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가 인생을 이야기한다면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고 나면

은호가 혼자 걷거나 멈춰 서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들에서 그의 얼굴은 선택을 되짚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그 길로 가지 않았다면 지금은 달라졌을지를 생각하는 모습은 그닥 낯설지 않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비슷한 질문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공을 정할 때, 휴학을 고민할 때, 관계를 이어갈지 멈출지 선택해야 할 때마다 마음속에는 항상 하나의 문장이 남는다. 만약에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이 질문이 특히 크게 닿는 시기가 있다. 3월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간표를 채우고 목표를 적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정하지 못한 것들이 더 또렷해진다. 정원처럼 담담하게 나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은호처럼 계속해서 지난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도 많다. 모두가 출발선에 서 신나게 달릴 준비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기에는 작은 망설임마저 뒤처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의 선택 방식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일부러 시간을 들이는 태도가 늘고 있다. 휴학을 선택하거나 진로를 유예하고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두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실패나 뒤처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부산대에 재학 중인 A(경영학과 24학번)는 진로 고민 끝에 휴학을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왜 아직도 정하지 않았냐고 물어요. 예전에는 그 말이 불안했는데 지금은 제가 제 인생을 대충 고르지 않겠다는 뜻 같아요. 아직 답은 없지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요.”
A는 자신의 메모장에 매번 고민을 기록한다. 끝까지 쓰이지 않은 문장도 많고 지워진 생각도 많다. 그는 그 기록들이 언젠가 하나의 답이 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고민한 시간 자체가 자신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학생 B(서강대 화학과 24학번)는 진로를 정하지 않은 채 여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결과를 빨리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잘하고 있는 것보다 고민하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해요.”
B는 자신의 상태를 ‘미완성’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미완성은 멈춰 있음이 아니라 진행 중에 가깝다. 방향을 찾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늦춘 상태다.
두 사람의 모습은 영화 속 은호와 닮아 있다. <만약에 우리>에서 중요한 건 다른 선택이 더 나았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중요한 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는 태도다. 정원이 현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방식 역시 완성된 해답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처럼 보인다.
요즘의 20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완성보다 과정에 가까운 시간을 살고 있다. 결과가 보이지 않아 고전하고 질문이 많아 불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을 함부로 결정하지 않는다.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문장과 기록들은 실패가 아니라 신중함의 흔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