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한 번쯤 길을 바꿔서라도, 붙잡고 싶었던 질문들

평범하지 않은 선택으로 대학원을 향한 문과생들

대학원 얘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따라붙는 말이 있다.

“취업 때문에?” “스펙 쌓으려고?” “도피처 아냐?”


하지만 이 질문은, 지금 소개할 세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이들은 애초에 ‘다음 선택지’를 고민하다가 대학원을 떠올린 게 아니라, 살아온 경험을 외면할 수 없어서 방향을 틀게 된 경우에 가깝기 때문이다.


병원 봉사 현장에서 마주한 장면, 몇 년간 붙들었던 꿈이 사고로 멈춰선 순간, 어린 시절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몸에 남은 감각. 이 경험들은 이들에게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질문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비교적 안전해 보이던 전공과 진로를 내려놓는 쪽을 택했다. 전공을 바꾸고,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일은 결코 보편적인 선택이 아니다. 문과생에게 대학원은 이처럼 ‘불안의 연장’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려는 다소 특별한 결정이기도 하다.


취업 대신 공부를 고른 사람들을 만나려 한 것이 아니다. 대신, 한 번쯤은 평범한 길에서 벗어나서라도 자신에게 남은 질문을 공부로 옮기려 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봤어요.”

이ㅇㅇ | 경희대 사회학과 | 심리학 대학원 진학 준비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예중, 예고를 거쳐 음대에 진학했지만, 사람과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 사회학과로 전과한 이ㅇㅇ입니다. 현재는 그 관심을 이어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다가 전혀 다른 분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경험이었어요. 음악을 그만두고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소아병동 봉사였습니다. 병원은 치료가 전부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매일 마주하게 되는 곳이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팀 선생님을 만나 이런 분들을 위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까이에서 보게 됐어요. 그 경험 이후로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을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큰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봉사하던 병원에서 비슷한 나이의 만성질환 아이 두 명을 만난 적이 있어요. 한 아이는 병원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미술 활동도 하고 전시회도 열고, 가족이 함께 추억을 남기는 시간을 가지며 의료진들이랑도 친해졌어요. 반면 다른 아이는 참여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아이가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거든요.

결국 두 아이 모두 세상을 떠났는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의 어머니는 의료진에게 “그 시간을 만들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참여하지 않았던 아이의 어머니는 저희 앞에서 “왜 그때 해보지 않았을까”라고 하시면서 찢어지게 우셨어요.

그걸 보고 알았어요. 치료 결과를 바꿀 수 없어도, 함께하는 순간을 ‘어떤 기억으로 남기느냐’는 바뀔 수 있구나

.

그 경험이 ‘전과’까지 연결된 거네요.

맞아요. 저는 “병원에서 실제로 사람을 버티게 하는 장치가 뭔지”를 더 알고 싶어졌어요. 그때부터 관심이 감정, 행복, 지원 같은 주제로 이동했죠.

사회학과로 옮긴 이유도 비슷해요.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인의 성격이나 가족의 태도만으로 설명이 안 되더라고요. 프로그램이 ‘왜 어떤 사람에겐 닿고, 어떤 사람에겐 닿지 않는지’ 같은 구조적 조건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걸 공부하고 싶었어요.


사회학을 공부하시다가 심리학 대학원까지 생각하게 된 흐름을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회학은 “구조와 시스템”을 보게 해줬고, 심리학은 “개인의 마음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더 깊게 보고 싶게 만들었어요. 저는 결국 둘 다 필요한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소아 환아 같은 경우는 치료 과정에서 ‘불안’이 너무 크잖아요. 그 불안을 완화하는 방식이 단순히 위로가 아니라 개입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문과라서’ 더 어려웠던 점도 있었나요?

오히려 문과라서 저의 선택이 명확해진 것도 있어요. “어디에 취업할 거냐”가 먼저가 아니라, “내가 왜 이 질문을 붙잡게 됐는지”가 먼저였거든요.

물론 주변에서 “음대에서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 대학원?” 이렇게 물을 때마다 설명이 필요했어요. 근데 그 설명을 하다 보니 확신이 더 단단해졌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요?

논문을 읽고 요약하면서, 제가 겪은 사건들을 ‘연구 질문’ 형태로 바꿔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병원 관련 현장 활동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제 시작이 거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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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제가 좋아한 걸 더 솔직하게 바라보게 된 거예요.

정ㅇㅇ | 서울시립대 정치외교학과 | 중국 대학원 진학 준비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고, 중국문화학을 복수전공하고 있어요. 지금은 중국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 꿈은 외교관이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어릴 때부터 외교관이 꿈이라서, 수능 끝나고 바로 외무고시를 준비했어요.


외무고시 준비를 빠르게 시작하셨네요.

처음엔 그냥 그 길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준비도 굉장히 빠르게 시작했고요. 그러다 보니 첫해에 1차가 붙었어요. 솔직히 예상은 못 했죠. 대신 2차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떨어졌고요. 다음 해엔 ‘작년에 붙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방심했다가 1차에서 떨어졌고요. 그 다음 해엔 정말 독하게 해서 1차, 2차를 붙었는데 3차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그리고 4학년 때 다시 1차, 2차를 붙고… 3차를 앞두고 교통사고가 났어요.


많이 다쳤었나요? 그 사고 이후로 일정이나 계획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뇌출혈이었고, 며칠은 코마 상태였다고 들었어요. 수술하고 회복했지만, 그 해 시험은 사실상 끝났고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지금 하는 게 꿈이 맞나, 집착인 건가?”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 질문이 ‘중국문화 대학원’으로 이어진 거네요.

네. 저는 사실 중국어를 복수전공하고 있었거든요. 그냥 ‘스펙’이 아니라, 이상하게 계속 붙잡게 되는 공부였어요. 회복하면서 시간이 생기니까 시험이라는 틀을 뺀 채로도 계속 읽고 싶고, 알아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저는 외교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동시에 언어와 문화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는 걸요.


주변에서는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는 반응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엄청 있었죠. 특히 문과는 늘 결과로 설명을 요구받잖아요. “그래서 그걸 해서 뭐 할 건데?” 같은 질문. 근데 저는 오히려 그 질문에 갇히고 싶지 않았어요. 취업을 위해서라면 더 안전한 길이 있었을 텐데, 지금 선택은 제가 계속 좋아해 온 공부를 다시 선택한 거라고 느껴요.


지금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서류는 끝났고, 지금은 화상 면접을 앞두고 있어요. 논문이랑 자료를 다시 보면서 준비하고 있는데,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라서 더 떨리기도 해요. 그래도 제가 왜 이 방향을 선택했는지는 분명하다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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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시작된 질문이, 한국에서 다시 자랐어요.”

김ㅇㅇ |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 아동가족 분야 대학원 진학 준비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캐나다에서 학부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연세대 아동가족학과에 재학 중이에요. 아동기 환경과 가족 경험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문화에 따라 ‘가족’이 다르게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한국에서 다시 공부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캐나다로 갔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홀로 서는 감각’에 익숙해졌죠.

그런데 캐나다에서 공부하면서, 그리고 그 나라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이상하게 계속 남아 있던 질문이 있었어요. “가족이라는 게 정말 보편적인가?” “내가 느낀 불안, 독립심, 거리감은 개인 성향일까, 아니면 문화의 차이일까?” 같은 것들이요.

한국에 잠깐 돌아올 때마다, 가족이 가까이 있는 방식, 서로 기대하는 역할, 관계의 밀도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그 차이가 너무 궁금해서, 아동가족을 ‘한국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전공이 바뀐 건가요?

맞아요. 캐나다에서 처음 선택했던 전공은 경영학이었어요. 그때는 ‘안전한 선택’에 가까웠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전망도 괜찮아 보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성적이나 스펙보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게 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아동기 경험과 가족 관계가 사람을 어떻게 만들고, 그 과정에 어떤 개입이 가능한지에 계속 관심이 갔고요. 그 질문을 제대로 공부해 보려면, 한국에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에서 아동가족학을 배우면서 ‘아, 내가 이걸 보러 왔구나’ 싶었던 순간도 있었나요?

수업에서 같은 현상을 다루더라도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가 함께 들어오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예를 들면 아이의 행동을 설명할 때도, ‘아이의 기질’만 보는 게 아니라 양육 방식, 돌봄의 분배, 기대되는 역할 같은 문화적 배경이 같이 논의되잖아요. 저는 그게 한국을 떠나 살았던 제 시선과 정확히 연결되더라고요. “내가 낯설다고 느꼈던 건,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맥락이 달라서였구나” 같은 확신이 생겼어요.


대학원까지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부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분야는 가볍게 접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동과 가족을 다루는 일은 누군가의 삶과 맞닿는 문제니까요.

저는 특히 문화가 다르면 개입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궁금해요. 한국에서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는 방식이 다른 문화권에서도 같은 결과를 낼까? 반대로, 해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접근이 한국에서는 왜 다르게 작동할까? 이런 질문을 더 깊게 파고들고 싶습니다.


이미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하고 있었는데도, 굳이 방향을 바꾼 이유를 묻는 시선도 있었나요?

네, 있었어요. 특히 저는 경영을 공부했고, 캐나다에서 계속 공부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런 시선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굳이 전공을 바꿀 필요가 있느냐”, “굳이 한국에 와서 다시 시작해야 하느냐” 같은 질문들이요.

그런데 그런 말들을 들을수록, 이 선택이 막연한 호기심이 아니라 제가 왜 공부를 하려는지에 대한 문제라는 건 더 분명해졌어요. 이미 안정적인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바꿨다는 사실 자체가, 이 질문을 쉽게 놓을 수 없다는 증거라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아동가족 개입 사례를 문화 비교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경험을 ‘감정’으로만 두지 않고, 연구 질문으로 바꿔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형태로 연결하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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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출발점은 서로 다르다. 누군가는 병원에서, 누군가는 사고 이후의 침대에서, 누군가는 타국에서의 어린 시절에서 질문을 얻었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같다. “이 경험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해 보고 싶다”는 마음.

대학원은 이들에게 성공을 보장하는 답이 아니다. 대신 스스로에게 생긴 질문을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그들의 대학원은 그래서 결심보다 서사에 가깝고, 계획보다 생활에 가깝다.

이 이야기가 대학원에 대한 하나의 정답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누군가에게 공부는 취업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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