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번이지만, 저도 새내기랍니다
봄날의 캠퍼스는 늘 설렘으로 가득하다.
3월이 되면 새내기들이 캠퍼스를 가득 메우고,
가을 개강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풋풋함이 곳곳에 스며든다.
그 새내기들 틈 사이로, 누군가는 3학년으로 새로운 학교에서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한다.
편입생은 3학년으로 입학하는 또 다른 형태의 새내기다.
낯선 강의실, 서먹한 얼굴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
1학년의 서툼은 대체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지지만 편입생의 '처음'은 조금 다르다.
같은 처음일지라도 고학년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편입을 결심한 순간부터, 합격 이후 다시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과정까지.
각기 다른 시기, 각기 다른 이유로 편입을 선택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세 명의 편입생을 만나보았다.
'고민보다 GO'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중앙대학교 러시아어문학전공 23학번 박제영입니다. 2025년에 편입해서 지금은 내년에 4학년이 되는 시점이에요. 전공 외에도 경영·경제·행정 세 학과가 합쳐진 ‘공기업 관리 연계 전공’을 함께 이수하고 있습니다.
편입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해요. 모의고사는 늘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왔는데 실제 수능에서 예기치 못한 성적표를 받아 무력감이 정말 컸어요. 전적대에서 수석도 하고 장학금도 받았지만, 스스로가 만족을 못 하니까 남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 싫더라고요.
그러던 중 학원 조교 알바를 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학원 선생님을 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목표를 정하면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결국 해내던 아이인데, 지금 너무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과거에는 도전을 좋아하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제가 봐도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 대화 직후에 바로 상담 받고 편입 학원을 등록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다면 재수라는 선택지도 있었을텐데, 편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수능을 한 번 망쳐보니까 이 시험 자체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의고사 때는 늘 성적이 잘 나왔는데 수능 당일 하루 만에 모든 게 결정되어 버리니까, 1년이라는 시간을 재수에 다 태워도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더라고요. 반면 편입은 수능과 달리 여러 학교를 지원할 수 있어 기회가 훨씬 많다고 느꼈어요. 무엇보다 제가 자신 있는 영어 한 과목에만 진득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제 강점을 더 확실히 발휘할 수 있는 전략적인 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편입 준비 과정에서 겪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두 번의 큰 슬럼프가 기억나요. 첫 번째는 4월, 벚꽃이 필 때였죠. 신촌의 예쁜 풍경과 대비되는 제 처지가 너무 싫어서 친구랑 전화하며 펑펑 울기도 했어요. 하지만 "모의고사 한 번 망한다고 안 죽는다"며 마인드 세팅을 바꿨고, 결국 5월 전국 모의고사에서 100점으로 전국 1등을 찍으며 극복했습니다.
전국 1등이라니 대단하네요! 하지만 그 순위를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5월 이후 성적이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됐어요. 저희 학원은 모의고사 순위가 실명으로 공개된 성적표를 게시판에 붙였거든요. 누구나 제 성적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무조건 잘 봐야 한다’는 강박과 ‘점수가 떨어지면 사람들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아웃으로 이어졌어요.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중앙대가 2지망이었는데, 어문계열은 예비 번호가 잘 안 빠져서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추합 발표일 직전에 일부러 월화수 알바를 꽉 채워 넣어 시간을 회피하려 했죠. 그러다 수요일 밤, 조기 발표를 확인하고 총장님의 합격 메시지를 읽는데 "진짜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기쁨보다도 '이제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편입 후 첫 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엔 정말 막막했어요. 러시아어는 필기체도 따로 있고 발음이나 억양이 워낙 세서 진짜 큰일 났다 싶었죠. 특히 우리 과는 정시 선발 없이 수시로만 선발하는 학과여서 이미 외고나 국제고에서 3년 동안 러시아어를 하고 온 애들이랑 경쟁해야 했거든요. 노베이스인 저로서는 "이 지옥에서 졸업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어요.
하지만 학과의 멘토링과 스터디를 정말 끈질기게 활용했어요. 학술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러시아 애니메이션 <마샤와 곰(Ма́ша и Медве́дь)>으로 섀도잉 학습도 하고 멘토 선배들과 예복습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첫 학기에 21학점을 모두 전공으로 채워 들으면서도, 러시아어 전공 과목에서 A+ 을 받는 값진 결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편입생은 학과 내에서 소외되기 쉽다는 인식도 있는데, 실제 학교생활은 어떠신가요? 사실 다른 과나 다른 학교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편입생끼리만 다니거나 혼자 공부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과는 학생회 차원에서 편입생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OT 때부터 먼저 연락해주고 챙겨주는 분위기였어요. 저 또한 1학년의 마음으로 동아리나 학술제, 회식에 먼저 적극적으로 참여했고요.
특히 2학기 때는 1학년 후배에게 멘토링을 받기도 했는데, 언니라고 부르며 잘 챙겨준 후배들 덕분에 더 빨리 녹아들 수 있었어요. 덕분에 내년엔 학생회 활동도 계획 중이고, 제 편입 동기는 4학년 과대까지 맡게 됐죠. 먼저 다가가고 물어보려는 노력만 있다면 학교생활은 기대보다 훨씬 더 다채로워지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우즈베키스탄 파견도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8박 10일간 다녀왔는데, 학교에서 일부 지원받고 개인 돈을 조금 보태서 다녀왔어요. 타슈켄트 동방대학교 친구들과 교류하며 오전엔 수업을 듣고 오후엔 현지 친구들이 가이드해주는 투어를 다녔죠. 수업 시간에 배웠던 중앙아시아의 유적지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마르칸트’ 같은 관광지도 가보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사실 중앙아시아는 여행으로도 가기 쉽지 않고 치안 걱정도 조금 있었는데, 학과 친구들과 단체로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어요. 한국어를 배우는 현지 친구들과 교류하며 글로벌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같은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신다고요. 어릴 때부터 공항이라는 공간 자체를 너무 좋아했어요. 공항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설렘과 기대감이 있거든요. 제가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제가 느끼는 이 설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하고 싶고, 제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일한다면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4학년을 앞둔 요즘,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3월 개강하면 인턴 지원을 본격적으로 준비해 볼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번 연도 안에 컴활 1급이나 한국사, 오픽 같은 필수 자격증들을 미리 따두려고요. 또 전공을 살려 러시아어 자격증인 ‘토르플(TORFL) 1급’ 취득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학과 학생회 활동과 전공 수업을 병행하면서 이 계획들을 다 소화해야 해서, 요즘은 ‘24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쪼개 쓸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는 중입니다. (웃음)
편입 도전 이후, 새롭게 꿈꾸는 도전이 있나요? 정말 사소한 건데, 운동을 좀 꾸준히 해보고 싶어요. 사실 제가 스무 살 들어서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제가 원래 무언가 진득하니 꾸준하게 하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편입 준비할 때도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 동안 아예 공부를 안 하고 접어버린 적이 있을 정도였죠. (웃음)
저는 사실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옮기고 나중에 스트레스를 받아 하는 성격인데, 지금까지의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시작부터 했고 결국은 무조건 해내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당장은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더라도, 나중에 성취하고 나면 결국 플러스가 되는 결과만 남는다는 걸 알거든요. 이번에도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마음으로 진득하게 건강을 챙기는 도전을 이어가 보려 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방탄소년단 노래 중에 ‘고민보다 Go’라는 곡이 있는데, 제 인생 모토가 딱 그래요. 사실 저도 편입을 도전할 때 ‘이거 실패하면 어떡하지? 내 날아간 시간은 누가 보상해 주지?’ 같은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다 일리가 있는 고민이고 충분히 해볼 법한 걱정이지만, 계속 반추하다 보면 결국 부정적인 생각들만 생기기 마련이더라고요.
세상에 안 힘든 건 없고, 무언가를 얻으려면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할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고민은 최소화하고 일단 행동으로 바로 옮겨보셨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수능을 망치고 많이 힘들었지만, 어쩌면 그 시간이 편입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실행력을 키워서 일단 저질러보세요. 고민할 시간에 일단 시작해보는 용기가 여러분을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다줄 거예요.
'그럼에도 전진'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22학번 이승주입니다. 2024년에 편입학했고 현재는 5학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입생 특성상 초과 학기를 하게 되어서, 이번 학기는 자격증 공부와 병행하며 미이수 과목 위주로 수강하고 내년에 졸업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편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해요. 일단 저는 동일계로 편입하게 된 케이스였어요. 전적대에서 설계 수업을 수강하면서 제 실력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학기에 진행했던 설계 수업이 생각보다 너무 재밌더라고요. ‘건축을 조금 더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건축사 자격을 따기 위해서는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KAAB)의 인증을 받은 5년제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해야 하는데, 이왕 건축을 계속할 거라면 정식 인증 받은 대학에서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초대졸 이후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학부 편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당시 친한 동기들 10명 중 5명은 대학원에 진학했고, 저를 포함한 단 2명만 편입을 선택했어요. 나머지 3명은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고요. 졸업 당시에는 저에 대한 확신이 너무 없어서 ‘나 따위가 어찌 감히 대학원을 가나’ 하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이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서 학부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밟으며 기초를 탄탄히 다져보자는 마음으로 편입을 선택하게 됐어요.

편입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같이 수업 들었던 친구들이랑 간식이나 쪽지 교환했던 소소한 순간들도 생각나고요. 또 제가 사실은 소심한 편이고 질문도 잘 못 하는 성격인데,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교수님께 질문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저도 모르게 질문을 우다다 쏟아내고 나오니까 한 시간이 훌쩍 지나 3시가 되어 있더라고요. 배고픈 것도 잊고 한 시간 넘게 몰입했던 그 시간이, 지금 생각해도 가장 뿌듯해요.
준비 기간동안 확신을 갖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보통 7월이나 10월에 슬럼프가 온다는데, 저는 시작 단계인 1, 2월에 마음고생이 제일 심했어요. 이게 맞는 길인지 확신이 없으니까 ‘안 되면 어떡하지? 그러면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걱정 때문에 매일 샤워하면서 울었거든요. 오히려 여름엔 이만큼 온 게 아까워서 별 생각 없이 묵묵히 하게 되더라고요.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가 기억나는지? 생생하게 기억나요. 설 연휴 직후였는데, 친구랑 놀고 있을 때 합격 문자가 왔어요. 마냥 신났죠. 그 때는 자신감도 가득 차있었고요. (웃음) 친구가 화장실 간다더니 케이크를 사 와서 축하해주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편입학 후 첫 개강, 어떠셨나요? 3월 2일 개강일에 했던 수강 신청날이 기억나요. 이화여대는 편입생 수강 신청 기간이 따로 없어서 정정 기간에 남는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거든요. 아침 9시부터 학교에 가서 교수님께 메일 보내고, 10분 단위로 새로고침하면서 잔여석을 재빠르게 낚아채야만 했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뭐든 첫 단추를 잘 끼우는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어서, 꽤 우울하고 슬픈 첫 주를 보냈죠.
편입생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동생들을 대하는게 어려웠어요. ‘꼰대 같아 보이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있었고요. 건축학과는 소수과인 데다 스튜디오 작업을 하니까 금방 친해질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 쉽지 않았어요. 다들 수업 끝나면 바로 집에 가버리더라고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먼저 용기를 내서 인사를 하고 다녀도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서먹해지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가장 힘들고 지쳤던 것 같아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해요. 부끄러워도 계속 먼저 다가갔어요. 다행히 복수전공생이나 복학생들도 꽤 있어서 그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과도 가까워졌죠. 나중에 동생들이 사실은 자기들도 언니가 어려워서 그랬을 뿐, 친해지고 싶었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때가 무색할 정도로 다들 친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웃음)

교통사고를 계기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21살 때 겪은 큰 교통사고 때문에 강제로 1년 휴학해야 했어요. 원래 제 계획은 ‘스트레이트 졸업’이었는데, 그게 완전히 틀어져 버린 거죠. 남들은 휴학 기간에 여행도 가고 다양한 경험도 한다는데, 저는 그 시간을 온전히 병원과 집에서만 보내야 한다는게 엄청 스트레스였어요.
하지만 입원 생활을 하면서 병원이라는 공간에 오랜 기간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병원 설계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졸업 작품 주제는 물론, 앞으로의 진로를 ‘헬스케어 설계’로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물론 현실적인 고민도 많아요. 병원 설계가 의학 지식부터 환자 동선까지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설계 중에서도 난도가 가장 높다고 하더라고요. 과거에 꿈꿨던 이상과 마주한 현실의 벽 사이에서 솔직히 좀 많이 쫄아있는 상태예요. (웃음)

3월의 새로운 시작을 앞둔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 끝에 졸업 전시를 내년으로 미루고 2학기 휴학을 결심했어요. 20대 전체를 학교에 쏟아붓고 있는 거 같아요. 휴학 기간 동안 부지런히 자격증 공부를 해서 기사 시험을 보려고요. 동기들은 졸업 전시랑 기사 시험을 병행한다는데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웃음) 돈을 모아서 여행도 다녀보며 제가 진정으로 하고싶은 게 뭔지, 잘하는 건 뭔지 등등 저 자신을 더 알아가며 저만의 경험과 시야를 넓혀보려고 합니다.
끝으로, 과거의 자신처럼 새로운 도전을 앞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처음 상담받으러 갔던 나에게 "너 나중에 이대 붙는다"고 하면 절대 안 믿었을 거예요. 도전이 두려워 숨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 과정이 다 자양분이 될 거라 믿었으면 좋겠고, 지금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불안과 의심은 나의 원동력'
(26.02.01 기준 경희대학교 사학과 합격)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이번 2026학년도 편입 준비생이었던 최영웅입니다.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에 최초 합격한 상태고 중앙대를 포함한 6개 학교에 1차 합격하여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입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해요. 전적대 입학 때부터 어느 정도 편입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사실 군 입대를 결정할 때만 해도 마음이 그렇게 강력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군대에 가보니 그곳에서의 시간이 생각보다 꽤 길더라고요. 이 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군대 동기들을 만났어요.

주변에 꾸준히 노력하는 동기들이 참 많았는데, 그 모습이 저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공군 동기가 한 명 있어요. 사실 일과 후에 자기 계발 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은데, 그 친구는 시험 준비와 같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야간 연등 시간에 항상 책을 읽거나 공부하러 가더라고요. 그 친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고, 결국 편입이라는 목표를 확실히 굳히게 되었습니다.

합격 발표를 확인한 순간은 어땠나요? 경희대 발표 날, 계속 시간을 확인하며 기다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그냥 자려고 했어요. 낮잠을 자다가 중간에 깼을 때도 ‘혹시 결과가 나왔나?’ 확인하고는, 아직 안 나왔으면 빨리 다시 잠들어야겠다며 억지로 잠을 청했죠.
마침내 결과가 나왔을 때, 화면을 켜두고는 종이로 슬쩍 가린 채 조금씩 내려가며 확인했어요. 그런데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고도 처음엔 정말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혹시 최종합격자 결과가 아니라 1차 결과인건가?’ 싶었죠. 수능이나 논술을 준비할 때 불합격만 봐와서 그런지, 합격이라는 말이 너무 어색했거든요.
군대 전역 후에도 부모님께 지원받는 게 항상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늘 있어서, 무조건 좋은 결과를 들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알려드릴 때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편입 준비를 하며 스스로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점이 있나요? 공부를 꽤 한다고 생각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비해, 수능 성적이 안 나와서 아쉬운 마음으로 대학에 가다 보니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나? 똑똑하지 않은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편입을 준비하면서 나도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찾았죠.
물론 제가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은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해요. (웃음) 가끔 쉬고 싶을 때 학원 계단에 나가보면, 도시락을 싸 와서 계단에서 식사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밥 먹는 시간 10분조차 아까워서 바로 내려가 공부하시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에겐 저런 꾸준함의 재능은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덕분에 제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한계를 동시에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입학을 앞두고 기대와 걱정이 공존할 것 같아요.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기대보다는 걱정이 확실히 큰 것 같아요. (웃음) 일단 전공이 경영에서 사학으로 아예 바뀌다 보니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고요. 또 하나는 제 나이 때문인데, 아무래도 1학년들이랑 같이 전공을 들어야 하다 보니 너무 아저씨 취급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있어요. 제가 학교 생활을 거의 안 해보기도 했고요. 또, 마음은 1학년이지만 현실은 3학년이라 졸업이나 취업 생각도 아예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즐기고 싶은 마음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앞으로 생각하는 진로와 꿈이 궁금해요. 제 목표는 증권사에서 일하는 거예요. 군대에 있을 때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취업 상담을 받으러 다녔거든요. 그때 알게 된 게, 개인을 상대하는 PB 직군보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IB 직군은 확실히 학벌을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 꿈을 위해 학벌을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편입을 결심한 것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투자가 가진 매력에 깊게 빠져 있어요. 투자는 자본의 논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구조부터 정치, 문화의 흐름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읽어내는 과정이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편입 후 염두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이 있다면? 우선은 입학 전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컴활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매일 공부하던 습관이 있다 보니 막상 입시가 끝나니 공허하더라고요.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회계사나 세무사 같은 전문직 시험에도 도전해 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새로운 도전을 앞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어떤 도전이든 그 과정에 있을 때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누구라도 스스로에 대해 명확한 확신을 가지기가 어려울 거예요. 저도 '이게 정말 될까?' 하는 의심이 늘 컸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의심이 오히려 저를 끝까지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했어요. 그런데 목표를 이룬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제 공부량이 결코 적지 않았더라고요. 당시에는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고 불안했기 때문에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도전을 앞둔 분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고 불안해하셔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불안해야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예민하게 찾아낼 수 있고, 끝까지 매달릴 수 있거든요. 그 치열한 의심의 마음이 결국 여러분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버티게 해줄 가장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