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처럼 보였던 시간의 정체
3월이 되면 주변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누군가는 새 학기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소속을 얻는다.
하지만 모든 20대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3월은 시작의 달이 아니라,
여전히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지는 계절이다.
대학생이 되면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하게 된다.
다음 학기, 다음 공고, 다음 결과.
대외활동과 인턴, 시험과 면접은 서로 다른 이름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문제는 준비가 길어질수록
스스로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자신을 ‘아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느낀다.
노력은 분명 진행 중인데,
평가는 늘 보류된다.
그 사이에서 준비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공백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공백은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만든다.
주변의 합격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면서도
마음 한편이 묘하게 무거워지고,
괜히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부족했던 순간들부터 떠올리게 된다.
‘아직 준비 중이에요’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이 아니라
변명처럼 들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누군가에게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20대에게
요즘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물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태에 대한 답변은 각자 달랐지만,
묘하게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 시간에 머물러 있다는 것”
영어영문학과 24학번
Q1. 요즘 스스로를 ‘아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요즘 제 일상은 계속 움직이고는 있는데,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시험을 준비하고, 지원서를 쓰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 있는데
그 어떤 것도 아직은 “이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계속 ‘진행 중인 사람’으로만 인식하게 돼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에도
설명할 수 있는 결과가 없다는 점에서
저는 자주 제 자신을 ‘아직인 상태’에 두고 있는 것 같아요.
Q2. 그 상태를 그렇게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여러 번의 불합격을 연달아 마주했을 때가 가장 컸어요.
그전까지는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었는데,
결과가 반복해서 부정적으로 돌아오다 보니
“나는 계속 준비만 하는 사람으로 남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부터 준비의 시간은 가능성이 아니라,
미뤄진 상태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Q3.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은 뭔가요?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다른 사람들은 하나씩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지
스스로를 계속 확인하게 돼요.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할 것도 없는 상태에서
괜히 하루를 되돌아보며
부족했던 점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Q4. 지금의 시간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뭐라고 부르고 싶나요?
저는 이 시간을 ‘유예’라고 부르고 싶어요.
끝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시작된 것도 아닌 상태.
당장 평가받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의미가 정리될 시간이라는 뜻에서요.

지금은 이름 붙이기 어렵지만,
지나고 나면 분명 하나의 과정으로 남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공백’보다는 ‘유예’라는 단어가 더 맞는 것 같아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하루는 계속 준비된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20대는
아직 완성된 단계에 있지 않다.
누군가는 조금 앞서 있고,
누군가는 잠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각자의 속도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이동 중일지도 모른다.
결과가 나오지 않은 시간은
멈춘 시간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과정일 수 있다.
합격이나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시간에도
분명 의미는 쌓이고 있다.
지금의 선택들이, 지금의 고민들이
어떤 방향으로든
다음 장면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지금의 나는 ‘부족한 상태’가 될 수도 있고,
‘과정 중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말해주고 싶은 건 단 하나다.
‘아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나를 너무 쉽게 축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지금은 단지,
그 이름을 아직 붙이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 시간 역시
당신의 다음 장면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