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뽑기방에서 천 원으로 어릴 적 나를 꺼냈다
우리가 인형 한 마리에 왜 이렇게 진심이냐고요?
"모른 척 지나치기엔 너무 반짝이는 그곳"
요즘 20대에게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친구와 걷다가, 데이트 중에, 심지어 혼자서도 슬쩍 들르게 되는 그 공간.
바로 인형뽑기 가게다. 소위 말하는 핫플이 따로 없다. 당장 대학가 근처만 가도 인형뽑기 가게가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길을 걷다 인형뽑기 가게만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발을 딛는 순간, 하루 종일 유지하던 어른 코스프레를 잠시 멈추고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
인형을 뽑고 있는 나 (결국 못 뽑음)인형뽑기 가게를 가득 채운 귀여운 캐릭터들.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노랫소리들이 더욱 우리를 기대하게 한다. 20대가 좋아하는 귀여움이 가득한 그 공간을, 우리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우리 세대는 이토록 인형뽑기에 진심일까?' 혹시 그 속에는 우리 각자의 사정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
" 내안의 초딩, 아직도 뽑기 기계 앞에서 살아 있음 "
나와 뽑기방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초등학생 시절, 동네에 인형 뽑기 방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나와 친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 되어주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모여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놀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때는 인형 뽑기가 단순히 '재미'였고, 누가 누가 많이 뽑는지 '경쟁'이기도 했다.
500원으로 인형을 뽑으면 그날의 영웅이 되었고, 실패하면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기도 했다. 그땐 그게 전부였다.

물론 가끔은 욕심이 지나쳐 이런 사고가 발생하기도..
출처: 뉴데일리
그런데 그때 끝난 줄 알았던 이 놀이가, 20대가 된 지금, 다시금 우리의 삶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그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 그리고 사뭇 다른 마음으로 다시 그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물론 때로는 정말 인형이 가지고 싶어서 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던 것 같다. 술 마시고 들뜬 상태에서, 데이트 도중에, 시험을 망친 날에. 더 이상 그 곳은 나에게 초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공간은 그대로일지라도, 이제 그 공간 속의 나는 많이 성장해 버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곳에 가면 과거의 추억과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느낀다.
“20대, 뽑기방에서 추억을 소비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대학생이 어른처럼 느껴졌고, 성인만 되면 원하는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지갑 속 돈도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 지갑 사정은 그때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한 판에 고작 500원, 운이 좋으면 단돈 500원에 귀여운 인형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지.. 대학생들의 얇은 지갑 사정을 고려하면, 이보다 합리적인 소비가 있을까?
“한 판만 해보자”라는 생각, 그리고 옆 친구의 "야, 너 한 판만 더하면 뽑을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한마디. 그 조합이면 끝이다. 우리는 결말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다시 한 번 지갑을 연다.
출처: 무한도전
결국 인형은 못 뽑고 지갑만 가벼워졌지만, 우리는 다시 그곳을 찾는다. 함께 웃고 떠든 그 기억이 남아서. 이번엔 진짜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또 찾게 된다. 마치 잠깐 들러도 괜찮은 작은 놀이터처럼,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500원짜리 위로라도 필요한 우리(feat. k-힐링)”
사실 우리도 안다. 우리가 뽑기방에 가는 건 인형이 필요해서가 아니라는 걸. 그걸 알면서도 자꾸 기계 앞에 서는 이유는 뭔가를 붙잡고 싶은 우리의 본능 같은 거다.
후회로 남은 어제, 엉망진창인 오늘, 그리고 불확실한 내일까지. 뭘 해도 불안한 20대의 마음에 이 뽑기 기계는 적어도 내가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진다.
인형 뽑고 기분 엄청 좋았던 날 막상 인형을 뽑아도 기분이 좋은 건 한순간일 뿐이다. 그 인형이 진짜 필요하지 않으면 '얘를 어디에다가 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데도, 어릴 적 인형을 버리지 못하는 아이처럼, 우리는 그 인형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추억을 소비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답답한 현실 속 우리는 인형뽑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불확실한 현실에 도전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뽑고 싶은 건 인형이 아니라, 그때의 나였는지도...”
이제 인형뽑기방은 추억과 힐링을 파는 공간이 되었다. 함께 가는 친구와 나눈 웃음, 인형을 바라보며 느끼는 설렘. 비록 뽑기에 실패해도 우리에겐 추억이 남는다.
그리고, 우리가 뽑고 싶은 건, 어쩌면 단순한 인형이 아닌, 그 시절의 나일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나’로 돌아가 추억을 소비하는 것 아닐까?
뽑기 기계 속에선,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손을 흔들고 있다. 그날 뽑지 못한 인형보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한 게 더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즐겁게 놀았으면 된 거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나 자신'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간 친구와의 즐거운 추억들이 더 중요한 것이다. 얇아진 우리의 지갑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우리를 뽑기방으로 이끈다.
"내 인생은 안 뽑혀도, 인형은 가끔 뽑힌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근처에도 인형뽑기 가게가 있을지 모른다. 만약 오늘 하루가 버거웠다면,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답답하다면, 잠깐 들러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뽑고 싶은 건 결국 인형이 아니라,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니까.
사람은 예상 못 한 순간에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바로 그게 인형뽑기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간 뽑기방에서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을 때, 갑자기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은 나아 보인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되더라도 괜찮다. 우리에겐 아직 나아갈 희망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인형뽑기 가게에서 500원으로 동심으로 돌아간다. 500원으로 어릴 적 나를 발견하고 위로받으며 나아갈 희망을 얻는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500원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당신이라면, 언제든지 고통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인형뽑기 가게로 간다. 내 인생은 안 뽑혀도, 인형은 가끔 뽑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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