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이토록 예민한 내가 싫은 당신께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HSP

#0. 혹시, 나도 HSP?


HSP가 뭔지 궁금해 들어왔다면 환영입니다. 우선 간단한 자가테스트부터 해볼까요?
아래 23개 문항은 HSP 개념을 처음 정의한 미국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Elaine Arone)이 개발한 검사입니다.
각 질문에 스스로 느끼기에 어느 정도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체크, 확실하지 않거나 전혀 해당이 안 된다면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 나는 주위에 있는 미묘한 것들을 인식하는 것 같다.

  •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 통증에 매우 민감하다.

  • 바쁘게 보낸 날은 침대나 어두운 방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 들어가 자극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 카페인에 특히 민감하다.

  • 밝은 빛, 강한 냄새, 거친 천 또는 가까이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같은 것들에 의해 쉽게 피곤해진다.

  • 풍요롭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갖고 있다.

  • 큰소리에 불편해진다.

  • 미술이나 음악에 깊이 감동한다.

  • 양심적이다.

  • 깜짝깜짝 놀란다.

  •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해야 할 때 당황한다.

  • 사람들이 불편해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지 안다(조명이나 좌석 배치를 바꾸는 것 등).

  •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짜증이 난다.

  • 실수를 저지르거나 뭔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폭력적인 영화와 텔레비전 장면을 애써 피한다.

  • 주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긴장한다.

  • 배가 아주 고프면 강한 내부 반응이 일어나면서 주의 집중이 안 되고 기분 또한 저하된다.

  • 생활의 미세한 변화로 감정이 동요된다.

  • 섬세하고 미묘한 향기, 맛, 소리,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긴다.

  • 내 생활을 정돈해서 소란스럽거나 당황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 경쟁해야 한다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불안하거나 소심해져서 평소보다도 훨씬 못한다.

  • 어렸을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내가 민감하거나 숫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 해석]

13개 이상에 체크했다면 여러분은 HSP에 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23개 중 13개면 그다지 예민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셨나요? 예민성의 척도는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라 연속선상의 개념이기에 그렇습니다. 즉, '예민하다', '예민하지 않다'가 아닌, 얼마나 예민한지의 정도를 의미합니다. 13개 문항에 체크했다면 HSP 중 가장 덜 예민한 최하위에, 23개 문항을 모두 표시했다면 HSP 중에서도 최상위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21개 문항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체크했답니다.^^...

출처: MBC




#1. HSP를 아십니까.


HSP(Highly Sensitive Person)란 우리말로 고도 민감성 개인, 즉 매우 예민한 사람을 의미한다. 어감상 정서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저 수많은 기질 중 하나를 나타내는 심리성격학 용어일 뿐이다. 그러니 혹여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HSP는 인구의 15~20%나 차지한다고 한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인생 하드 모드'로 살아가지만, 왜 우리는 주변인들의 예민함을, 혹은 나의 기질도 잘 알지 못한 채 살아온 걸까?

출처: Chat GPT

HSP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뇌 속을 압수수색 당한 것 같은 분석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포영화를 죽어도 못 보고, 작은 실수에도 과하게 자책하며, 늘 손발은 땀으로 축축하고 어깨가 굳고는 했다. 지난 일을 곱씹고 미래를 걱정하며 매일 밤 잠에 들기 어려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주변인들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드는 이들을 떠올린다. 반면 실제 HSP에게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예민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되려 무던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곤 한다. 이는 HSP의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예민함을 밖으로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것 말이다. 이러한 본성이 현대사회에서 더 고립되도록 억누르는 문장이 있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안타깝게도 이 한 문장이 현재 한국 사회 전반을 설명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정상성에 아득바득 맞추어 살고, 그 범주를 넘는 사람을 비난하는 곳. '정상'이라 불리는 것에 해당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페르소나를 갈아 끼운 채 살아가지는 않는가. 콧물만 훌쩍여도 “너 감기인가 봐. 병원 가봐!”라며 걱정하지만,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엔 너만 힘드냐며 위로를 가장한 면박을 주기 일쑤다. 유별나고, 까탈스럽고, 피곤하게 사는 애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HSP들은 갑갑해도 둔한 페르소나를 장착하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이러할수록 오히려 예민함을 가두어선 안된다. 인간에게는 인지적 종결 욕구라는 본능이 있는데, 무언가 납득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게 있으면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굉장히 답답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기질과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 어느 순간 퍼즐이 맞춰지면서 '아하 모먼트(Aha moment)'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나와 타인에게 예민함을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우리의 뇌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에 대한 고민을 깔끔히 종결짓는 것이다.

출처: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그래서일까.
HSP를 다룬 영상들이 유튜브에서 100만 조회수를 훌쩍 넘기는 등 미디어에서도 신선한 심리 개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관련 게시물에는 “난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와 같은 충격을 받은 듯한 댓글, “이런 분들도 있으려나….”로 시작해 자신만의 '예민 포인트'들을 하나둘씩 토로하는 댓글 등 그동안 숨어있던 HSP들 간의 공론장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HSP 개념의 인기는 MBTI의 대유행과도 맞닿아 있는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HSP와 MBTI 둘 다 나만 이런게 아니라는 대중성에 편승하고 싶은 욕구,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받고 싶은 욕구 모두에 맞아떨어진다. 이 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동시에, 타인에게도 수용 받고 싶은 인간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자신의 HSP적인 특성을 드러내도 괜찮다.



# 2. HSP가 살아가는 법 : 왜 나는 왜 피곤함을 달고 사는가?


HSP는 다음 세 가지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초감각


HSP들의 감각 처리 기관은 그야말로 고성능 스펀지와 같다. 다른 이들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소음, 번쩍거리는 불빛, 특이한 냄새, 어수선한 분위기까지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원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게 되고, 여기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오롯이 HSP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하지만 HSP 사이에서도 어떤 지점에서 얼마나 불편한지, 민감한 정도와 내용은 제각각이다. 사람마다 민감한 '취향'이 서로 다르며 개인적 경험이나 선택에 의해서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HSP 중 한 명은 잠자리가 바뀌면 아예 잠들 수 없어, 어딜 가든 베개를 반드시 들고 다닌다고 말한다. 또 다른 HSP는 언어의 조사 오류 하나에도 예민하여, 무심하게 쓰인 글을 볼 때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옷 안쪽의 택을 자르지 않으면 택의 까칠함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수업 중 누군가 키스킨 없이 열심히 타이핑을 할 때, 식사 중 조금이라도 쩝쩝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 소리에만 압도되고 만다. 이 외에도 커피 한 잔에 이튿날 아침까지 뜬눈으로 지새우거나 근육 경련이 온다든지, 공포영화는커녕 '꼬꼬무'와 '오징어 게임'조차 못 보는 작은 심장을 가졌다든지, 상대방의 가벼운 한숨과 미묘한 말투 변화도 신경이 곤두서는 등 매일이 날 선 감각과의 전쟁이다.

출처: MBC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적당히 긴장하게끔 하는 감각이 HSP들에는 심한 긴장감을 주고, 다른 이들에게 강한 긴장을 주는 요인은 HSP로 하여금 기진맥진의 상태에 이르도록 한다. 이들은 학교나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남들보다 더 필요한 이유이다. 유전적인 측면에서 보면 HSP의 '경계 모드'는 상당히 유리하게 태어난 셈이다. 아주 먼 과거에는 민감한 자가 생존에 유리했으며, 현대에도 이들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편에 속한다. 다만, 그만큼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에서는 남들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번아웃에 빠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과부하 되기 쉬운 신경계를 가진 HSP들은 평소 자신의 한계치에 대한 선을 명확히 하고, 스스로 스트레스의 한도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각종 자극에서 한발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초감정


HSP들은 감정적인 부분을 증폭시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광적으로 몰입하는 것이다. 특히 타인의 감정에도 적용되는데, 이를 '과잉 공감'이라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빠져들면 작품 속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여 급속도로 우울해지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때로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일부러 작품을 멀리하는 HSP들도 상당하다. 누군가는 킬링타임 용으로 소비할 한 편도 예민한 이들에겐 오랜 시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청을 감행해야 하는 대상이다. 어릴 적 <응답하라 1988>을 감명 깊게 본 후가 그러했다. 북적였던 쌍문동의 텅 빈 모습을 마주한 순간, 마치 내가 사는 동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던 충격과 공허함이 여태 아리다. 사람을 해하거나 죽이는 내용은 어련하겠는가.

출처: tvN

이쯤에서 '고(高) 공감인', 엠패스(empath)를 짚고 넘어가 보자. 엠패스와 HSP는 둘 다 초감정을 겪지만, 그 기반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엠패스의 초감정 기반은 '공감'이다. 그들은 공감과 동시에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와 같은 인지적 과정을 거친다. 반면 HSP의 초감정 기반은 '감정의 전이'에 있다. 상대가 화를 낼 경우, 엠패스는 상황적 맥락까지도 공감하므로 '그래, 나 같아도 짜증 날 것 같아.'와 같은 사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HSP는 상대의 감정에 압도당하면서 자신도 덩달아 화가 치민다. 그리고 그 화를 처리하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려 행동적 공감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HSP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이 친구는 왜 공감을 시원하게 못 해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들은 이러한 연유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바빴을 확률이 높다. 주변인들의 온갖 감정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HSP들이 결국 선택하는 길은 주로 회피형으로서의 삶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관계를 놓아버리기엔 너무 이르다. 이들은 타인의 부정적 영향에 취약한 만큼 좋은 감정과의 시너지 효과도 굉장하기 때문이다.


심미안


여기까지만 봤을 땐 HSP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들에게도 삶의 질을 올려주는 고마운 존재가 있다. 바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오감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심미안'이다. HSP는 음악, 책, 영화, 그림 등을 감상하거나 창작할 때 이들이 지닌 초감각으로 깊은 수준의 영감을 느끼고 감동한다. 심미안이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이를테면 현미경과 같이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디테일한 부분들을 캐치하고 흡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감 중 어느 감각에서 이 심미적 민감성(Aesthetic Sensitivity=AES)이 발현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시각에서 AES가 발현되면 패션 센스나 인스타 피드의 감성이 남다를 수 있고, 청각에서 AES가 발현되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큰 해방감을 느끼거나 눈물을 흘릴 만큼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HSP들과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개성 넘치는 상상력과 각자의 가치관이 깃든 감성이 참 매력적인 사람들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만, 심미안을 통해 얼마나 양질의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본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향을 맡으며, 풍경을 감상하며 내가 얼마나 구석구석을 음미하고 내면화하고 있는지 정작 본인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내면세계는 남들과 비교하기 어렵기에, HSP들은 누구에게나 이러한 감각이 있을 거라 짐작해 버린다. 하지만 심미안은 HSP들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며, 향후 생업과도 직결될 수 있기에 결코 모른 체하거나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출처: OBS



# 3. HSP의 대인관계 : 사람은 좋은데 사람이 어려워


이타적인 HSP


예민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아주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심한 경우 내가 도울 수 있었음에도 방조 또는 관망했다는 생각이 죄책감으로 연결되곤 한다. 이러한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양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덕적이기 때문에 양심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이지 않으면 본인이 불편하기 때문에 양심적인, 자기방어적 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유일한 장점으로 생각했던 배려심마저 온전히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좌절스러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금물이다. “어쨌거나” 얼마나 양심적이고 착한가! 혼자 두면 보통 자책으로 귀결되는 HSP들에게 그럼에도 우리는 이타적이고자 애쓰는 사람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임을 주입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HSP는 누군가에게 부탁받으면 자동으로 '빚진 상태'가 되어버린다. 타인의 부탁은 잘 들어주지만, 타인에게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이다. 유사한 맥락으로 HSP는 대부분 책임감이 투철하다. 책임지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이들에게는 과도하게 다가오기에 열심히 주어진 업무를 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이는 '팀플'에서만 작용한다는 허점이 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였을 때 남들에게 피해가 갈 상황에서만 죄책감에 따른 책임감이 발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말고사 전날 밤에도 조별 과제에 매진하거나, 친구의 고민 상담 카톡에 신경을 쏟는 등 개인 공부는 줄곧 뒷순위로 밀린다. 게으른 유형의 HSP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프리랜서보다 조직 생활이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출처: Pinterest

HSP에게 연락은 완전한 휴식이 될 수 없다. 관계를 맺는 도중 연락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고, 살아오면서 수많은 형태의 인간관계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문자 한 통과 연락의 지속에 익숙해지기가 어렵다. 이들은 상대의 답장이 뜸하다거나, 말투가 딱딱하게 느껴지는 등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해석될 여지마다 모조리 캐치하고 생각의 늪에 스스로 발을 집어넣고 말기 때문이다. 내향성이 높으며 예민한 HSP가 부정적 사고의 늪에 들어가기는 쉽지만, 빠져나오기에는 숙련된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 상상이 실제가 아니라, 단지 머릿속에서 확대 해석된 무형의 판타지라는 사실을 되뇌어야 한다. 외향형의 ‘행동주의’와 반대로 내향형의 ‘사고주의’ 색채를 짙게 띠는 HSP기에 습관화된 자아 성찰로 발전을 추구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과잉 분석으로 인해 진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다 나와 같이 느끼리라 생각하는 심리도 작용한다. 이를 ‘거짓 합치성 편향(false consensus bias)’라고 하는데, 특히 HSP는 다른 사람들도 본인이 느끼는 정도만큼 상처입을 것이라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카톡의 한 마디, 이모티콘 하나에서도 말이다. 본인들의 불편함의 역치가 보통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이따금 외향적으로 행동하려는 시도는 이들에게 좋은 리프레시가 된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러 가거나, 감정의 골에 빠지기 전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애당초 부정적 감정을 방지하는 것도 좋다.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한 ‘외향적인 행동 투두리스트’를 만들어두고, 과잉 사고에 진입하려 할 때마다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거다. 나만의 동굴이 당장은 편하겠지만 인간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보아야 살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의 속내


주변인이 HSP라고 하는데 하나도 HSP같지 않은가?
그들의 말투가 그렇게까지 부드럽거나 성격이 딱히 착해빠져 보이진 않은가?

대부분 HSP들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하는 사람마다 가면을 갈아끼듯 제각기 다른 페르소나로 대한다. 그 어느 수식어도 내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일부 페르소나만 접하는 타인은 절대 나의 모든 면을 알 수는 없다는 건 분명하다. HSP를 보고 마냥 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그 또한 상대를 위한, 그리고 본인을 지키기 위한 페르소나이다. 어떤 HSP는 일부러 사람들에게 무심한 척을 한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진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가 상처를 받았거나, 부푼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들이 축적되어 먼저 거리 두기를 택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저 사람은 혼자 있고 싶나 봐. 다가가면 귀찮아할 게 뻔해.”와 같은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정에 굶주려 있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진짜 ‘나’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꺼내든 페르소나, 그리고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들… 이들 사이의 간극은 사연자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용 페르소나를 내려놓지 못하는 수많은 HSP들이 늘상 겪고 있는 스트레스이다.

출처: 웹툰 '이섭의 연애'

여기서 관건은 얼마나 이중생활을 지속할 수 있느냐이다. 최악의 결말은 결국 참지 못하고 터졌을 때 냉담한 주변의 반응이다. “혼자서 힘들었겠구나”라며 내면을 헤아려주고 다독여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여태 왜 속여왔느냐며 어이없어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기에 진짜 내 모습을 상대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하고, 나 또한 진정한 상대방의 모습을 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가족이나 연인, 정말 가까운 친구 등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몇몇 지인에게는 예민함을 드러내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이다. HSP가 진중한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는 더 이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신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상대방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상대방도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고, 또 나에게 맞는 맞춤 반응을 할 수 있기에 말이다. HSP의 주변에는 결국 이들의 예민함을 아는 사람들만 남게 되어있다.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예민함을 알리는 시기를 당기고 더 끈끈한 관계를 맺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민감성 ≠ 내향성


혼동하기 쉽지만, 민감하다는 것과 내성적인 것은 다르다. 인구통계학적으로 HSP 중 내향과 외향의 비율은 7:3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의 대략 5퍼센트는 매우 예민한 동시에 외향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빼앗기는 모든 HSP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외부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평화로이 지낼 수 있는 곳이다. 내향적인 HSP는 자극의 유입이 원래도 한정적일 뿐더러, 성향과 요구되는 환경이 일치하여 감정을 컨트롤하기에 비교적 순조롭다. 한편, 외향적인 HSP는 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싶어 하지만 급속도로 지쳐버리는 모순적인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이들이 가진 초 예민성이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윤활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막대한 에너지 소모가 뒤따르므로 장단을 동시에 갖춘 셈이다. 인구의 5퍼센트에 속하는 외향적인 HSP중 한 명인 나 또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다시 사람 덕에 치유되는 딜레마에서 여태껏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출처: MBC

그렇다면 외향적 HSP는 영원히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선택적 관계풍성한 취미, 그리고 의무적 휴식 이 세 가지를 기억한다면 우리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 양적인 인간관계보다 질 높은 인간관계를 지향하고,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를 항상 정돈해야 한다. 더불어 통제 가능한 경험에 집중하고, 문화·분야의 취미 생활을 누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며 불필요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철저하게 차단하자. 마지막으로 기필코 혼자 있는 시간을 사수하여 어쩔 수 없이 관계에서 들여온 노폐물을 여과시켜 준다면, 당신의 성향은 사회성섬세함을 모두 갖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HSP지만 연애는 하고싶어


안 그래도 감정의 폭이 큰 HSP인데, 이들에게 연애란 어쩌면 쥐약과도 같다. 보통 사람들보다 사랑의 달콤함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건 장점일지 모른다. 문제는 HSP가 연애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다면, 예민한 자신만큼 섬세하게 챙겨주지 못하는 상대에게 충족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웬만해선 터놓고 소통했을 때 해결될 수 있는 일에도, 당장의 갈등을 피하려 꾹 참는 경향 또한 상대방에게 답답함을 유발하고 자칫 이별을 초래하기도 한다. 멀어지는 것만큼이나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HSP의 연애 특징이다. 훅 타올랐다가 나중에는 결국 무미건조해지는 변화가 두려워서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면 벽을 치는 것이다. 이는 마음을 다 내어주었다가 상대가 식었음을 느낄 때 겪는 공허함, 그동안 속삭였던 확신의 사랑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배신감, 끝내 이별했을 때 마주할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HSP의 대표로서 변명해 본다. 누구나 사랑의 끝에는 아프다지만, 관계에 취약한 HSP에게는 이 감정들이 일상을 견디지 못할 정도의 깊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로운 연애를 위해 HSP가 만나야 할 상대는 같은 HSP이다. 예민한 나의 기질을 잘 알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상대도 HSP인 관계가 최선이다. 하지만 오래 볼 사이라면, 나아가 함께 아이를 키울 부부가 될 사이라면 긍정적이면서 둔한 사람이 최고의 짝일 수 있다. 인생의 큰 고비가 있을 때마다 둘 다 과부하가 걸리면 매우 큰 일이기 때문이다. HSP에게 굉장한 비극은 인생의 동반자를 결정할 때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와 고난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자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반이 이성인데 내 짝 한 명이 없겠는가. 방구석 사랑 전문가로서 HSP들에게 꿀팁을 주자면, 혼자만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HSP도 연인을 방치하지 말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려는 노력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예민하지 않되 섬세한 사람이, 둔하지 않되 무던한 사람이 필요하다. HSP가 티내지 않고 하는 배려를 알아채 진심으로 고마워해주고, 예민하게 구는 지점들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HSP들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혹시라도 있다면, 당장 붙잡아라. 놓치면 안 될 최고의 배우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HSP에게 이런 연인이라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섬세한 사랑과 희생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출처: Pinterest



#4. 민감함은 선천적일까?


예민함이 ‘기질’임을 반복한 이쯤에서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HSP는 선천적이다. 평생을 민감성에 관한 연구에 바친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Jerome Kagan)의 연구에 따르면, 민감한 아이들이 외부 자극에 좀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타고난다고 한다. 실제 민감한 아이들의 체액을 조사해 보았을 때, 뇌의 아드레날린이라고 불리는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여러 형태의 스트레스에 노출한 후 그 수치는 더 증가했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든 집에 있든 간에, 긴장이나 경계 상태에 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민감한 아이들의 체액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과 부모의 역할 또한 자녀의 예민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존재한다.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정신의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민감한 환자들이 어떤 충격을 경험했을 때, 유난히 영향을 많이 받고 신경증을 보인다고 주장했으며, HSP 개념의 창시자 일레인 아론 또한 부모와의 불안정한 애착 형성이 예민함을 돋운다고 밝힌 바 있다. 즉, HSP는 예민함을 갖고 태어나지만 부모와의 관계에 따라 민감한 기질이 짙어지기도, 옅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주변 HSP들의 얘기만 들어보아도 예민한 부모 밑에서 큰 경우, 본인 빼고 모두가 둔감한 경우 등 집안 환경은 제각각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태초부터 HSP였다. 5살이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가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우리 애는 다른 집 가면 바닥에 먼지 있다고 발끝으로 걸어 다니고, 내 무릎에만 앉아 있으려 해~”라며 장난스럽게 하시는 말을 엿들은 적이 있다. 일단 5살의 나이임에도 당시 기억들이 생생히 남아있다는 점, 작은 먼지에도 짜증 내는 아이였던 사실까지 원래부터 여러모로 민감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어린 나이에도, 몹시 기분이 상했고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느꼈다는 게 꽤 놀랍다. 크는 과정에서 예민함이 마모되지 못한 건, 늘 눈치 볼 수밖에 없었던 집안 분위기로 미루어 볼 수 있겠다. 언제 화낼지 모르는 부모님의 신경에 절대 어긋나서는 안 되었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출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익힐 수 없었다. 정해진 기준에 부합하고자 나를 끼워맞추는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불안감은 내재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수많은 HSP에게 가족은 애증의 존재일 수 있다.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내게 사랑을 준다 하더라도 나를 무너뜨리는 존재라면, 그로부터 나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5. HSP, 우리의 가치를 사랑해!


출처: Pinterest

현실에서도 단단해지려면


얼마 전 ‘MZ 교수님’으로 유명하신 교수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상담을 잘해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머지않아 헤질 것 같은 마음을 겨우 끌어안은 채로. 토로의 시간 끝 교수님의 처방전에는 HSP라는 단어만 빠져있었지 모든 내용이 HSP와 맞닿아 있었다. “이래야 한다.”는 관념 뒤에 있는 ‘진짜 나’의 욕구를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남들의 기준에서 나를 평가하고, 완벽하게만 보이는 타인과 비교하기에 바빴다. 그러한 렌즈로 나를 바라봤기에 게으르고, 자랑스러울 만한 성취를 해내지 못하고, 완벽한 외형을 갖추지 않은 스스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사랑받아도 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상담을 받은 후로는 나 자신을 몰아세우고 못살게 굴기보다, 예민한 나를 다독여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훨씬 좋은 동기부여임을 안다. 교수님의 솔루션도 효과적이었다.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비하하는 용어를 빼는 것. 남에게 하는 말이든, 속마음이든, 일기장에 털어놓는 진심이든 간에 나를 부정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크게 변한 건 없는 나라도 이상하리만큼 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HSP가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Tory Higgins)는 인간에게 의무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가 있으며, 이러한 자아들과 현실 속 나와의 괴리감이 커질수록 불안감과 우울감이 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클수록 자기검열과 자책에 시달리게 되는 흐름이다. 기대치가 높고 완벽주의 성향도 강하지만, 기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유달리 취약한 HSP가 통상적으로 택하는 건 ‘미루기’다. 그렇게 다시 게으르고 회피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굴레에서 억겁의 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출처: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

기대와 자책의 굴레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은가? 

그 절실함을 뼈저리게 알기에 진심으로 다음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나에 대한 기대치를 어느 정도 내려놓기이다. 의무적 자아, 이상적 자아를 추구하기보다 ‘현실 속 나’에 집중하면서 그저 현재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꼭 남들과 같은 길을 걸을 필요도, 남이 부여한 기준에 맞추어 나를 끼워 넣을 필요도 없다. 나만의 세계에서 자족하며 살 수 있는 삶 또한 충분히 성공적인 인생이다.
두 번째는 “Just do it!”이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방 닦기, 매일 신문 기사 하나 읽기처럼 아주 사소한 일이더라도, 생산적으로 살아가면서 나 자신에게 떳떳한 하루를 보냈느냐가 포인트다.
야심과 이상을 내려놓을 수 없는 HSP들을 위해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무엇보다도 에너지 관리가 중요하다. 내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면 다른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를 포기하고 그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예민한 우리들이 멘탈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 갖은 예민함을 끌어모아 이룬 집중력으로 끝끝내 성취하는 엔딩이라니, 좀 힙하지 않은가?


결함이 아닌 강점으로


사회적 안테나가 너무도 민감한 HSP들이 관계에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지만,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압박감을 내려놓아야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된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외부로 온통 다 쓰고 나에게 소홀하다면, 나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일까?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나에게 친절한 사람 역시 좋은 사람이다. 인정 욕구를 내려놓고, 더 이상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남들이 결정짓게 두지 말자. 스스로에 대한 주관적 시선이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말이다. 외부의 눈치에서 자유로워질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단 한 명의 HSP에게라도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심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예민함은 엄청난 강점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을 반드시 돌봐주라는 것이다. HSP가 가진 감각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예민함이 있어야 성장도 있는 법이며, 누구보다 발전의 잠재력이 무한한 우리들이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예민한 감각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활용해 본업이든, 취미든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펼쳐나가는 활동을 멈추질 않길 바란다. 그리고 불안이 증폭될 때는 땀 흘리는 신체 활동, 우호적인 사람들과의 대화, 일기가 특효약이다. HSP들에게는 당연하지 못한 일정 시간 이상 잠자기와 규칙적인 식사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렇듯 HSP들은 자신을 예민한 아기를 키우듯 돌보아야 한다. 조금 귀찮더라도 나 자신을 지키는 건 나 뿐인데 어쩌겠는가.

출처: Pinterest


어쩌면 이 글은 나에게 하는 조언이다. 
또는, 비로소 주변에 요청하는 SOS이다.
나아가,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한 연대의 글이기도 하다.


세상으로부터 가장 상처를 많이 받으면서도 따뜻하게 세상을 대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 HSP.
이제 더는 움츠러들지 말고 우리들의 예민함에 자부심을 가진 채 당당히 살아갔으면 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일레인 아론, 『민감한 사람들의 유쾌한 생존법』, 더난출판, 2003.
  • 최재훈,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주)서스테인, 2021.



#HSP #예민함 #대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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