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할머니가 모르셔서 그렇지 요즘은 다들 오타쿠로 살아요"

덕질로 가치 창출하기: 덕후력(力)

“아직도 그런 거나 좋아해서 뭐 먹고 살래?”

추석 명절, 할머니 댁에서 하루종일 어렸을 적 보던 만화를 정주행하던 덕후들이라면 한 번 쯤은 꼭 들어봤을 법한 대사이다. 이 말에는 두가지 공격 포인트가 있다. 바로, ‘아직도’와 ‘그런 거나’. 이제 대학생 정도가 되었으면 좀 더 생산적인 것들에 애정을 쏟아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별 가치가 없나, 그런 고민이 들게 만드는, 제법 폭력적인 대사인 것이다. 

(아, 물론 걱정 섞인 애정의 잔소리인 건 알지만.)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 무엇이 와도 이길 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 

무언가를 깊이 몰입해 좋아하고 애착을 가진 이런 사람을 '덕후'라고 한다.

한때는 애니메이션 팬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더 넓은 의미로써 진한 취향을 가진 모든 이를 통칭한다. 이런 덕후들은 만화, 레고, 음악, 스포츠, 게임 등 전 분야에 보석처럼 숨어 있다. 


명절 잔소리와 달리 요즘엔 이 취향이 무기가 되는 세상이다. 

저마다 개인 인스타 매거진을 만들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공감하고 연대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실제로 수익을 창출해내기도 한다. 2025년, 인스타 매거진이 트렌드가 된 이유도 덕후들의 강하고 빠른 연대 때문일 것이다.

현실 공간에서는 괜히 공개하기 꺼려지던 나만의 취향을 인스타에 끄적이면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함께 공감하고 즐긴다. 한 마디로, 덕후가 승리하는 세상.


아직도 그런 거나 좋아해서 뭘 먹고 살고 있는, 두 인스타 매거진 운영자 (덕후)를 만나보자.








단시간에 2.4만 팔로워, 애니계의 밈 강자
@ani_meme_guy


Q. 채널 한 줄 소개 부탁드린다.

인스타그램으로 애니 관련 밈과 릴스들을 제작해 업로드하고 있는 채널이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계정인데 벌써 2만 팔로워가 넘게 되었다.




Q. 채널을 만든 계기가 있다면?

내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유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니 덕후’에게는 어딘가 안좋은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당당하게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다.

또, 내가 본 애니와 밈들을 조합해 콘텐츠를 만들면 꽤나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계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Q. 본인의 취향으로 사람들이 뭉치고,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는데, 그 기분은 어떤가?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모두 공감하고, 서로 공유하고, 또 댓글을 달며 웃어주는 걸 보면 너무나 즐겁다. 그래서 혼자 머릿속으로 콘텐츠를 구상하는 과정도 점점 재밌어지는 것 같다. 

<가장 결혼하기 싫은 에반게리온 캐릭터 TOP 5>

<리바이의 TMI 모음>

Q. 그렇다면 본인이 덕후라고 생각하는가?

습… 인터넷을 보면 ‘애니를 몇 개 봐야 덕후다’, ‘특정 애니를 봐야 덕후다’ 등 덕후의 조건에 대한 기준들이 상당히 많다. 나도 나름 애니를 봐왔지만, 모르는 애니도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기준들을 보면서 ‘아, 나는 덕후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인스타 계정을 운영해나가면서 애니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느끼고 나서부터는 스스로 애니 덕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타쿠가 별 것인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면 덕후가 아니겠는가? (웃음)


Q. 사실 취향은 제법 개인적인 영역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취향으로 몇 만명의 공감을 사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속 가능하게 계정을 운영하려면,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보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콘텐츠를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만 재밌어도 안되고, 팔로워만 만족시켜도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콘텐츠를 올리는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들을 하나씩 콘텐츠에 넣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전 게시물과의 반응을 비교해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면서도 사람들이 공감할 요소를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내가 진짜 좋아하는 분야에서, 타인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살피는 태도. 그게 핵심인 것 같다.


meme 천재



Q. 애니에 대한 덕후력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입장에서, 본인의 취향에는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SNS를 보다 보면, 단순히 돈이나 능력만으로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 게 아니라, 취향에 대해서도 비교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취미에 그렇게까지 진심이 아니었구나’, ‘내 취향은 생산성이 없구나’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취향은 깊이와 상관 없이 본인의 개성과 선호를 알게 해주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자아를 갖기 위한 필수 요소인 셈이다. 또 깊지 않은 취향이라도 얼마든지 생산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고 그냥 ‘좋으면 좋은 거지’라는 마인드로 하던 거 계속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디어 구상

Q. 그렇다면 그런 취향이 무슨 가치가 있냐고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타인의 이런저런 취향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 공적인 영역에 들어가 가치를 창출해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치만 그렇게 "취직이나 할 것이지 무슨 덕후들이 돈을 벌지?"라고 말하거나, '누가 저런 걸 좋아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매일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무심코 보는 콘텐츠들도 사실은, 얕든 깊든 특정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것들이다. 이걸 깨닫는다면 모든 취향에는 가치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Q. 단순한 취향을 무기로 만드는 데 필요한 자질을 무엇일까?

공유. 타인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취향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왜 그걸 좋아하는 지를 다시금 느끼게 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취향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Q.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이 없는 청춘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은 유행하는 것만 소비하게 되기 쉬운 세상이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을 거라 생각한다. 취향으로 꼭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 지 아는 사람이 앞으로 더 건강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느꼈다. 겉보기에 멋있는 취향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며 자기만의 애정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ani_meme_guy드라이브 계정 : 보물 창고




꿈 꾸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음악 덕후,
@noisyneighborhood ,이도헌


@noisyneighborhood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채널소개 부탁드린다.

나는 영상 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나만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대학생이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경역학 전공이고, 영상학과를 복수전공했다. 물론 현재는 군 복무 중이다. 총 두 개의 채널을 운영 중이다. 이번에 소개 될 노이지네이버후드는 [일상 속 다양한 예술에 주목하고, 아이코닉한 방법으로 여러분들께 소개하는 문화예술 기획 팀]이라는 슬로건 아래, 주로 인디 아티스트 분들과, 음악 창작가를 꿈꾸는 대학생들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하고 있다. 라이브클립, 다큐멘터리를 위주로 하며, 예전엔 오프라인 대학생 락페스티벌을 주최하기도 했다.

또, 개인 채널인 @denoise_film 에는 뮤비, 사진등의 개인 연출 작품들을 올리고 있다.





Q. 채널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사실 항상 영상제작에 대한 열망이 컸는데, 생각만 하다보니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단 뭐라도 해보자‘ 해서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인 음악을 주제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 친구들을 내 옥탑방에 불러서 쉬운 커버 영상을 찍고 병맛으로 편집하는 게 전부였다. 그때는 개인 채널도 없어서 내가 몸 담았던 밴드부 채널에 업로드 했었다. (웃음) 근데 하나를 만들고 나니,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며 터무니 없는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과정이 있었기에 점점 형태를 갖춘 콘텐츠를 꾸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대학교 밴드 동아리, 그다음엔 실음과생들, 그다음엔 인디밴드와 싱어송라이터들까지 주인공을 확장해나가며 나도 팀원들도 성장해나갔던 것 같다.



Q. 본인만의 취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분은 어떤가?

사실 나의 취향으로 연출한다는게 되게 꿈만같을 줄 알았는데 기획단계, 그것도 맨 처음에만 설레는 것 같다 (웃음) 모든 영상 제작자들이 그럴테지만 아이디어 구상이 제일 재밌고, 완성(뒷수습)은 고통속에 해내는 것이다…(한숨)


Q. 본인이 덕후라고 생각하나? 왜 그것을 좋아하는가?

덕후의 기준을 잡고자 하면 자신이 얼마나 해당 분야에 딥(deep)한지 비교하게 되어서 딱히 생각 안하려고 한다. 그냥 내가 이걸 조금밖에 몰라도 엄청 좋아하면 덕후인거고, 저걸 진짜 많이 알아도 그닥 안좋아하면 덕후가 아닌 것 같다. 사실은, 어떤 걸 좋아하는 것에 정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좋다면 좋은거지! 좋아하면 다 덕후다!

그러므로 나는 음악 덕후, 영상 덕후인듯하다 (웃음)밴드 공연을 하는 도헌님

성균관대학교 대동제 무대에 오른 도헌님



Q. 가장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가 있다면?

‘아사달’ 이라는 인디밴드의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슈퍼루키 경연 과정을 담은 [Asadal Road to Pentaport]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이제 막 꿈을 향한 첫 발걸음을 시작한 청춘들이 꿈을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이 잘 담겨서 나도 개인적으로 정말 만족감이 컸던 촬영이었다.

아사달 뮤비 촬영 현장

Q. 하지만 sns에서 유명세를 타고 규모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가?

sns에서 유명세를 얻어, 시장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두는 분들에게는 정말 쉽지않은 것 같다. 물론 나는 그걸 목표로 삼진 않았기에 딱히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원하는 나의 영상을 만들면 끝. '취향으로 가치 창출하기'에서 말하는 '가치'는 돈이나 명성, 팔로워 숫자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도 포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만의 가치를 성취해나가는 중이다.


Q.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이를 콘텐츠화 시키는 것은 모든 덕후들의 꿈일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앞으로는 넓고 많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 보다는 취향의 감도가 깊고 짙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인스타같은 매체로 유명세를 얻고 끊임없는 콘텐츠로 관심도를 지속시키는 것보다는 하나의 영상을 만들더라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고 싶다.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도를 갖고 무엇이든 소개할 수 있도록 연구를 한 뒤, 웰메이드 컨텐츠를 만들고 싶다.

한 마디로, 내 덕후 분야를 덕후답게 풀어내는 것.


초기 콘텐츠, 옥탑 LIVE: 대학생의 이야기를 담다


Q. 아직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지 못한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껏 경험해온 바로는 “일단 당신이 하게 두어라” 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자취방에서 싸구려 커버영상을 통해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나처럼 말이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겁 먹을 시간에 해보고, 자꾸만 나아가보는 거다. 

이것 저것 다 맛보다 보면, 자기만의 덕질 대상을 찾을 수 있을테니까.


 Q.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자신만의 힘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스로의 특별함에 대한 우직한 믿음. 

일단 당신의 취향이 단순하고 누군가 갖고 있는 취향 중 하나일 뿐이라고 믿지 마라. 당신의 취향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도 믿지 마라! 자신의 특별함에 대한 멍청한 믿음만이, 당신을 ‘세상 수많은 사람중 하나’로 치부시키지 않을 테니. 어렸을 적 부모님이 여러분께 각인시키려 했던 것처럼, 당신의 생각, 취향, 선택들 모두는 유일무이하다. 이 믿음을 끝까지 관철시켜나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필요한, 그리고 유일한 자질이다.




지금까지 두 명의 ‘덕후’를 만나 그들의 덕후력이 무기가 되는 과정을 함께 보았다. 

취향은 스스로 소유할 때 가치가 있다. 이를 찾아가는 길에서 방황하더라도 괜찮다. 

두 인터뷰이가 말했듯, 고유한 자신만의 길을 찾아 가다보면, 언젠간 자신만의 덕질 대상에 안착하게 될테니. 

나아가 취향을 평가당하는 일도 온당하지 않다. 

그러니 염려의 마음에, 당신의 덕질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어르신들을 신경 쓰느라 가치 있는 풍경을 놓치지 말고, 이번 추석에는 되려 삐딱하게 외쳐보자!

“할머니가 모르셔서 그렇지 요즘은 다들 오타쿠로 살아요.”

##대학생 #취업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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