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우리는 왜 디지털카메라를 소환한 걸까?

그건 아마 <진짜>에 대한 갈망 때문일지도 몰라...

20대가 디지털카메라를 왜 이리 좋아해

2022년 겨울, 뉴트로 열풍에 불을 지핀 뉴진스의 ‘Ditto’ 이후 디지털카메라는 반짝 유행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디카는 여전히 살아 있다! 당근과 번개장터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판매글이 올라오고, 인기 기종에는 순식간에 ‘거래 완료’가 붙는다. 동묘 일대나 을지로 세운상가 카메라 상점에도 20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상태 좋은 모델은 부르는 게 값이다.


코닥 이지쉐어 C143으로 촬영된 'DANCING ALONE' 컴백 프로모션

아이돌들 역시 디지털카메라에 푹 빠졌다. 피드를 새로고침하면 디카를 들고 있는 수지, 카리나를 비롯해 셀럽들의 선택을 받은 디카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평균 나이 17세의 신인 아이돌 키키(kiiikiii)는 Y2K를 전면에 내세운 콘셉트 포토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했다. 서랍 속 유물로 여겨졌던 디카는 이제 Z세대에게 ‘있으면 좋은 취향템’을 넘어 ‘일상 속 필수품’에 가까워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4K와 256GB 정도의 스펙이 당연해진 시대다. 아이폰 카메라는 어느덧 4,800만 화소에 도달해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왜곡된 색감에 초점마저 나가기 십상인 디지털카메라를, 노이즈가 가득한 구형 아이폰 카메라를 다시 꺼내 들고 있는 걸까. 정말 특유의 질감과 레트로한 감성이 전부일지.


죽기 전 인생 사진 딱 한 장을 남길 수 있다면? 가장 최신 사양의 아이폰 카메라와 빈티지 디지털카메라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후자를 답한 두 대학생을 만났다.

나에게 디카란 기다림의 미학
H양, 국어국문학과 23

디지털카메라를 애용하는 것 같은데,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는?
처음에는 디카 사진만의 느낌이 좋아서 찍기 시작했다. 순간을 기록하고 바로 확인하기보다, 직접 SD카드를 분리한 뒤 옮기면서 결과물을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설렘을 주는 것 같다. 친구들과 모여 사진을 하나씩 넘겨 보고 공유하는 시간도 좋다. 예전에 디지털카메라를 쓰던 시절에 대한 동경도 한몫하는 것 같고....

사진을 사진 그 자체로 대한다는 것
Y양, 경영학부 22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면.
스마트폰은 기능이 너무 많고 복잡한데, 디지털카메라는 오직 사진만 찍는 기기라는 점이 좋다. 일부러 MP3를 쓰는 느낌이랄까. 스마트폰은 때로 너무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웃음)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어떤 점에서 다르게 느껴지는지?
디카로 찍으면 장면 전체가 더 담기는 것 같다. 단순히 화질이 좋은 핸드폰 카메라보다 더 많은 정보가 들어 있는 느낌이라....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추가된다. 폰으로 찍을 땐 '이거 인스타에 올리면 되겠다' 생각이 바로 드는데, 카메라로 찍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든다. 사진을 그냥 사진으로만 대할 수 있어서 좋다.

디지털카메라를 다시 꺼낸 이유는 결국 사진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빠르게 찍고 확인하는 대신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손이 떨리면 떨리는 그대로 담기는 진솔함. 기술의 고도화로 도태되었던 디지털카메라가 같은 이유로, 도리어 낭만의 신문물로 재탄생했다.

아네모이아(Anemoia)를 아시나요
최근 디지털카메라와 더불어 LP, 카세트테이프, 시티팝, 클래식 영화까지. 이 모든 열풍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아네모이아(Anemoia)'가 자주 언급되는데,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시대에 향수를 느끼고 그리워하는 감정을 뜻한다. 흔히 알고 있는 노스탤지어가 개인의 과거 경험 또는 기억에 뿌리를 둔 개념이라면, 아네모이아는 실제로 살아 본 적 없는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다소 모순적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여러 연구는 디지털 피로감과 불안정한 현실을  배경으로 꼽는다빠르고 완벽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사람들은 오히려 느리고 불완전한 것들에서 위로를 받는다 흐름은 근본이즘(Fundamentalism)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된다AI 시대에 역설적으로 전통과 원조 ‘진짜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이다한때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졌던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클래식 음악의 인기가 해마다 치솟는 것도 이를 보여 준다인공지능이 감히 흉내   없는복제 불가능한 오리지널에 대한 갈구인 셈이다.


2026 is the new 2016 🦩
그렇다면 이 밈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건 아닐까. 2016년을 잠식시킨 아날로그 파리 필터는 소위 '오줌 필터'와 함께 수많은 흑역사(...)를 남겼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모두가 '2016 aesthetic'을 그리워한다. 어딘가 촌스럽고 불완전하다는 것은 반대로 인간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디지털카메라를 다시 손에 쥔 20대는 단순히 과거를 좇고 있는 것이 아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각자만의 클래식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디지털카메라#디카#필름카메라#캠코더#레트로#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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