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쉼청년일까? 사회는 왜 쉬는 사람을 불편해할까
시작의 3월, 멈춤을 의심받는 3월
새 학기, 새 출발, 새 목표. SNS에는 개강 인증샷과 다이어리 첫 페이지가 줄지어 올라온다.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질문의 대상이 된다.
“요즘 뭐 해?”
“그럼 지금은 쉬는 거야?”
최근 ‘쉼청년’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일하지도, 공부하지도 않는 청년. 잠시 멈춰 있는 청년.
이 단어는 중립적인 설명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변명과 해명의 뉘앙스를 함께 달고 있다.
마치 ‘쉬고 있음’은 설명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처럼.
3월의 사회는 유독 쉼에 인색하다.
앞으로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멈춘 사람은 쉽게 의심받는다.
게으른 건 아닐까, 뒤처진 건 아닐까, 준비 없는 선택은 아닐까.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쉼청년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쉼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쉼이란 무엇일까
대학생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게 되었나
<나는 어떤 쉼청년일까> 테스트
아래의 질문 중 가장 많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선택지를 골라보자.
정답은 없지만, 지금 당신의 상태를 점검해볼 수 있을 것이다.
Q1. 쉬는 중인데도 가장 자주 드는 생각은?
A. 이 시간,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B.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지금은 회복이 먼저다.
C. 이 시간을 계기로,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Q2.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을 들으면?
A. 괜히 준비 중인 계획부터 설명하게 된다.
B. 짧게 대답하고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다.
C. 딱히 정해진 답은 없지만, 불편하진 않다.
Q3. 아무 일정 없는 하루를 보내고 난 뒤의 기분은?
A. 불안하다. 하루를 낭비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B. 공허하다. 아무 감정도 안 드는 게 오히려 낯설다.
C. 생각이 많아진다. 질문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다.
Q4. 쉬는 동안 가장 힘든 건?
A.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B. 사람과 일정에 다시 휘말릴까 봐 드는 피로감
C. 선택지가 많아진 만큼, 결정해야 할 것도 늘어났다는 점
Q5. 지금의 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A. 쉬고 있는데, 계속 증명하고 있다.
B. 멈추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쉬고 있다.
C. 잠시 멈춰서 방향을 고르고 있다.
출처 : 핀터레스트
만약, 테스트 결과 A가 가장 많다면
당신은 '불안형 쉼청년'이다.
쉼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검증하고,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는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쉬는 동안에도 불안해지는 건,
그만큼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출처 : 핀터레스트
만약, 테스트 결과 B가 가장 많다면
당신은 '번아웃 회복형 쉼청년'이다.
지금의 쉼은 선택이라기보다 회복에 가깝다.
성과보다 감정이 먼저 고갈된 상태일 수 있을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당신을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출처 : 핀터레스트
만약, 테스트 결과 C가 가장 많다면
당신은 '사유·탐색형 쉼청년'이다.
쉼은 끝이 아니라 이동의 준비 단계에 가깝다.
경쟁의 속도보다, 나에게 맞는 리듬을 고민 중일 수 있다.
지금의 질문은
앞으로의 선택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테스트 결과가 무엇이었든,
아마 몇 개의 문장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쉬고 있는데도 불안한 마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더 버거운 감정,
혹은 이 시간을 계기로 다른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는 감각.
실제로 쉼을 선택한 대학생들의 하루도 그랬다.
같은 ‘쉼’이라는 말 아래 있었지만,
그들이 머물러 있는 상태는 조금씩 달랐다.
지금부터 만난 세 명의 대학생은
각기 다른 이유로 멈췄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쉼을 견디고 있었다.
출처 : 핀터레스트Q1. ‘쉼’을 선택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실 “이제 쉬어야겠다”라고 결심한 순간이 분명하게 있진 않았어요.
어느 날도 늘 하던 것처럼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해야 할 일 목록은 분명한데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예전엔 버티는 힘으로라도 과제를 했고, 새벽까지 남아서 뭐라도 하나 더 붙잡았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노트북을 켜놓고 몇 시간을 그냥 멍하니 보냈어요.
머릿속은 계속 시끄러운데,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마치 제 의지를 몸이 거부하는 것 같았고, 실제로 몸 상태도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니까, 그때서야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느낀 감정은 안도감보다는 불안에 가까웠어요. 쉬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기대보다, 이대로 가면 나만 뒤처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더 컸거든요.
Q2. 쉼을 선택한 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이었나요?
“그래서 그동안 뭐 할 건데?”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상대는 가볍게 던진 말일 수 있는데, 저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괜히 자세를 고쳐 앉게 되더라고요.(웃음)
사실 쉬기로 했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설명하고 있었거든요.
자격증 준비할 거고, 인턴도 알아보고 있고, 대외활동도 몇 개 지원했어… 이렇게요.
그 말들이 쌓일수록 ‘나는 지금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유예받은 상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3. 아무 일정도 없는 하루를 처음 마주했을 때, 솔직한 기분은 어땠나요?
편안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불안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해야 할 게 없다는 사실이 처음엔 낯설고, 그 다음엔 죄책감처럼 다가왔어요.
예전엔 일정이 많아서 힘들었는데, 막상 하루가 비어 있으니까 ‘이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나’, ‘지금 이 상태가 괜찮은 건가’ 같은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래서 쉰다고 하면서도 하루 종일 자격증 일정 검색하고, 인턴 공고 보고,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됐어요.
Q4. 쉬는 동안에도 계속 스스로에게 증명하려 했던 게 있나요?
계속 “나는 아직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걸 증명하려 했던 것 같아요.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도, 다른 활동에서만큼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마저도 예전처럼 잘 안 되니까,
갑자기 제 모든 선택이 틀린 것처럼 느껴졌어요.
결국…
쉬는 중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불안해질 것 같아서,
오히려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더 많이 비교하게 됐어요.
Q5. ‘쉼청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설명은 되는 것 같은데, 동시에 변명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쉼’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그 단어를 쓰는 순간부터
왜 쉬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쉼청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그냥 ‘지금 멈춰 있는 상태’라고 말하고 싶어요.

Q6. 이 쉼이 끝난 뒤, 이전과 똑같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나요?
예전처럼은 못 돌아갈 것 같아요.
그때의 저는 항상 최대치로 달려야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거든요.
지금은 적어도, 멈춰 있는 상태에서도
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려고 연습 중이에요.
완전히 나아졌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은 제 상태를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Q7. 지금 쉼을 고민 중인 또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쉬는 동안에도 불안한 게 정상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쉼이 곧바로 회복으로 이어지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멈추지 않았으면, 저는 더 크게 무너졌을 것 같아요.
쉬고 있다는 걸 계속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그 자체로도 충분하니까.
출처 : 핀터레스트음, ‘쉼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걸 인정한 순간에 가까웠어요.
22학점을 꽉 채우고, 대기업 대외활동 두 개에 학생회까지 병행하던 학기였는데요.
물론 성적은 잘 나왔어요. 3학기 연속 4.5로 수석이었고, 겉으로 보면 잘 굴러가는 사람처럼 보였죠.
그런데 문제는 감정이었어요.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갑자기 사람들이 너무 싫어졌어요.
지하철에서 누가 말을 걸까 봐 이어폰을 꽉 끼고,
회의에서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것도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아, 이제 진짜 한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가장 컸던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오히려 공포였던 것 같아요.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너 정도면 쉬어도 되지.” 라는 말이요.
위로처럼 들리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진 않았어요.
마치 ‘열심히 했으니까 잠깐 멈춰도 되는 자격이 있다’는 조건 같았거든요.
그래서 쉬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했어요.
‘이제 나 뭘로 나를 설명하지?’
해방감보다는 공허함에 가까웠어요.
알람이 울리지 않는 아침이 이렇게 낯설 줄 몰랐어요.
하루 종일 아무도 저를 찾지 않으니까,
제가 그동안 얼마나 일정에 기대 살아왔는지도 처음 알게 됐어요.
초반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난 게으르진 않아.”, “이 정도 생각은 하고 있어.”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계속 ‘괜찮은 쉼’의 기준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금방 지쳐버렸어요.
그래서 오히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지금의 쉼은 성과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리두기에 가까워요.
솔직히 좀 억울했어요.
제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해서 쉬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동시에, 저 같은 사람이 많다는 뜻 같아서
이상하게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또 쉬고 있다는 말이,
회복 중이라는 상태까지 포함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이전처럼은 못 돌아갈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요.
예전엔 버티는 걸 능력이라고 착각했는데,
지금은 멈출 줄 아는 것도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버티는 걸 능력이라고 착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멈추지 않으면,
나중에는 멈출 힘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은 꼭 해주고 싶어요.
쉬는 건 도망이 아니라, 계속 살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요.
출처 : 핀터레스트처음부터 ‘쉬려고’ 휴학한 건 아니었어요.
일본 교환학생을 준비하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일정이 미뤄지면서 예상치 못한 공백이 생겼어요.
처음엔 당황했죠.
계획했던 궤도가 어긋나니까, 갑자기 공백이 생긴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공백 안에서
제가 왜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다들 바쁜데 너는 뭐 하니?”
이 말이요.
주변 친구들은 대외활동, 인턴, 공모전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 경쟁 구도 자체가 너무 숨 막혔어요.
한국에서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는 삶이
저랑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됐어요.
이상하게 죄책감보다는 멍한 기분이었어요.
해야 할 일이 없으니까,
그동안 미뤄왔던 질문들이 하나씩 떠오르더라고요.
‘나는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덜 답답한지’ 같은 것들이요.

한 번쯤은 있었어요.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보니까
‘나도 뭔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어서,
친구가 하던 대외활동에 같이 지원하기도 했고요.
막상 해보니,
제가 정말 원하는 건 ‘활동’이 아니라
이 경쟁 구도 밖에서 살 수 있는 선택지라는 걸 더 분명히 알게 됐어요.
저를 정확히 설명하는 말 같진 않았어요.
쉬고 있다기보다는, 방향을 고르는 중에 가까웠거든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런 상태를 전부 ‘쉼’으로 묶는구나 싶었어요.
아니요.
돌아간다기보다는, 다른 길로 가게 될 것 같아요.
일본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에는 캐나다 워홀을 계획하고 있고요.
한국의 속도 말고,
저한테 맞는 리듬을 찾고 싶어요.
아무 결과가 없어 보여도,
질문을 붙잡고 있는 시간은 분명 남아요.
그 시간이 나중에 어떤 선택으로 이어질지는,
조금 지나서야 보이더라고요.
아무 답이 없어도, 질문을 붙잡고 있는 시간은 분명 의미가 있다.
쉼은 왜 늘 설명이 필요해질까
세 명의 인터뷰는 모두 ‘쉼’이라는 같은 단어에서 시작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태와 이유는 전혀 다르다.
하루는 멈췄지만, 마음은 계속 달리고 있었다.
쉬는 동안에도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 같았고,
불안은 쉼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라이언은 정반대였다.
성과는 최고점에 있었지만, 감정은 이미 소진된 상태였다.
그에게 쉼은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다.
하니의 쉼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계획이 미뤄지며 생긴 공백 속에서,
‘이 속도로 계속 살아가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에게 쉼은 멈춤이 아니라 방향을 고르는 시간에 가까웠다.
출처 : 핀터레스트이처럼 쉼청년이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에는
불안, 회복, 탐색처럼 서로 다른 얼굴이 공존한다.
그래서 어쩌면 중요한 건
‘나는 쉼청년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지금 나의 쉼은 어떤 상태에 가까운가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왜 쉼을 이렇게 불편해할까
나는 쉼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