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집에서 SNS만 보고 있을 건데?
고3 때까진 진짜 그랬다. 야망? 도전? 멋진 커리어?
솔직히 그런 거보다 ‘그냥 남들처럼 사는 삶’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도 늘 그랬다. “너무 튀지 말고, 안정적으로 살아라.”
그래서 나도 ‘적당한 대학, 적당한 직장, 적당한 인생’을 상상했다.
어릴 적 조종사를 꿈꾼 적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릴 적” 이야기였고, 더구나 나는 문과생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
'이렇게 사는 게 진짜 맞는 걸까? ,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끝나도 괜찮은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꿈’을 좇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정확히 수능을 약 50일 남겨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그때 눈에 익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에 계셔야 할 시간에, 우리 동네를 서성이는 아버지였다.
잠시 후 아버지는 내게 다가오셨다.
말씀이 없던 그 얼굴엔 무언가 담겨 있었다.
"퇴사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거다."
그 한 마디는 충격이었다. 그제야 나는 코로나로 인한 구조조정이 우리 집에도 현실로 다가왔다는 걸 실감했다.
아버지는 엄마와 누나에겐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차마 가족을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그래서였을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독서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그러나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반드시 한 번에 대학에 가겠다고.
출처: 한경 닷컴
2. 일단 대학은 붙었고..
대학 원서를 쓰던 날, 문득 ‘항공대학교’라는 학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조종사를 꿈꿨지만, 나는 문과 성향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이과적 진로를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됐다.
그래서 조종사라는 꿈도 오래전에 접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손이 멈췄다.
원서 사이트의 마우스 커서가 한참을 그 학교 이름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말을 걸었다.
‘이건 네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 아냐?’
결국 원서를 넣었다.
3. 친구 덕분에
나는 코로나가 번창하고 있을 때에 대학을 입학했다.
모두가 ‘언택트’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수업은 전부 줌으로 대체되던 시기.
하지만 우리 학교는 그래도 대면 활동을 어느 정도 진행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나는 그 기회를 붙잡았다.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했다.
전공 이야기, 진로 이야기, 사는 이야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꿈에 대해서도 자주 고민하게 됐다.
특히 항공에 진심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만 너무 평범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현실만 보고 조심스럽게 살려던 나에게 그 친구들은 거울이었다
‘너, 꿈 다시 꿔야 하는 거 아냐?’ 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그게 내 출발점이었다. 어릴 때 포기한 줄 알았던 ‘항공’이라는 키워드를 나는 다시 잡았다.
2022년, 2학년
공군 조종 장학생 모집 공고가 학교 게시판에 붙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관학교라든지 장교 같은 단어에 거리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 그런 진로를 고민해 본 적도 없었고, 나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이 나를 밀어붙였다. 그래서 지원했다.

공고를 본 직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사 자격증, 토익 점수, 간부선발도구(KIDA)까지.
연애도 하고, 학점도 챙기고, 각종 대외활동과 병행하면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결과는 1차 합격. 합격증을 들고 가족과 함께 공군사관학교에 갔다.
면접장에서 한 조종사분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넌 꿈이 조종사냐, 군인이냐?”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꿈은 조종사였지 군인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그 자리에서야 또렷하게 마주했다.
그 후 나는 일반 병사로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를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시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훈련소에선 분대장까지 맡으며 책임감을 키워나갔다.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병사가 아니라, 리더로서 후임들을 이끌고 팀워크를 다지는 경험을 쌓고 싶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때로는 길게 느껴졌고, 때로는 짧게 지나갔다.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반복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힘든 훈련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조종사’라는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군대라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도 나는 성장하려 노력했다.
사람들과 협력하고, 책임을 지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은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동기들과 후임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그들과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리더십의 의미를 조금씩 배워갔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조종사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군인이 되는 것과 조종사가 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다.
결국 나는 분명히 알았다.

내 꿈은 군인의 삶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 더 넓은 세상에서 민간 조종사로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얻은 경험과 성장은 앞으로 나아갈 내 길에 밑거름이 되었다.
군 복무를 통해 스스로를 단단히 다지고, 다시금 조종사라는 꿈을 향해 힘차게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 속에서 배운 건 결국 ‘사람’이었다.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의견을 조율하는 법,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법.실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7. 학교에서 미국을 보내주다.
지난 시간 동안 나름 열심히 달렸다.
팀 프로젝트도 책임감 있게 임했고, 대회도 꾸준히 나갔다.
그 결과, NASA & 보잉 탐방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실제 비행기를 조종해 보는 체험도 했다. 어린 시절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그 장면을 직접 해본 것이다.

NASA, 보잉, 미국. 그 모든 단어들이 이제는 꿈이 아니라 현실 속 풍경이었다.
나는 내 두 발로 그곳을 걷고, 내 두 손으로 조종간을 잡았다.
여행은 내게 확신의 시간이었다. 열심히 살면, 진심을 담으면, 결국 기회는 온다는 것.
2025년 현재, 나는 물류 산업을 깊이 공부하고 있다.
조종사라는 꿈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단순히 물류에 관심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언젠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품고 있다.
사업가가 되려면 기본이 되는 산업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물류는 어떤 사업에서도 빠질 수 없는 핵심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물류를 공부하며 내 꿈을 구체화해나가고 있다.
올해는 인턴십과 대기업 공모전 등 다양한 경험도 했다.
결과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성장했느냐이다.
분명히 나는 매 순간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
나는 ‘도전’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새기고 산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방구석에서 SNS만 보고 살지 말라. 자신의 본래 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그 꿈을 향해 달려라'
나 또한 처음에는 방 안에만 머물렀다.
두렵고 망설여서 창문도 닫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바깥세상으로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나 또한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 꿈과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달리고 있다.
내 글이 독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