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정 통역 되나요?
어색했던 첫 만남과 뜻밖의 사랑니(?)
외국인 친구와의 첫 약속이라 떨렸던 기억이 난다.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대표적인 다문화 나라 캐나다. 그것도 토론토 한 어학원에서 나는 인생 첫 외국인 친구를 사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학원 첫날의 그 낯설고 서늘했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당연하게도 외국인인 선생님,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그리고 교실 안을 채운 수많은 타인들. (ENFP지만) 처음엔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만히 있다가 갈 수는 없다!’
마음속으로 비장하게 주문을 외운 뒤, 쉬는 시간에 나와 함께 입학한 일본인 친구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머릿속엔 '첫 마디로 무슨 말을 건네야 하지?'라는 말만 맴돌았고,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그 당시 내 인생 최대의 이슈였던 사랑니 발치였다.
"I removed my wisdom tooth here.”
(나 여기서 사랑니 뽑았어.)
뜬금없이 다가와 사랑니 고백을 건네는 한국인이라니. 나중에 친구가 나직이 고백하기를, 그때 속으로 진짜 당황했었다고 한다. (웃음)
운명적인 하굣길과 우리만의 작은 conversation club!
제 1회 conversation club이 열린 역사적인 장소!다소 황당했던 첫 만남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렸는데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그 친구였다. 그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솔직히 운명이다!' 토론토의 그 많고 많은 역 중에서 하필 같은 역, 같은 시간에 내릴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거짓말처럼 급격히 가까워졌고, 어학원에서 점심도 함께 먹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둘 다 영어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었기에 초반에는 영어 실력이 많이 답답하고 부족했다. 우리는 "이대론 안 되겠다!"를 외치며 곧장 공공 도서관으로 향했고, 우리만의 작은 Conversation Club을 열었다.
거창한 스터디는 아니었다. AI에게 대화하기 좋은 주제를 몇 개 추천해 달라고 한 뒤, 그 질문을 가지고 수다를 떠는 방식이었다. 비록 의욕 넘쳤던 이 클럽은 단 2회 만에 작렬하게 끝이 났지만 (웃음), 어설픈 영어 속에서 서로를 깊게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급하게 쌓아 올린 탑은 쉽게 무너지는 법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다.학원에 있는 누구나 다 우리가 친하다는 걸 알고 있을 정도로, 우리는 4개월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타국에서 함께하는 경험이었기에 사소한 일상도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정도 훨씬 빨리 붙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둔 채 서로를 알아갈 틈도 없이 너무 급격하게 가까워졌던 탓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다툼 역시 늘어났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참 많은 것이 달랐다. 문화의 차이도, 타고난 성격의 차이도 분명 존재했다.
대화로 금방 풀리던 소소한 의견 차이와 달리, 한 번은 정말 크게 맞붙었던 적이 있다. 그동안 쌓여있던 게 터져버린 날이었다. 나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연락의 빈도'를 애정의 척도로 생각하는 편이라 자주 연락을 보냈었다. 반면 친구는 원래 가족이나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었고, 나의 연락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문제는 친구가 그 마음을 직접 표현하지 못한 채 참아왔다는 점이다. 결국 쌓이고 쌓였던 폭발에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고, 깊은 서운함과 감정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
'아, 정말 이 친구와 이렇게 멀어질 수도 있겠구나.'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소중한 관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아득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서툰 영어로 서툴게 전한 진심
1도 예상하지 못 했던 깜짝 선물!(from banff)친구의 뜻에 따라 우리는 며칠 동안 전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늘 붙어 다니던 우리가 어학원에서 서로를 마주쳐도 아는 척조차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다. 아마 주변 친구들도 우리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단번에 눈치채지 않았을까.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친구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리는 또 다른 오해나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내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를 고르고 골라 번역기를 사용해 장문의 답장을 주고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번역기와 AI 덕분에, 우리는 제2의 언어로도 서로의 서운함과 진심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다. 오해의 겹을 하나씩 벗겨낸 끝에 우리는 극적인 화해를 했다.
(덧붙이자면, 제2의 언어로 싸우고 화해하는 건 정말이지 영혼이 탈탈 털리는 일이다. 세상 모든 국제 커플을 존경한다.)
Thank you, ありがとう, 그리고 고마웠어
친구와 가장 마지막으로 헤어졌다.사실 이 글은 친구의 출국 전날, 받은 한 장의 편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빼곡하게 적힌 편지 속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너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항상 더 정확한 영어를 검색했고, 너와 소통하는 것은 내 영어 공부의 동기부여 중 하나였어."
(고백하자면, 에디터는 이 편지를 읽고 거짓말 안 보태고 세 번쯤 눈물을 훔쳤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 하물며 문화도, 모국어도 다른 이와의 관계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서툴고 완벽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화려한 수식어나 완벽한 문법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진심 그 자체였다.
혹시 지금 소중한 누군가와의 소통에 벽을 느끼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어설픈 표현 뒤에 숨겨진 진심은, 언어의 장벽쯤은 아주 가볍게 뛰어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