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길래. . .
필자는 최근 검은 상자에 내 새빨간 사랑을 넣곤 리본으로 꽉 묶었다. 한동안은 그 안에서 나오려고 격렬하게 발버둥치다가 이제는 근묵자흑이라고 참 조용하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 틈새로 굳이굳이 삐져나와 날 욱씬하게 하기도 하고 또 기쁘게 한다. 이러한 경험이 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겪었단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어떻게 다들 이 슬픔과 상실감을 이겨내었는지 두 손 두 발 모두 빌어 그 비법을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글과 영상과 기록된 남들의 사랑 이야기들을 열심히 훔쳐보았다.(?) 이번 컨텐츠를 통해 사랑으로 힘든 그대가 당시의 나처럼 조금이나마 치유받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에게로 가는 길. . . 책 ‘데미안’
사랑은 그 시작부터도 참 힘들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 역시도 날 좋아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날 하루종일 솜사탕으로 만든 구름 위에서 무중력 상태로 거닐는 느낌일테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인 것 같다. 그 감정의 주체는 본디 나 자신일진데, 이건 핸들이 고장난 오톤트럭처럼 주체가 안된다. 한 사람이 내 기분을 이리저리할 수 있는 건 참 마술 같다. 그게 간혹은 너무나 싫지만 어쩌면 난 무언으로 동의한 셈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계기가 이유 없이 그냥 그 사람 자체일 때도 있지만, 사실은 그를 사랑하는 상태가 좋거나 그가 가진 내 일부 때문일 수 있다. 이렇게 사랑은 진정한 자신에게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경험이다. 얼마나 우리는 자신을 모르는가. 내가 그에게 그토록 화가 나는 것은 어쩌면 내가 몸에 붙어있는 껍데기 조각 때문이다. 어떤 건 초강력 본드를 붙여놓았는지 떼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결핍을 깨닫고 누군가 또는 스스로를 통해 채워야 하는 과제를 인생이란 기간 동안 부여받았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결핍을 서로를 통해 충족시키는 게 바로 사랑이 아닐까.
타자와의 사랑을 통해 나에게 한 걸음 가까이 갈 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기적같이 시작된 우리의 사랑도 잘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 책 데미안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정말 최고다! 아마 남은 인생 동안 필자는 데미안을 옆구리에 끼워 놓고 세상의 풍파가 마구마구 몰려올 때면 한 번 헛기침을 하며 책을 펼쳐서 내 안의 여리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거다. 어떤 내용인가. 본인의 좁은 시야에서 본 대로 상술하자면. 우리 인간은 그 설계가 사회적 동물인지라 외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불안함을 느낀다. 결국 한 사회에 들어가게 되는데, 혹자는 평생을 해당 사회의 가르침을 아무런 의문 없이 살아가기도 하나 혹자는 의문에도 홀로 설 용기가 부족하여 잔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책은 소리가 작고도 작은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야한다고 하는 것 같다. 그 과정은 아마 -정말 언제나 들어도 심장이 뛰는 비유- 자기 세계를 파괴하는 새일 것이다. 결국 자신이 있을 수 있게 한 알, 즉 성장하기 위해선 누군가에 대한 의존은 필연적이며 결핍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얽매어 개구리, 도마뱀, 개미 또는 반인반어로 남지 말고 자립해야 한다. 이 과정은 보통 인간이면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워 방황할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럴때면 운 좋게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와 같은 이들을 우연히 만나, 그 고독하고 적막한 길 위에 다시 두 발을 올려놓게 될 것이라고 한다.
또 책은 사랑에 대해 속삭인다. 필자 생각에 싱클레어는 사실 베아트리체, 에바 부인이 아니라 데미안을 사랑한 것 같다. 동성을 사랑함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으니 이성인 그들에게서 그와의 유사성을 집요하게 찾아내어 그 자신의 알 껍데기 안에서 안전하게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까지 닿는 과정, 그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들에서 필자는 사랑을 배웠다. 사랑은 간청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사랑은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고 끌어당기게 된다고 한다. 필자는 그 구절을 읽다가 무성의 비명을 질렀다...

그대가 만약 짝사랑하는 상대가 생긴다면 이 기술을 이용해보라. 필자는 아주 열심히 적용 중이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습니다. . . 영화 ‘첫사랑’

필자는 최근 영화가 부쩍 빠져 있다. 아무래도 마음의 상처가 아직은 벌어져 있어 모든 게 마치 무릎 위 상처가 헛발길질로 페달에 닿았을 때처럼 생생하게 직접적으로 느껴져서인가보다. 이 영화는 왕가위 감독과 오래 합을 맞춘 갈민휘 감독의 영화이다. 아무래도 이전의 것과 대비하여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생소한 게 좋을 것 같아 이것으로 선택했다.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유튜브 영화에서 단. 돈. 1500원에 평생 시청할 수 있다.
나에게 영화의 초반부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 영화의 전개 방식이 사랑에 관련된 일화를 계속 다듬어가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미 결제까지 했겠다, 금성무의 리즈 시절을 보겠다는 일념 아래 영화를 틀어두었는데 결국 필자는 이 영화와 함께 나의 첫사랑을 정리했다.
영화는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3부와 4부가 정말 좋았다. 3부는 몽유병 환자와 청소부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4부는 조미나의 이야기이다. 하나씩 차례대로 음미해보겠다. 먼저 3부의 줄거리이다. 몽유병 환자는 아무리 침대에 온 몸을 끈으로 칭칭 감아도 밤이면 밖으로 나가 정처없이 배회한다. 그런 불안한 그녀를 자주 목격한 청소부는 곁에서 동행하기로 한다. 많은 날의 데이트들은 그녀는 꿈 속에 있기에 기억되지 못하고 청소부만이 알 뿐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영상을 찍게 되고 동행하는 그 남자가 점점 궁금하기 시작한다. 청소부 역시 자신의 사랑을 전달하기로 하지만 어딘가 엉성한 그의 사랑은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필자가 느끼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의 각색 같기도 했다. 둘이 사랑이 밤에만 이루어지며 프시케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면서-여기서는 몽유병이 나으면서- 에로스(청소부)의 얼굴을 궁금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첫사랑은 필연적인 엉성함으로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게 참 속상하다. 처음인데 좀 너그러이 봐줄 수 없는 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청소부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영상을 남기기로 하는데,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어지럽게 흔들어대는 장면이다. 용기 냈지만 이런 자신을 사랑해줄지 몰라 그렇게 표현하는 게 참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한편, 4부가 이 영화의 정수다. 조미나는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 테토녀이다. 결혼 반지를 주는 등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의 상대에게 그 사랑은 버겁고 무서웠나보다. 그의 상대는 결혼반지를 가지고 도망가 다른 여자와 가정을 이룬다. 조미나는 10년이 지났음에도 그 사랑을 잊지 못했기에 그를 계속 찾았고, 결국은 그의 앞에 서서, 그가 어떤 말이라도 하길 기다리며 콜라 한 병을 아무 말 없이 비우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사실 결혼 반지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사랑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가 가지고서 회피해버렸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상대는 결국 10년만에 그녀의 사랑을 직면한다. 참 조미나가 그 사랑을 내려놓는데 얼마나 힘들고 힘겨웠을까. 사랑이 참 웃기다.

글을 마치며. . .
참 사랑이란 게 뭘까. 하나의 사랑이 떠오르고 저물 때까지 모든 게 쉽지가 않다. 왜 이리 다들 사랑에 목매다나.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다. 그러나 그걸 초과할 뿐이다. 교양 수업에서 반수면 상태로 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에 대한 철학이 훅- 내 심장에 충돌하고 그 잔해를 무심히 두고 갔다. 그 잔해를 치우며 두고두고 생각한다. 아... 사랑은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 만나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다.
한 번은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너무 많은 감정을 상대에게 주면 그 다음 사람에게 줄 것이 없어진다고. 나도 계획하지 않은 다음이, 다음이, 계속 생겨나다보면 그렇게 될까?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그 결론은 알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최선을 다하자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보이지 않는 건 사랑인가 그저 시간낭비인가.
어떻게하면 다음 사랑은 상하기 전 최적의 상태에서 유지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감정은 그냥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나의 내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먼저 생각한다면 날 비난하는 것 같던 말들이 다르게 들리지 않을까.
사실 소개할 작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여기서 글을 마무리해야한다니 속상하다. 글을 쓰는 과정은 결국 나 자신을 치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펜을 자주 들어보아야 겠다. 후속 컨텐츠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