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선배를 사랑했던 83745가지 이유

이탈리아에서 만난 그 선배
그 선배는 제가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간 이탈리아 교환학생 중에 만난 , 저보다 4살이 많은 언니였어요. 같은 학교 선배는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에서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가까워졌죠.
닮고 싶었던 면은 여유와 자기이해력
제가 만 19살에 훌쩍 이탈리아로 떠날 수 있었던 건, 제가 그만큼 무모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떠날 당시엔 그게 좋았었는데 이탈리아에 도착하고 3-4개월간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이탈리아 생활이 아니었거든요. 3명이서 쓰는 좁은 기숙사도 불편했고, 친구를 많이 만들지도 못했고, 내가 이탈리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죠. 그러다 S선배를 만났어요. S선배는 제가 생각하던 이탈리아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직접 집을 구해 이탈리아 사람들과 함께 살며 이탈리아어 실력도 늘리고 아침엔 커피타임을 가지고 저녁엔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정말 이탈리아에 녹아든 모습요. S선배가 했던 모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짬과 여유가 부러웠어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것. 그걸 제일 닮고 싶었고요.
이상향에 가까웠던 그 선배, 질투가 나진 않았나요?
제가 닮고 싶은 선배로 바로 s선배를 꼽은 건 그만큼 질투와 동경과 고마움 그 모든 감정을 쏟아부은 대상이라 그런 것 같아요. 이탈리아에서 살 적에 그 선배와 함께 내가 꿈꾸던 생활을 하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면 꿈에서 깬 것 같아 허무함을 느낀 적도 많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질투나 허무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어요. 그만큼 제가 그 선배를 통해서 제 자신을 잘 알아나갔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 선배를 닮고 싶어 이것까지 해봤다!
제가 지금 휴학을 하고 호주 멜버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중이에요. 여기 도착하자마자 집을 구해야 했었는데 S선배가 생각이 났죠. 그래서 저도 열심히 발품 팔아 외국인 친구들과 살고 있어요. 지금 하우스메이트인 친구들과 엄청 친해졌어요 ! 그리고.. 나만의 루틴 찾기? S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저것 경험해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 취향도 열심히 찾고요. 멜버른에서는 즉흥적인 커피 데이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 선배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선배가 저에게 항상 제가 어린 시절의 자신 같다는 말을 하면서 엄청 잘 챙겨줬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저도 저와 닮아 보이는, 어리숙해 보이는 동생들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가요. 선배처럼 챙겨주기도 하고요. 선배가 아니었으면 저는 그런 동생들에게 저를 겹쳐보고 정을 못 줬을 것 같아요. 일종의 동족혐오랄까요 ㅎㅎ 어떤 방면으로는 제 모습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팔방미인 학회장 그 선배
한 학년 위의 학회장 선배였어요. 같은 과여서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고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닮고 싶은 면은 체력과 사회성, 노력하는 모습
그 선배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갓생러‘였어요. 그 선배가 학회장이었거든요. 학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홍보 피피티 발표를 하던 날 자신의 성적표를 툭 까면서 ’내가 다 도와줄 수 있다 이리로 와라‘고 하던 게 기억나요. 저 같으면 학회장 자리 하나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총학생회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여기저기 잘 어울리고 사회성도 좋았어요. 옷도 잘 입었고요. 처음에는 그냥 대단하다는 감상이었는데, 자꾸 보다 보니 저 체력과 사회성, 노력하는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선배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사실 제가 학회를 든 것도, 성적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신경 쓰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던 건 어떻게 보면 그 선배의 영향이 있었을 거에요. 학교를 다니면서 그런 갓생러 선배의 학교생활을 계속 접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공부나 경쟁에 그렇게까지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고맙기도 해요, 본인은 아마 아직 모르겠지만요 ㅎㅎ
그 선배에게 한마디?
선배는 모르겠지만, 선배 덕분에 좀 더 제 삶을 진지하게 대하게 된 것 같아요. 노력하면 얻어낼 수 있는 것이꽤 많다는 사실도 알았고요. 너무 고마워요 !

만약 이 글을 읽고 생각나는 선배가 있다면 우리 한 번 그 선배의 애착후배가 되어보자. 동경하는 선배가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 진로의 길잡이가 되기도, 타지 생활의 버팀목이 되기도 하니까!
또 그렇게 쌓인 관계와 질투와 동경 그 사이 어딘가의 감정은 어느새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배가 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