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나는 귀티형?날티형? 매력의 지형도를 그려보자.
에겐 테토를 이을 새로운 인간백서
에겐 테토 열풍, 그리고 그 다음
요즘 Z세대 사이에서 가장 트렌디한 밈을 꼽으라면 단연 에겐 테토 밈일 것이다.
"내가 에겐녀인지 테토녀인지"를 판별하는 자가진단 테스트부터 연애 프로그램 클립 속 인물들의 성향을 에겐남 테토녀로 분석하는 댓글까지, SNS와 커뮤니티는 에겐 테토 열풍이다.
에겐 테토 이전에는 MBTI가 있었고, 그 전에도 수많은 '라벨'이 있었다. 이는 Z세대가 더 이상 정해진 기준이 아닌 스스로 만든 틀로 자신을 정의하고 싶어한다는 욕구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에겐 테토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인간백서를 제안한다. 바로 귀티와 날티 - 즉 매력의 지형도이다.
귀티와 날티란 무엇인가
귀티나는 사람의 특징을 다룬 게시물은 인스타그램 돋보기에서도,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수도 없이 많이 본 듯하다. 그러한 게시물들은 대부분 외모와 고상한 말투 정도를 언급할 뿐 다 비슷한 내용이다. 하지만 외모와 고상한 말투가 전부는 아니다.
귀티는 말 그대로 '귀한 티'로 정의내릴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티보다 자연스러운 여유와 절제된 표현, 그리고 몸에 밴 정돈됨에서 느껴지는 품위 있는 거리감이 그 핵심이다. 그 이면에는 종종 타고난 배경, 조용한 자신감, 오랜 사회화 과정이 있다. 외모와 말투는 그 부산물일 뿐이다. 관리된 외모는 자신이 외부에 어떻게 비추어질지 항상 의식하여 스스로를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와, 고상한 말투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느껴지는 품격과 교양을 의미한다.
날티 또한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단어이다. 날티상 남자 아이돌부터 날티나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 수많은 소녀들까지...날티는 '날라리 티'에서 온 말로, 잘 놀 것 같은 이미지를 말한다. 끝까지 채운 셔츠 단추와 단정하게 맨 넥타이보다는 단추 몇 개 풀고 끌러내린 넥타이가 더 잘 어울리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날티는 자유롭다. 시스템, 규율, 사회적 통제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동하기에 거리낌이 없다. 귀티와는 달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흐트러진 상태이나 그 어수선함조차 자신만의 매력으로 소화한다. 날티는 종종 과감한 자기표현과 함께한다. 노출이 있는 옷, 짙은 메이크업, 그리고 때로는 술, 담배, 타투와도 같은 기호적 요소가 그 무드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자칫하면 과하거나 싸보일 수 있는 것들이지만 날티가 가진 본능적 매력과 자기애는 그것들을 오히려 세련되게 소화해내며 사람들의 동경심을 자극한다.
존중 VS 욕망
귀티와 날티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 귀티는 존중을, 날티는 욕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왜 귀티는 존중을 받을까? - 귀티의 기본적인 무드는 거리감이다. 친근하다는 느낌보다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지녔고 이는 접근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는 존중의 유발로 이어진다. 귀티는 통제력의 미학이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그것에 걸맞은 자세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정교하고 정제된 분위기를 내며 흐트러짐도, 틈도 없다. 결국 귀티는 단순히 잘 꾸며진 외모나 조용한 말투보다는 그 사람의 삶의 결이 오랜 시간 쌓인 태도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스스로를 다듬는 습관, 사용하는 언어, 자연스러운 여유와도 같은 것들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정제된 환경과 절제된 규칙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었을 것이다. 결국 귀티를 지닌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세공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날티는 욕망을 유발할까? -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즉각적이고, 직관적이고, 자극적이다. 날티는 사회 규범을 넘나들고 이는 곧 금기를 건드리는 것과 직결된다. 인간은 금기에 불편함, 호기심, 끌림을 동시에 느끼며 날티는 정확히 그 지점을 자극한다. 날티는 귀티와 달리 감정, 몸짓, 분위기에 흐트러짐이 있고, 틈이 있다. 그리고 욕망은 항상 빈틈에서 시작된다. 타이트한 옷, 자기 노출, 주도적 태도가 시선을 끌고, 말투, 몸짓, 눈빛, 표정과도 같은 몸을 쓰는 방식 자체가 감각을 건드린다. 그렇기에 날티는 강한 흡인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의 맥락이 어떻든 간에 눈빛과 건네는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순식간에 매료시킨다.
귀티는 감히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라면, 날티는 신기루임을 알고 있음에도 감히 닿아보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미디어 속 귀티와 날티

가십걸(2007) 속 블레어와 세레나가 귀티와 날티의 대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귀티 - 블레어 윌도프
"Fashion is the most powerful art there is. It's movement, design, and architecture all in one. It shows the world who we are and who we'd like to be.""패션은 완벽한 예술이고, 그건 세상에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주는거야." 블레어의 이 말은 단순히 옷차림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패션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와 위치를 드러내고, 그 이미지를 철저히 통제한다. 절제와 정제, 그리고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귀티의 핵심이다.
- 날티 - 세레나 반 더 우드슨
"You know you love me."세레나의 날티는 계산된 세공이 아니라 본능에서 비롯된다. 흐트러짐조차 매력으로 만드는 자유로움, 예측 불가능함, 그리고 금기를 슬쩍 넘나드는 여유가 그녀의 흡인력의 근원이다.
귀티와 날티의 근원
그러나 처음부터 귀티나 날티와 같은 매력을 타고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사실 놀랍게도 귀티는 사회적 미숙함, 어수룩함, 소심함이 상당히 닮아있다. 우리가 이러한 어색함과 소심함이 사실 귀티의 원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서툴음, 어색함, 과도한 예의, 눈치 보는 태도와 같은 실수하지 않으려는 강박과 자기검열이 존재한다. 그러나 남의 시선을 내면화함으로써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다듬어 흐트러짐이 없고, 품위있는 거리감을 주는 귀티가 완성된다.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시선을 너무나도 의식하던 탓에 무시받던 그 어수룩함이 세공되어 존중과 경외의 대상이 된다.
싼티는 날티의 초석이다. 날티의 기저에는 과시욕,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남들의 시선을 끌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싼티의 핵심은 저렴해 보이는 인상이다. 단순히 돈이 적게 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각, 품질, 태도 전반에서 저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꾸밈이 너무 과하고 조화롭지 못하다거나, 상황, 장소, 분위기와 맞지 않게 태도나 스타일이 과장됐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싼티는 그 누구보다도 외부의 인정을 갈망하지만 스스로가 매력적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렇기에 싼티에 센스와 자기애가 붙을 때 날티가 된다. 날티는 스스로가 이미 매력적임을 믿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다.
결국 귀티는 절제된 사회화의 결, 날티는 본능적 매력의 날것이다. 하지만 귀티나 날티나 모두 그 시작은 '촌스러움'이라는 것이다.
빛나는 이들을 선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티를 지닌 사람이든 날티를 지닌 사람이든 빛나는 방식이 다를 뿐 사람들의 선망과 동경을 부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귀티를 지닌 사람은 날티를, 날티를 지닌 사람은 귀티를 선망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본인이 갖지 못한 것에 환상을 품는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 내가 누군가를 선망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선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매력의 초석은 촌스러움이며, 그 촌스러움을 어떤 방향으로 다듬을지는 오롯이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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