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전공생의 인생OO
3인 추천작 챙기면 심심한 대신 삼삼한 3월
결코 길지는 않았으나 짧았다기엔 섭섭한 2n년 인생. 스물 하고도 얼마의 햇수를 모으는 동안, 영혼으로 받아들인 작품들이 있다. 인생을 관통하는 명작 앞에는 인생이라는 호를 달아 주고 싶어진다. 인생영화, 인생노래, 인생소설 — 그런데 전공생의 인생작은... 얼마나 대단할까?
영상과 음악과 문학을 배운 20대 셋에게 인생OO을(를) 물었다. 어수선한 3월의 여백을 이들 추천작으로 채운다면, 담백한 감동을 건네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
신성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20학번

인생영화로 <인사이드 아웃>을 선택한 이유는?
감정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캐릭터로 만들어 엮은 영화라는 데 매력을 느꼈어요. 특히 슬픔도 필수적인 감정이며, 슬픔을 마냥 숨기고 피하는 대신 받아들이면 훗날 행복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 준 작품이에요.
마음에 새겨진 장면을 고르자면?
주인공이 사춘기를 겪는 동안 다양한 감정이 탄생하는데, 이런 대사가 나와요.
난 이기적이야. 난 친절해. 난 부족해. 난 좋은 사람이야. 잘 적응해야 해. 하지만 나답고 싶어. 난 용감해. 하지만 겁도 나. 꼭 성공해야 해. 난 좋은 친구야. 난 나쁜 친구야. 난 강해. 난 약해. 가끔 도움이 필요해.
예전에는 제 자아를 한 가지로 규정하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며 서로 충돌하는 모습들까지도 전부 '나'임을 수용하게 됐어요. 다양한 기억이 모여서 신념을 만들고, 그 신념이 자아를 이룬다는 걸 이해했거든요.
어떤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새로운 상황과 관계를 맞닥뜨리며 자아에 혼란을 겪는 스무 살, 스물한 살이요.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겪는 취준생에게도 좋을 거예요.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인사이드 아웃>을 처음 본 건 좋아하는 아이돌 때문이었어요. 기쁜 기억을 가리켜 '노란 구슬'이라고 표현하는 걸 듣고 궁금한 맘에 찾아봤거든요. 영화에서 기쁜 기억은 노란 구슬, 슬픈 기억은 파란 구슬로 머릿속에 저장돼요. 이후에는 저도 기억의 색깔을 분류해 기록을 남겨 보기도 했어요.
<인사이드 아웃 2>가 개봉했을 때, 매일 팀플로 밤을 새우느라 몹시 지쳐 있었어요. 그래도 이 작품만큼은 개봉 당일에 보겠다는 생각으로 심야 상영을 예매했어요. 처음엔 주책인가 싶었는데, 관람 후에 커다란 위로를 얻고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이 또한 슬픔이 행복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걸 느낀 경험이에요.
앞으로 어떤 순간에 이 영화를 다시 찾을 것인지?
사실 이미 주기적으로 찾고 있어요. 나쁜 기억이 생긴 날에는 영화를 보며, 이 기억이 결국 더 큰 행복을 가져올 거라는 희망을 품기도 해요. 그래서 1년에 최소 한 번은 꺼내 보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수두룩하겠죠. 그럴 때 좌절하기보다, 영화를 보며 한바탕 울고 스스로 다독이며 일어날 거예요. "씩씩하게 이겨내자!"
세우 <하루 (with YUNHWAY)>
김다빈, 재능대학교 실용음악과 24학번

인생노래로 <하루>를 선택한 이유는?
가사가 정말 좋은 곡이에요. 저도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 울고 싶을 때 울도록 해 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한 사랑 노래만 찍어내기보다는요.
마음에 새겨진 가사를 고르자면?
내일이 사실 너무 두려워 다오늘보다는 좀 더 낫겠지만뭐든 기대할 수밖에 없어 난
괴로운 시기를 지나는 동안 이 가사를 들으며 버텼어요. '다들 이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깊은 상처 하나쯤 안고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어떤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우울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OST로 만들어진 노래예요. 그 영화를 본 다음 노래를 들었을 때 특히 위로받았어요. 다른 얘기지만, 이 곡을 부른 분과 프로듀싱한 분이 10년 연애 끝에 얼마 전 결혼하셨어요. 신기하죠? 그래서 마냥 어두운 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슬픔을 고백하는 가사 뒤에 실은 끈질긴 사랑이 있었다는 점이, 언제든 희망 한 움큼은 존재한다는 증거 같아서요.
앞으로 어떤 순간에 이 노래를 다시 찾을 것인지?
또 무너져서 일어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들을 거예요. 그리고 행복을 찾은 뒤, 과거의 괴로움은 웃어넘길 수 있게 된 시점에 다시 듣고 싶어요. 더는 가사가 제 얘기 같지 않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요.
위기철 <아홉살 인생>
박정혁, 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국어국문학전공 25학번

인생소설로 <아홉살 인생>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인생소설을 정한 적이 없었는데요. <아홉살 인생>의 인물과 내용은 읽은 지 오래됐음에도 종종 떠오르곤 했어요. 아홉 살배기 주인공 '여민'과 대학생인 제가 너무나 닮았다고 느껴서요. 말 그대로 제 인생에 곧잘 등장하는 책이라 인생소설로 택했어요.
마음에 새겨진 문장을 고르자면?
하지만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왜냐하면 나는 네가 여전히 좋기 때문이다. 너는 내 말을 가장 다정스럽게 들어준 아이였어. 그것만으로두 난 너를 잊지 못할 거다.
친구 '기종'이 주인공 '여민'과 다투며 한 말이에요. 철학적인 대목과 수려한 표현도 여럿 나오지만, 고작 아홉 살인데도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기종'의 모습이 부러워서 이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어떤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아홉 살로 살아본 모든 사람에게요. 초등 필독서이긴 해도 주인공이 그 나이답지 않게 조숙해서, 실제 초등학생보다는 오래전에 아홉 살이었던 사람이 훨씬 깊은 울림을 느낄 거예요.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저는 이 책을 노란색 양장본으로 처음 읽었어요. 그 생김새가 작중 주인공의 별명인 '노란 네모' 같아서, 소설 안과 밖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다시 읽으려고 서점에 갔더니 웬걸, 개정 이후에 표지가 흰색으로 바뀌어 버렸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쉽습니다.
앞으로 어떤 순간에 이 소설을 다시 찾을 것인지?
제 미숙함을 자각하는 시점에 다시 읽을 것 같아요. <아홉살 인생>은 미숙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주인공은 애어른처럼 속이 깊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서 마음을 열어 보이는 데 서툴러요. 주인공뿐 아니라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9세라는 숫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 미숙함을 상징하는 거죠. 그래서 대학생씩이나 됐는데도 아홉 살 '여민'에게 공감하나 봐요. 저는 여전히 미숙하니까.
전공생의 인생OO을(를) 결정한 감각은 뜻밖에도 슬픔과 괴로움과 미숙함이었다. 역시 청춘의 단짝은 혼돈인가 보다. 하지만 그 혼돈이, 가슴속 명예의 전당에 걸 작품을 알려 주고는 한다. 그렇게 남은 명작들은 푸른 봄 내내 믿음직한 버팀목으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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