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01. 그냥 비행기 표부터 끊어
새해가 되면 다짐 리스트를 적어보곤 한다. 수많은 다짐 사이로 유독 눈에 밟히던 한 문장, 바로 ‘혼자 여행 가기’. 설렘 반 두려움 반, 상반된 감정을 가득 안고 일단 제주행 비행기 표부터 무턱대고 잡았다. 나의 여행은 그 무모한 '다짐'의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셈이다.

02. '아차', ㄴㄴ '나이스'
여행 날짜가 다가오는 7일 전, 3일 전... 그리고 당일 오전. "아차!" 아무런 계획 없이 공항에 도착해 버렸다. 가방 안엔 엄마가 챙겨준 책 한 권이 전부.
어떤 여행이 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해 본다. 공항의 풍경들—설렘 가득한 가족들, 바쁘게 업무를 보는 사람들, 유니폼을 입고 지나가는 승무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책 구절도 음미해 보곤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들이켜는 기분은 생각보다 꽤 근사하다.

03. 과연 나의 여로는...?
제주에서의 첫 아침, 배를 채우러 숙소 바로 옆 돈가스집을 갔다. '이럴수가' 인생 최고의 육즙을 만났다. 배를 채운 뒤 세화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창문을 살짝 열었다. '이럴수가22' 버스가 해안길이다.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지금’ 바다 향기, ‘지금’ 풍경, 그리고 ‘지금’ 이어폰에서 흐르는 노래. 눈을 감고 온전히 그 순간을 만끽한다.
세화에 도착한 뒤 자전거를 대여했다. 적막한 해안 도로를 페달을 밟으며 목청껏 노래를 불러본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누리는 완전한 자유였다. 홀 마감 2분 전 기적처럼 도착한 LP 카페에서 시간을 흐르듯 보냈다. 그러던 중 LP바 사장님이 갑자기 막걸리를 권하셨다. 알고보니 게스트하우스와 LP바가 함께 운영되고 있어 뜻밖의 연대도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섞여 막걸리 한 잔을 나누며 이름 모르는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였다. 낯선 대화에 스며들다 보니 어느덧 해는 저물어 있었다.

04. 그렇게 불완벽의 미학
항상 계획에 치여 살며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하던 내가, 이번 여행에선 왠지 모르게 아무런 생각 없이 ‘지금’에만 머무르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늘 완벽한 결과값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여행에서 혼자만의 시간은 내게 전혀 다른 답을 들려주었다. 빈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낯선 이의 다정한 막걸리 한 잔이 스며들 수 있고, 계획의 어긋남이 있어야만 해안도로를 달리는 버스 창밖의 바람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불완벽과 미완성이 모이면 비로소 완벽해진다. 흩어져 있던 '지금'이라는 찰나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가장 소중한 하루가 되었다.
그러니 당신의 오늘이 조금은 엉망이어도 괜찮다. 그 불완벽한 조각들이 모여 결국 당신만의 가장 근사한 인생의 '여로'를 완성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