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나 오늘부터 문학 소녀가 되.

독서 많이 된다. 자기 전에 책 생각 날거야.

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독서의 계절은 가을 아니냐고요?
...
모르는 소리.
'진짜' 문학소녀들은 봄에 책 읽습니다.

새내기들의 설렘으로 가득 찬 캠퍼스.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관심 없다는 듯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광장에 홀로 앉아 줄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는 나.
따뜻한 말차 라떼 한 잔과 무심한 듯한 검은색의 레더백, 여분의 책 한 권을 옆에 두고, 한 사이즈 큰 와이드 진에 빨간 체크 셔츠를 입고 있는 나.
바로 이런 mood. / 출처: 핀터레스트

올해 개강 추구미. 아직 결정하지 않으셨다면, 어떠신가요?

오늘은 캠퍼스에서 읽을 책 5권 소개해드려요.
추구미를 추구하다가 진짜로 책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는 책들로만 뽑아왔어요.
한 달에 책 10권씩 읽는 에디터가 실제로 읽어보고 추천드립니다.  

1. 두고 온 여름, 성해나

출판/창비
한 줄 평 : 누구나 어딘가에 담아두었을 모든 '두고 온 여름'들을 위하여.

‘혼모노’로 유명한 성해나 작가의 숨겨진 명작입니다.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이제는 원해도 함께할 수 없는 인연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작별할 수 있는지를 담담한 문장으로 풀어낸 소설이에요.

부모님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가 되었지만, 결국 영영 남이 되어버린 기하와 재하. 소설은 두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사춘기였던 기하는 새 가족을 맞는 일이 버거웠고, 계모와 재하가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해요.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를 여름이었지만, 그 시절을 그곳에 두고 떠나오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땐 몰랐겠죠.

내가 두고 온 여름, 그리고 그 여름 속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요. 지나간 계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속한줄

오래되어 코팅이 벗겨진 사진들 틈에 낯선 사진 한 장이 끼여 있었다. 아버지가 찍었다기엔 초점이 맞지 않고 노이즈도 심한 사진이었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숲을 골똘히 살펴보다 그것이 재하가 찍은 사진이라는 걸 깨달았다. 뻣뻣하게 걸어가는 나와 그런 내게 다가와 슬며시 팔을 두르려는 재하 어머니의 뒷모습.

그 사진을 오래, 아주 오래 들여다보다 나는 서랍 깊숙이 그것을 숨겨두었다.


2. 나목, 박완서

출판/세계사
한 줄 평 : 나무는 고목이 아닌 나목. 잎이 다 떨어진 채로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1.4 후퇴 이후 암담했던 서울을 배경으로, 트라우마 속에서도 끝없이 숨차게 달려야만 했던 주인공 경아의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박완서 작가가 스무 살 무렵 PX에서 근무하며 만난 故 박수근 화백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소설이기도 해요.

경아는 두 공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갑니다. 과거와 전쟁, 죽음의 공간인 ‘고가’와 현재와 물질, 생존의 공간인 ‘PX’가 바로 그것인데요. 자연스레 그녀의 자아도 두 갈래로 분열되고, 그 간극에서 고통받으며 발버둥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고목이 아닌 나목이죠.

나목 (裸木) :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

고정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고목이 아니라, 잎 없이 가지만 남았어도 꿋꿋이 봄을 기다리는 나목입니다.

경아의 이야기 속에는 짙은 고독과 절망,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 쓰던 아릿함이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문장력이 정점에 닿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책속한줄

그전, 수복 후의 나날들, 텅 빈 집과 뒤뜰의 은행나무들, 그 자지러지게 노오란 빛들, 비췻빛 하늘을 인 노오란 빛들, 아낌없이 쏟아지던 노오란 빛들, 지금도 눈이 부시다. 그때도 아니다. 그럼 그전, 그렇다. 그전, 그러나 나는 여기서 기억의 소급을 정지시켰다. 몇십 년이나 묵은 은행이 그 가을엔 왜 그렇게 처절하도록 노오랬던가. 난 그것을 보며 왜 그렇게 살고 싶고, 죽고 싶고를 번갈아가며 격렬하게 소망했던가. 지금도 그것이 궁금할 뿐 내 기억의 소급은 노오란 빛 속에 용해되어 다시는 헤어나질 못했다.


3. 파과, 구병모

출판/위즈덤하우스
한 줄 평 : 누구에게나 있는, 끝내 부서지지 않을 한 조각의 마음

실사 영화로도 개봉돼 화제가 됐던 구병모 작가의 대표작입니다. 사실 구병모 작가가 제 최애 작가라 어떤 작품을 소개할지 고민이 길었는데요. 좋은 작품이 워낙 많지만, 처음 접하시는 분께는 〈파과〉가 가장 좋을 것 같아 골랐습니다.

이 책은 한때 ‘레전드’로 불렸던 65세 여성 킬러의 이야기입니다. 젊었을 때 아무리 날아다녔더라도,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죠. 업무 수행은 점점 버거워지고, 마음도 예전 같지 않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타깃을 미행하던 중 폐지를 줍는 노인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그를 도와주게 되면서 임무를 그르치기도 해요. 더 이상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킬러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 거죠.

그렇게 상한 복숭아처럼 물러져버린 마음에, 어느새 사람들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자신도 모르게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것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면서, 스승이 절대 만들지 말라던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겨버려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잃는 것도 많아지지만… 그 상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오프 더 레코드로, 조각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성이 정말 흥미로워서 혐관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드려요. 다만 구병모 작가 특유의 문체가 문장이 길고 단어가 꽤 어려운 편이라, 술술 읽히는 타입은 아닐 수도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책속한줄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4. 단 한 사람, 최진영

출판/한겨레출판

한 줄 평 : 우리는 어짜피 전부 가까스로 사람일 뿐.

사실 최진영 작가님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구의 증명〉이죠. 안 들어보신 분이 없을 만큼 유명한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단 한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나무 이야기’예요. 뜬금없게 들릴 수 있지만,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가 중요한 의미로 등장합니다. 정확히는 나무를 바탕으로 한 목화라는 인물의 이야기인데요. 목화는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그 무작위한 죽음들 속에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존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고, 때로는 벌받아야 할 사람만 살아남는 장면도 등장하죠.

당연히 목화는 무너집니다. 왜 하필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지 괴로워하지만,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이 살린 단 한 사람이 이어가는 삶을 지켜보고 그 미래를 기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구원’의 의미를 조금씩 찾아가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반복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허망함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의 경중을 따지기보다, 오늘을 살아내는 일단 한 사람의 고유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용히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책속한줄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5.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출판/곰출판

한 줄 평 : 그래서, 인간의 삶이 과연 무용한 것일까요?

책을 읽고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 건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소설만 읽는 편식러인 제가 유일하게 끝까지 재밌게 읽었던 비문학이기도 하고요. 과학적인데도 낭만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해서… 한 권에 다 들어 있는 느낌입니다. 다만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게 가장 좋으니,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두루뭉실하게만 이야기해볼게요.

사실 이 책은 “어떤 책이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진화론과 분류학, 생물학, 우생학 등 과학계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하고, 동시에 작가의 삶과 철학적 고민, 사랑의 고백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수필이기도 하며, 한 과학자의 생애를 따라가는 평전 같기도 해요.

굳이 설명하자면, 이 책은 “인간은 과연 의미 있는 존재인가?”,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조용히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물고기’라는 종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평생 물고기를 연구하며 살아온 한 과학자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는 식으로요.

이 세상과 우리는 어떤 이름 아래 단정 지어 구겨 넣을 수 없고, 불확실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의 이유에 대해 한 번쯤 깊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해요.


#책속한줄

애나는 우생학자들이 그녀가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인생에서 펼쳐나가고 있다. 애나는 아이스티를 얼음처럼 차갑게 해서 마신다. 화초들에 물을 준다. 색칠을 한다. 페이지마다 가득한 활기찬 동물들을 칠한다. 서핑하는 여우, 카약을 타는 늑대, 줄지어 콩가 라인댄스를 추는 토끼와 달팽이와 나비 등.



캠퍼스에서 읽는 책은 이상하게 더 잘 읽힙니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도 좋고,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읽어도 좋고요.
딱히 멋을 부리지 않아도 그날의 공기와 기분이 책장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 소개한 다섯 권도 그런 봄날에 어울리는 책들로 골라봤습니다. 어떤 책은 두고 온 계절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책은 살아남기 위해 버틴 마음을 보여주고, 또 어떤 책은 끝내 지키고 싶어지는 것들이 생기는 순간을 건네기도 해요. 마지막 책은 읽고 나면 “삶이란 대체 뭘까” 같은 사유가 남을지도 모르고요.

개강하고 정신없고 마음도 바쁜 날이 많겠지만, 그 와중에 이어폰 끼고 책 한 페이지 넘기는 시간만큼은 꼭 지켜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여러분만의 ‘캠퍼스 책 읽기 스팟’이나 “이 책만큼은 진짜다” 싶은 추천작이 있다면 댓글로 살짝 공유해주세요. 

우리 이번 봄에는 정말로!! 다 같이 문학소녀(문학소년) 한번 해봅시다 📚🌿

#대학생#독서#봄#책#소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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