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영화 찍으면 멋질 줄 알았어요

불이... 났다고요?
“무슨 과세요?”
“영화과 다녀요.”
“와 그럼 영화 만들어요? 개봉은 언제 해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대충 넘겼다. 설명하기엔 길고 솔직히 말하면 그만큼 멋진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영화과의 이미지는 늘 비슷하다. 모니터 앞에 앉아 진지하게 화면을 들여다보는 감독, 주변에는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스태프들.

나도 처음엔 그 장면을 그대로 믿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말 자체가 하나의 로망처럼 느껴졌고, 촬영장, 카메라, 조명 같은 것들이 그냥 멋있어 보였다. 열심히만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를 하나씩 맡기 시작하면서 그 환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깨졌다. 촬영은 늘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시나리오는 계속 바뀌고 날씨는 우리가 정한 일정과는 상관없이 움직였고 장비는 중요한 순간에 고장이 났다. 예산은 항상 부족했고 머릿속에서만 가능했던 미술은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았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최대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 서면 늘 새로운 변수가 튀어나왔다. 기대했던 ‘영화 만드는 나’와 현실 속 ‘프로젝트를 감당하는 나’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한옥부터 막힌 제작의 시작

이번에 준비한 작품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필요한 것들도 단순하지 않았다. 한옥 로케이션, 시대에 맞는 의상과 소품, 그중 가장 먼저 막힌 건 로케이션이었다. 어디서 한옥을 구해야 할지 막막해서 샅샅이 조사해본 끝에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했다. 전화를 거는 동안 연결음 하나하나에 괜히 심장이 빨리 뛰었다. 어렵게 통화가 닿았지만,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이곳저곳으로 전화가 넘어갔고 결국엔 비용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저희는 학생이고 촬영 장소 홍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 말들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다행히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거 어디서 구해요?”의 연속


그다음은 미술과 소품이었다. 조선시대라는 설정은 생각보다 많은 디테일에 신경 써야 했다. 다양한 종류의 옷을 겹겹이 입어야 했고 장신구와 소품도 하나같이 구하기 쉽지 않았다. 분장과 헤어까지 포함하면 배우 한 명에게 들어가는 준비물만 해도 손에 꼽기 어려웠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또 그 사람의 지인까지 수소문하며 겨우 모은 것들이었고,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중고로 구해오기도 했다.

틈만 나면 모여 회의를 하고 콘티를 고치고 일정과 이동 동선을 다시 짜고 로케이션은 몇 번이고 답사했고 촬영날이 다가올수록 해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늘어났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스스로를 다그쳤다. 더 잘 만들고 싶었고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무엇보다 프로처럼 보이고 싶었다. 사실은 그게 가장 컸다. 아직 학생이지만 적어도 일할 때만큼은 어설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게 어느 순간부터는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열정이라기보다 조급함에 더 가까웠다.



불이... 났다고요?


촬영이 한창 진행되던 날이었다. 다들 각자 할 일에 정신이 없었고 시간은 계속 밀리고 있었고, 이 장면만 잘 넘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소품으로 쓰던 호롱불 아래에서 작은 불씨가 떨어졌다! 처음엔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세팅할 시간이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빨리 찍자.”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그런데 몇 컷을 더 찍는 사이 불씨는 더 커져버렸다! 그제서야 현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말수가 줄고 모두가 몸이 얼어붙었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 불을 끄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친 사람도 없었고 촬영 장소도 피해 없었다. 모든 게 정말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그날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다들 그 장면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식겁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 역시 웃으면서 맞장구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으면?’ ‘만약 누군가 다쳤다면?’ ‘우리가 대처하지 못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 집에 돌아와 촬영 준비 과정을 하나씩 떠올려 봤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넘겼던 부분들 ‘설마 문제 생기겠어?’라며 대충 넘어간 선택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미숙함들이 모여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받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프로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안전보다 결과를 먼저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많은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비슷한 선택을 한다. 마감 앞에서 일정 앞에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며 넘어가 본 적 아마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날의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내 태도를 그대로 비추는 장면 같았다. 열정이라고 믿었던 행동이 사실은 조급함과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음을 그제서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찍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계속 영화를 찍고 있다. 이유를 멋지게 설명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거창하진 않다. 그냥 재밌다. 누군가와 같이 뭔가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아직도 좋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내가 이 일을 쉽게 놓지 못하게 만든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안부를 묻고 다음 작업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예전의 나는 잘해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만 일을 대했다면 지금의 나는 무사히 끝나야 한다는 마음을 먼저 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잘 만들고 싶고 여전히 더 큰 세상도 보고 싶다. 다만 이제는 결과만을 위해 모든 걸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 오래 가는 방식을 배우고 싶다. 그날은 내가 어떤 태도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만든 계기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현장에 있다. 

전공이나 분야는 달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이 글이 그런 순간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혹시 누군가도 비슷한 선택의 앞에 서 있다면 그때의 나처럼 너무 앞만 보며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과#대학생#예체능#진로#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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