면서도 쿨하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익숙한 요즘. 좋아하는 사람과 연락하기 위해 며칠을 기다리고, 직접 뜬 목도리와 종이학 천 마리를 선물하고, 손으로 꾹 꾹 눌러 쓴 손편지를 전하는 건 아마.. 구석기 시대쯤 사람들이나 했던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모두 그렇게 진심을 전했다. 조금은 서툴고 느리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따뜻했던 마음들이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연애편지가 모아져 있는 상자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분이 주고 받은 수많은 편지들엔 투박한 말투와 꾸밈없는 고백, 끊임없는 기다림과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종이에 새겨진 글씨들은 많이 바래지고 옅어졌지만 그때의 서로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은 아직도 너무 선명했다. 그날부터 손편지를 정말 좋아하게 됐다. 그런 투박하지만 따뜻한 마음들이 참 좋았다.
새하얀 종이에 새까만 글자를 적는다는 일
나는 손편지를 쓸 때면, 그 어떤 일을 할 때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진다. 가장 아끼는 펜과 종이를 꺼내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예쁜 단어와,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예쁜 글씨를 쓴다. 편지에는 "전송 취소"기능이 없기에, 편지를 쓰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한 마음을 한 단어씩 써내려 간다. 이런 습관이 쌓이다 보니, 일상에서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신중함이 드러났다. 평소 말을 툭툭 내뱉던 내가, 편지를 쓰는 습관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새하얀 종이에 새까만 글자를 적듯 조심하여 말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는 마찬가지로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나는 다시 그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마음들을 받았다. 그렇게 손편지가 내게 알려준 신중함은, 결국 나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나만의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02.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지만, 빵은 내 레시피대로 되니까요."

정서현 |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24학번
요즘 누가 빵을 직접 만들어 먹어?
빵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맛있고 예쁜 빵이 넘쳐나는 시대. 동네 작은 빵집부터 유명한 체인까지, 어느 곳에서나 쉽고 간편하게, 그리고 만족도 높게 맛있고 비주얼도 예쁜 빵을 쉽게 살 수 있다. 그렇기에 그런 세상에서 제빵사도 아닌 내가 굳이 모든 재료들을 사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계량컵을 꺼내어 그램을 맞추고, 오븐 앞에서 빵을 굽고, 다시 식히고, 그 위에 크림과 과일들을 올리는 이 모든 과정은 누군가에겐 지독한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빵을 만드는 것은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유일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완성되는 일이었다. 삶은 늘 예측할 수 없고, 내가 아무리 애써도 내 손을 벗어나는 결과가 많다. 하지만 빵을 만드는 과정만큼은 내가 정한 레시피만 지킨다면, 내가 원하는 맛과 모양대로 비교적 정확하게 만들어진다. 어지럽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그 단순하고 명확한 결과가 큰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 순간은 내가 빵을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베이킹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조금 더 크고 확실하게 다가왔다. 내가 직접 만든 빵을 먹었을 때 느껴지는 차원이 다른 만족감, 사진에서만 보던 반짝이는 케이크가 실제로 내 눈앞에 구현되는 그 과정들은 나에게 매번 새로운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은 내가 다른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로 이어졌다. 빵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결과로 돌아오는 경험은, 거대하고 압도적이고 잘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나도 결국엔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예전에는 지레 겁먹고 포기하던 일들도, 이제는 '조금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붙잡게 된다.
03. "걷다 보면, 내 작은 세상에서는 문제였던 게 이 넓은 세상에서는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수인 |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 24학번
가끔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나에게는 취미가 하나 있다.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나를 다시 단정하게 만들어주는 나의 소중한 취미는 '굳이 돌아서 집에 가는 것'이다. 요즘처럼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시대에, 굳이 한 두 정거장 먼저 내려서 굳이 더 오래 걸리는 길을 돌아서 가는 것은 어쩌면 비효율적인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 내 마음과 시야가 좁아졌다고 느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건 걷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서 길을 걷다 보면 시장에서 딱딱이 복숭아가 두 바구니에 8천 원이라고 외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노란색 학원 차에서 내려 하얀색 태권도 도복을 입고 뛰어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골목길 사이에서 망가진 채 깜빡이는 가로등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인다. 그렇게 넓은 세상 속 내가 다시 보인다. 나의 좁은 생각과 시야에서 벗어나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나에게 걷는다는 건 단순히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과 시야를 환기시키는 '나만의 숨통'인 셈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나를 다시 세운다
예전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그 복잡한 머릿속을 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워있거나 방 안에만 있으면서 그 생각에 매몰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문제는 나의 전부가 되어 있었고, 해결되지 않으면 내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꺼내 준 게 걷는 일이었다. 걷다 보면 내 작은 세상에서는 문제였던 것이 이 넓은 세상에서는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넓은 세상에는 정답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를 다시 진정시킨다. 그렇게 걸으면서 나는, 어지럽던 세상 속에서 다시 나만의 중심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마음이 복잡할 때 잠시 걸어보면 좋겠다. 꼭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어도 괜찮고, 예쁜 노을이 지는 시간이 아니어도 좋으니 그 길에서 세상을 보고 다시 나를 세우는 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끝으로 내가 걸으면서 자주 속으로 중얼거렸던 마법의 문장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또 다시 헤메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대학생 #낭만 #나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