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지도 없는 항해', 자유전공학부에서 살아남기
방황에서, 방향으로!
"전공이 뭐예요~?"
그럼 십.중.팔.구 돌아오는 말이 있다.
"그래서...뭘 전공할건데요?"
이런 식의 대화, 대학 오고 나서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전공이 없다는 건 곧 설명이 필요하다는 뜻이었고, '정해지지 않음'은 때때로 불안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나조차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학부에 들어왔건만, 사람들은 그 불확실함을 꼭 확인하고 싶어 했다.
정해진 길이 없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시작한 대학생활.
'나는 뭘 좋아하지..?' '뭘 잘하지..?'
어떻게 보면 '자유'였지만, 동시에 '방황'이었다.
나의 적성을 찾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자유전공 학부생인데도, 이미 가고자 하는 과가 명확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3년 내내 교대 진학을 꿈꾸다 갑작스럽게 자유전공으로 오게 된 나는,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어떤 전공이 나와 맞을지 전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다다익선 수강신청'.
가능한 여러 전공들을 다양하게 접해보고 싶었기에, 필수 학점보다 훨씬 많은 전공탐색 수업을 신청했다.
회계학, 국제통상학, 문헌정보학… 전공명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학문들이 수업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보며,
나는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에는 국제통상학이 가장 끌렸고, 미래의 진로와도 연관될 것 같았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커리어를 꿈꿨고, 수강 신청을 할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과목도 국제통상학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나와 가장 잘 맞았던 건 전혀 예상치 못한 ‘문헌정보학’이었다.

수강 신청
"대실패"로, ‘미달 과목이나 채워야지’ 하고 넣었던,
막연히 도서관학쯤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전공은, 정보의 흐름과 체계, 기록물과 데이터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데이터와 정보, 그리고 사람을 연결하는 이 학문이 지닌 실용성과 따뜻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너무나도 따뜻하신 교수님들 덕에, 더욱 그 전공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 짓는 요소들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예고없이 찾아왔다.
적성과 관심이란, 머리로만 추측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과제를 하면서도 덜 지치는 내 모습을 보며,
발표 준비가 즐거운 순간들을 마주하며, '나에게 맞는 공부'를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2. 도전의 용기를 심어준 선배 특강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선배 특강’이었다.
내가 수강한 전공탐색 수업들에서는 모두 선배 특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문헌정보학 수업에서
세 번이나 진행된 선배 특강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학과별 진로 정보도 물론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대학생활과 삶의 방향에 관하여 주신 조언들은 불안정했던 나의 마음 속에 올곧은 심지를 심어준 느낌이었다.
선배 특강을 진행해주셨던 세 분 모두 공통적으로 강조하셨던 말이 있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말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는 동안, 나는 여러 분야를 광범위하게 탐색하며 때로는 내가 뒤처진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꿈을 찾아나가는 그 시간들이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선배들의 말 덕분에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고,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우연히 학교에서 들었던 우은빈 작가님의 강연도 나에게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평소 인터넷 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고, 동경했던 ‘우자까’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가치 판단의 중심은 언제나 내 안에 있어야 하며, 스스로를 문장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내 다이어리 속에,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다.
이처럼 여러 곳에서 접한 인생 선배들의 조언과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고, 내가 나답게 꾸준히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아가 나도 언젠가 멋진 선배가 되어, 이분들처럼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해주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3. 자유전공 최고난이도 퀘스트, 친구 만들기
(........눈물.........)
자유전공학부생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점 중 하나는 의외로 '친구 사귀기' 였다.
지방에서 갓 상경한 나로서는 학교 생활을 함께 하며 공강 시간을 즐길 대학 친구가 절실했다.
자유전공학부의 특징은 다양한 전공의 수업을 수강할 수 있고, 시간표를 자유롭게 본인 나름대로 구성할 수 있다.
그 말인 즉슨, 시간표가 그 누구와도 거의 겹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친밀감이라는 것은 사실, 자주 만나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유전공생은 두 학기 모두 다른 전공, 다른 수업, 다른 시간표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는 것이 매우..매우 어렵다.
같은 전공의 동기들과 수년간 함께하는 타 학과생과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대부분 수업을 혼자 듣다 보니, MBTI 극 I인 나로서는 친구 사귀기가 꽤 큰 도전이었다.
오죽하면 교수님과의 상담 시간에,
"00씨, 친구 사귀기 많이 힘들죠...?"
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그렇기에 교양 수업에서 우연히 시간을 공유하는 친구를 만나면, 더없이 반갑다.
같이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이야기하면서 차츰 친구가 되어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대단한 인연은 아니지만, 낯선 캠퍼스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큰 위로가 된다.
'친구 만들기' 라는 말이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 그 몇 명의 친구는 단순한 '교양 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다.
4. 동아리, 대외활동 : 수많은 발걸음이 만든 나만의 길
고등학생 시절,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지식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 멋지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고 주변에서도 교사가 어울린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에, 당연히 나는 교사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원서를 준비할 무렵, 대부분의 학교 선생님들이 교대 진학을 반대하셨다. 그 말을 계기로 나는 ‘내가 정말 교사가 되고 싶은 걸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품어왔던 꿈을 주변 권유에 따라 쭉 밀고 온 것은 아닌지, 정녕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더 넓은 세상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자유전공학부 진학을 결심했다.
그 선택의 연장선에서, 나는 대학 입학 후 연합 교육 봉사 동아리에 가입했다.
초등학교와 지역아동센터를 돌며 직접 수업을 기획하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소통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생생하고 보람찼다. 교실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선생님이 아닌 학생의 입장에서 시작한 교육 활동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고, 단순한 봉사활동이었음에도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밤늦게까지 수업을 연습하던 시간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접한 다양한 학문들이 흥미로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 혼란스러움은 더 커졌다. 모든 일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열심히 하다 보니 무엇이든 흥미를 느꼈다.
지금까지 경험한 다양한 활동들이 미래의 직업과 직접 연결될지, 좋은 스펙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설령 연관이 없더라도, 하나하나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완성해가고 있으며,
천천히 내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주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남들에 비해 느리더라도 말이다.
또한, 교내외 서포터즈 활동부터 다양한 공모전 참여, 그리고 대학생 행정인턴에 이르기까지, 내가 경험한 폭넓고 다채로운 활동들은 단순한 ‘스펙’을 넘어,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5. 자유전공, 가장 나다운 속도로 나아가는 방법 : 방황에서, 방향으로!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전공 못 정했어?" 라고.
하지만 자유전공학부에서의 학교 생활은, 어쩌면 '가장 나다운 속도'로 고민하고 탐색하는 여정인 듯 하다.
입시의 압박 속에서 단기간에 서둘러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닌, 찬찬히 나를 알아가며 결정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보다 앞서나간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며
내가 나아가야할 길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고 있다.
때로는 방향을 잃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순간도 있지만, 지금 이 경험들이 모여 꿈을 향한 전공 선택의 계기가 되고, 결국엔 나만의 길을 만들게 될거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다.
자유전공학부에서의 생활은, 흔히들 말하는 '전공에 소속된 안정감'은 부족했지만, 대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그토록 원했던 주도적으로 나에 대해 탐색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자문하게 만들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결정되지 않은 것들도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유예의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자유전공학부생으로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내 삶을 설계하는 도면이 되고 있었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나는 나만의 방향을 그려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