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꿈을 찾아 떠나온 그대들에게

둥지를 떠나 도약을 시작한 모든 우리에게 행운을
꿈에 그리던 도시에 이른 뒤,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지였다.


기숙사 식당도, 자주 가던 단골 식당도 없었고,

집밥은 이 도시 어디에도 없었다.




출처_mysplendidlifestyle.blogspot.com

비 오는 날의 광화문역 사거리 사진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내 휴대폰 배경 화면이었다.
어두운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 비가 내려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각자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걷는 수많은 발걸음들.

내가 살던 도시의 막차는 밤 10시면 끊기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밤이 되면 언제나 거리는 조용해졌고, 늦은 밤에도 환하게 살아 있는 서울의 풍경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언제나 바쁘고, 현대적이고, 젊은 청춘들이 가득한 이 도시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마주한 서울은,

출처_@cdrizle

그러나 기대가 컸던 탓일까, 막상 서울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사소한 문제들을 비롯한 외로움뿐만이 가득했다.

기숙사식이 없는 기숙사에서의 저녁은 늘 고민이었다. 직접 밥을 해 먹자니 재료를 보관하는 것부터 번거로웠고,
매번 사 먹기엔 비용이 부담됐다. 배달 앱을 켜놓고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편의점으로 향하는 날이 반복됐다.

고향에서는 당연했던 집밥이, 이곳에서는 가장 쉽게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가 됐다.


병원 접수대 앞에 서서 초진 카드 인적 사항란에 저 멀리 위치한 나의 주소지를 기록할 때면 이 도시에 아직 내 자리가 없다는 느낌을 실감하곤 했다.


분명 손에는 네이버 지도 앱을 쥐고 있었지만, 이 도시를 몸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만 유난히 적응을 못 하는 건 아닌지, 괜히 약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낯섦과 외로움은 모두에게 비슷하게 찾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매는 만큼 나의 땅


P양 / S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25학번 / 자취

- 개강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나? 동기들이랑 놀다가 휴대폰이 꺼지는 바람에 집에 올 때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서 한참을 돌아온 적도 있어요. 안 그래도 아직 주변 지리를 몰라 헤매던 때였는데 그날은 괜히 ‘내가 여기서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뭐 어쩌겠어요, 내가 애써서 오겠다고 올라온 건데.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사는 것 같아요. 




L양 / D대학교 심리학과 25학번 / 기숙사

- 어느 날은 피자가 너무 먹고 싶은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날 아침부터 쫄쫄 굶어서 너무 배가 고팠던지라 그냥 통 크게 라지 피자 한 판을 시켰어요.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먹어서 그랬는지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외로워서 그랬는지 별로 맛있게 느껴지지도 않더라고요. 결국 사흘 내리 적어도 한 끼씩은 꼭 피자로 때웠어요. 

갑자기 서러워져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기숙사라 마음대로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는 게 진짜 웃펐어요.




H군 / D대학교 기계공학과 25학번 / 지역학사

- 주변에 연고가 없다는 걸 이렇게 크게 체감할 줄 몰랐어요. 몸살감기가 한 번 났었는데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도 없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병원을 찾아가는 게 너무 서럽더라고요. 

 내향인인 저에겐 친구 사귀는 것도 부담이었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 생각이 더 많이 났어요. 가끔 대학 수업 끝나고 옆에서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는 얘기가 들리면 부럽더라고요. 저는 동창 친구들이 다 떨어져 있거든요.




C양 / S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24학번 / 자취

- 집에 갈 때 날씨가 너무 좋으면 오히려 사무치게 외로워질 때가 종종 있어요. 고등학생 때는 매일 동네 친구랑 같이 하교하느라 혼자 집에 가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나는 뭐 하고 있나 하는 이런 생각이 들면 
그 때가 조금 그리워져요. 

 동네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어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를 사귀는 게 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그때는 몰랐죠.




S양 / H대학교 경제학과 25학번 / 기숙사

-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가족이 보고 싶어질 때예요. 동기가 주말에 엄마랑 데이트했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저도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을 시시콜콜 털어놓고 싶은데 고향까지 가는 기차표 가격이나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차마 쉽게 발이 안 떨어져요. 

 아, 학기 중엔 서울에 있고 방학 때는 본가로 내려가니까 아르바이트를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도 좀 힘들고요. 
다들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분들을 선호하시니까. 그래도 여러 단기 알바를 경험하며 프로 알바러가 되려 노력하고 있어요.



둥지를 떠난다는 것은

둥지를 떠난다는 건 처음부터 멀리 날아가는 일이 아니라 낯선 세상을 하루하루 견뎌내는 것에 가까웠다.
오늘은 길을 헤매고 내일은 저녁 메뉴 앞에서 망설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이 도시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아직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전히 집이 그립고, 익숙한 얼굴들이 떠오르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시간이 헛된 방황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각자의 이유로 둥지를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다.
혹시나 아직 이 도시가 낯설고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 도약을 시작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꿈을 찾아 떠나온 우리 모두에게 아주 크지 않아도 좋으니

새로운 둥지를 틀 수 있을 만큼의 작은 평안이, 하루를 버틸 만큼의 작은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



  대표사진 출처: @giannis_a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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