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개강 추구미는 미정입니다

3월, 추구미 없이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너는 추구미가 뭐야?”

언젠가부터 여자 셋만 모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가 됐다.

어쩌면 ‘추구미’는 요즘 MBTI보다도 서로를 가장 빠르게 이해하는 언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해가 갈수록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들의 무게가 늘어나는 게 실감나는 요즘,
이제는 올해의 내가 어떤 사람일지까지

미리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추구미가 없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올해의 추구미를 정하지 않기로 했거나 아직 미정인 사람들.
그 선택 덕분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개강을 맞이하게 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최0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24학번



원래부터 추구미가 없었는지

전혀요.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추구미가 분명한 사람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백예린이라는 아티스트의 음악과 그 사람 자체를 정말 많이 동경했거든요. 그래서 백예린처럼 청순하면서도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죠. 옷을 고를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항상 그 백예린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평소 제 말투나 표정까지도 그 분위기에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했고요. 새내기 시절에는 한창 추구미에 집착해서, 백예린을 따라 타투를 하려고 가격까지 알아본 적도 있어요. 결국 부모님 반대로 하지는 못했지만요.



추구미와 실제의 나 사이에 간극을 느낀 적이 있는지

오히려 그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쓸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일상에서 시도하기 힘든 스타일이 많아서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저를 가장 혼란스럽게 했던 건, 완벽히 추구미에 맞춰서 꾸미고 나간 날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나간 날에 주변 반응이 더 좋았던 거예요. 노력해서 만든 이미지보다, 의도하지 않은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게 조금 허무하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성향 차이도 꽤 컸던 것 같아요. 백예린의 MBTI가 INFP라면, 저는 ESTP거든요. 가만히 있기보다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런 제가 조용하고 몽환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다 보니, 계속 뭔가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건 나랑 안 맞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맞추려고 하니까 그게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추구미에 맞추려 애쓰는 시간이 과연 진짜 나를 위한 게 맞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추구미가 없는 지금, 개강을 맞이하는 마음가짐

이제는 개강이 예전처럼 설레기만 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 같아요. 대학교 3학년이 되니까, 새내기 때처럼 이미지를 새로 설정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상태를 이어나간다는 느낌이 더 커졌어요. 슬슬 취업을 생각하게 되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예전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는 건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보다는 ‘이번 학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 더 집중하게 돼요. 지금 당장 추구미가 없다고 해서 불안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까, 훨씬 현실적인 마음으로 개강을 맞이하게 되더라고요. 현실에 집중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내 추구미가 정확히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이 상태 그대로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제 모습을 조금 더 믿어보려고 해요.



추구미와 상관없이 애정하는 아이템



저는 향수 모으는 걸 좋아해요. 원래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향을 찾으려고 이것저것 비교해봤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향을 고르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계절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하나씩 모으다 보니, 책상 위에는 향기 제품들만 따로 진열해둔 공간이 생겼을 정도예요. .


요즘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여러 개를 섞어 뿌리기도 해요. 정해진 기준 없이 고르다 보니 오히려 더 편해졌고, 그게 지금의 저랑 잘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친구가 “너 주변은 항상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라고 말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되게 기분 좋게 남았어요. 그때부터 어떤 옷이나 헤어 스타일링보다도, 제가 좋아해서 고르고 매일 사용하는 ‘향'이 저를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아이템이에요.



이0민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26학번 (입학 예정)



원래부터 추구미가 없었는지

네.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추구미’라는 단어 자체도 작년에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떤 이미지를 정해두고 그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대학에 합격하고 나니까, 예술대학에는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괜히 ‘나는 어떤 이미지로 있어야 하지?’라는 고민도 자연스럽게 생겼고요. 지금까지 지방에서 쭉 살았어서, 서울로 상경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괜히 더 튀거나 뒤처지지는 않을지 이런 생각들이요. 이런 막연한 불안들이 결국 추구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 거 같아요.


어떤 이미지를 추구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다 보니, 평소에 많이 듣던 국내외 힙합이나 R&B 아티스트들이 떠올랐어요. 평소에도 음악만큼이나 그들이 가진 쿨한 태도나 힙한 스타일링이 멋있어 보였거든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아무 옷이나 액세서리를 이것저것 사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마음을 좀 비워둔 상태예요.



추구미와 실제의 나 사이에 간극을 느낀 적이 있는지

매일 느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아티스트의 이미지는 되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잖아요. 근데 실제 저는 그거랑 완전히 반대예요. 저도 음악을 하긴 하지만 성격은 굉장히 차분하고 소심한 편이고, 남의 눈치도 많이 보거든요.


그리고 현실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어요. 제가 유명 래퍼들처럼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교복만 입어와서, 뭐가 나한테 잘 어울리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 달 전에 큰맘 먹고 산 옷을 엄마 앞에서 보여줬는데, “진짜 그렇게 입고 다닐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괜히 더 위축되기도 했어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동경하는 대상들을 따라했는데, 그게 오히려 현실의 저를 계속 작아 보이게 만든 것 같아요.


추구미가 없는 지금, 개강을 맞이하는 마음가짐

아직은 딱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잘 섞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예체능 입시를 했어서,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설레요. 그리고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많다는 건, 오히려 모두가 튀려고만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도 분명 필요할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나만의 이미지를 억지로 만들려고 애쓰지는 않아요. 일단은 제가 가진 친절함과 공감능력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멋진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저도 점점 제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요? 취향도 자연스럽게 더 뚜렷해질 거고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제가 생각하는 ‘정말 멋있는 사람’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추구미와 상관없이 애정하는 아이템



처음 입시를 시작했을 때 부모님이 사주신 헤드셋이요. 저는 작업할 때 무조건 헤드셋이 있어야 해서, 그때부터 항상 들고 다녔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요즘은 패션용으로 헤드셋을 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노래는 에어팟으로 듣고, 헤드셋은 그냥 목에 걸어두는 식으로요.


친구들은 가끔 패션용이냐고 한마디씩 얹기도 하지만, 저는 헤드셋을 실제로 끼고 있든, 목에 걸어두고 있든 둘 다 일부러 꾸며낸 모습 같지 않고 그냥 제 모습 같아서 위화감이 없어요. 헤드셋 하나로 제가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제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각별한 아이템이라 고장날 때까지 계속 쓰려고 해요.




개강을 한 달 앞둔 2월, 
누구나 설렘과 걱정이 뒤섞인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지금 당장 내가 아닌 무언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자.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차분히 돌아보고,

지금의 내 모습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는 감각을 믿어보길 바란다.



EDITOR 이다경

INTERVIEWEE 최0솔 · 이0민













#대학생#추구미#인스타#트렌드#외모#공감
댓글 0
닉네임
비슷한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