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달림과 멈춤 사이, 무해함이 세상을 구한다?
갓생도, 소소한 하루도 원하는 대학생들을 위해
여의도 더현대백화점에서 마주친 '패트와 매트' 캐릭터 팝업을 보다가 지나가던 누군가가 한 말,
"진짜 바보 같고 귀엽다..."
그 한 문장이 계속 맴돌아서 곱씹어보다가 문득 점점 무해한 것들을 좋아하고 소비하는 자신과 주위 사람들, 또래의 대학생 친구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20대, 특히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이 바보 같은 것들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스스로 지쳐있고 불안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마음을 무해한 것들에서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온순한 느낌의 물건이나 컨텐츠들이 일종의 심리적 도피처가 되어주고 있다. 비록 잠깐의 위로에 그치긴 하지만.
그만큼 20대의 많은 사람들이 의지할 무언가를 찾아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오래 머물며 마음 붙일 곳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건대 '무해력’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우리 시대의 대표 정서이자 누적된 피로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금세 흘러가 버릴 것 같은 요즘, 빛나는 청춘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이 줄타기하듯 살아가는 한 대학생과 역시 같은 시간 속을 걷고 있는 에디터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대답 속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PART 1: 무해력 소비, 우리 마음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올해의 트렌드 코리아 키워드 중 하나인 '무해력'은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사람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흐름이다. 무해한 아이템들이 주목받는 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마음의 피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사회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경쟁은 치열하며, 부모의 기대는 크지만 현실은 따라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자극적이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것들에서 위안을 찾는 것이다. 오늘날의 무해력 트렌드 역시 힘든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평온을 얻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철학과 4학년 안00 학생
: 솔직히 요즘 내 삶은 너무 전투적이다. 스펙 쌓아야지, 인턴 지원해야지, 졸업 논문 준비해야지... 하루하루가 미션을 클리어해야 끝나는 게임 속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인스타를 들어가 보면 다들 완벽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스펙도 빵빵하게 쌓고, 매일매일 계획표 딱딱 맞춰 사는 모습들이 보인다. 결국 경쟁인데 뒤처지는 기분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스스로도 힘든 감정들을 추스르기 어려울 때, 힘든 순간 길에서 파는 네잎클로버 책갈피 같은 걸 보면 본능적으로 마음이 열려버린다(지갑도 함께 열리는 것은 덤). 귀여운 캐릭터 굿즈나, 색감이 부드러운 소품 같은 것들을 보면 잠깐이라도 사람이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랄까.
또 친구들이랑 귀여운 굿즈 사서 나누면, 우리끼리만의 소속감이 생긴다. 같이 좋아하는 걸 공유하면서 ‘아, 나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도 들고.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인형 키링 소품숍 이용 건수가 2022년 대비 약 112%나 증가하는 등, 청년들에게 무해한 것들의 소비는 단순히 ‘예뻐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고립된 마음을 연결해주는 매개이자, 잠시 현실을 멈추게 하는 휴식 버튼이다.
PART 2: 갓생과 아보하 사이, 흔들리는 마음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삶의 태도에 대한 단어를 꼽자면 바로 ‘갓생’과 ‘아보하’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단어들은 완전히 반대되는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갓생’은 계획적이고 치열하게 자기관리를 하며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인 반면,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뜻하는 말로, 특별한 목표 없이 그저 무탈하고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뷰한 학생과 에디터 포함, 많은 대학생들이 이 두 라이프스타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갓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과 부모님 세대의 기대에 짓눌리면서도, 동시에 무기력함과 피로감에 아보하로 기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성공과 안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안착하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2024년 전국 대학생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전체 표본의 43.5%가 우울 위험군, 16.4%가 자살 위험군이라고 밝혔으며, 최근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정신건강 고위험 비율이 무직자·취업 준비생, 전문직 보다 더 높다고 알려졌다. 이유는 대학생들이 진로, 취업, 대인관계, 삶의 방향 설정 등으로 심리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데이터는 대학생들이 겉으로는 갓생을 추구하면서도, 속으로는 심리적 부담과 불안을 안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 갓생이라는 말처럼 하루하루 완벽하게 사는 게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공해야 해’,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해’라는 사회적 기대가 무겁게 느껴져서, 그 압박감 때문에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성공해야 한다는 기대와 현실의 불안 사이에서 자꾸 갈등이 생긴다. 때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지만, 그러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양심에 찔린 채 뭐라도 하곤 한다.
가족이나 사회가 바라는 ‘성공’과 ‘안정’이라는 기준이 너무 높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갓생보다는 평범한 행복과 아주 보통의 하루에 가까운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갓생을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웃프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심리적 갈등이 일상적이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도, 자기 관리와 성취에 대한 이야기와 동시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이 공존한다. 결국, 청년들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그냥 쉬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며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으려 애쓰는 중이다.

PART 3: 공감과 연대 그리고 작은 실천
다행히도 현재 대학생들이 서로 지지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우선 각 대학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 마음센터’가 있는데, 상담부터 심리검사,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까지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룹 상담 등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마련해 주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 없이 편한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청년마음센터는 정신건강 통합 플랫폼인 ‘블루터치’를 통해 온라인 상담, 자가 진단, 마음챙김 워크숍 등을 제공한다. 특히 19~39세 서울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은 진단 후 맞춤형 상담과 사후관리까지 이어져서 지속적인 케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밖에도 요즘은 ‘마음챙김 명상’이나 ‘디지털 디톡스 챌린지’ 같은 소소한 실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매일 5분씩 호흡 명상이나 일기 쓰기와 같은 습관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 심리상담 카페와 같은 힐링 목적의 공간들도 생겨나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 지지하는 문화도 확산 중이다.
: 이전에 교내에서 소통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한 집단상담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사실 상담이라고 하면 좀 꺼려졌던 건 사실인데, 학교에서 운영한다는 점과 특정한 목적을 위한 상담이라고 하니까 일종의 자기 계발처럼 느껴져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갔었다. 혼자만의 고민을 절대 남에게 얘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비슷한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지고, 공감받는 느낌이 컸다.
최근에는 방학 겸 버킷리스트였던 템플스테이를 며칠 다녀온 적이 있다. 사찰이 단순히 종교적인 공간을 넘어서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공간, 편안한 공간, 도움이 되는 공간이 되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템플스테이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 방학 때도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활동과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과하게 몰입하는 것의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멈춤의 시간을 건강하게 보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 삶에서 갓생과 아보하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버티고 의미를 찾는 방식이다. 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때로는 열심히 달리다 지치고,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으니까. 결국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대학교 3학년, 2학기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 에디터는
2025년은 3학년, 올해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학기가 코앞이다. 주변을 보면 갓생을 살겠다고 매일을 꽉꽉 채우는 친구도 있고, 아보하를 외치며 잠시 멈춰 쉬어가는 친구도 있다. 나 역시 그 사이에서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때로는 무기력함에 빠지기도 한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무해력 소비’와 같은 말들이 그저 지나가는 유행에 불과한 것이 아닌 우리 안에 깊게 자리한 불안과 피로를 대변한다는 걸 느꼈다. 모두가 완벽해 보이는 세상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아 힘들어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비슷한 고민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을 대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떤 형태의 삶이건, 바람직한 삶의 형태를 하나로 정해놓고 그렇게 살아야만 좋은 삶이라며 찬양하거나 위기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자기 계발 열풍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갓생’과 ‘아보하’ 사이에서 삶의 기준점을 스스로에게 두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면 될 것이다.
우리가 진짜 필요한 건 일회성 소비로 그치는 위안이 아니라,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와 진심 어린 연대라는 생각이 든다. 다가오는 9월의 새로운 학기를 다들 조금 더 가볍고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으면 한다.

콘텐츠를 읽으며 공감하거나 위로를 느꼈다면, 댓글로 여러분의 경험을 나눠주길 바란다. 또한 대학내일에서 다룬 주제 중 여러분의 고민이나 생각에 도움이 되었던 글이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작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 더 많은 대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힘이 될 것이다.
##무해력 #갓생 #아주보통의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