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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그게 네 교양이니?

얕고 넓은 미술이야기 (국현에서 아는 척 하기)

너 따라다니면서 교양 좀 쌓아야겠다. 미술 너무 어려워

예? 저요? 저를요?


지인이 건넨 이 한마디에 어색하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전공생은 맞는데요, 저도 잘 몰라요...
 
대학교를 4년 다녔다고 해서 전공 지식이 줄줄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예컨대 누군가 피카소에 대해 물어봤을 때, 

 
"이게 피카소가 10대 때 그린 그림이래요 쩔죠"
 

이 정도만 생각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기회에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 중 파헤쳐 보고 싶은 내용을 직접 찾아보고 정리하면서 그 결과물을 공유해 보자고. 

대망의 첫 번째 타자는 관람객에게 상당한 피로를 유발한다는 평가(동기 피셜)를 받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이다.
 

1. 개념미술이 뭐에요?  (Feat. 나에게 B0를 안겨준 그 과목에 나와요...교수님...ㅜㅜ)
 
1960년대, 미술계에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작가들은 미술품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단순한 장식품이나 판매 대상으로 전락하는 현상에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대신, 작가의 생각과 텍스트, 그리고 행위 자체를 예술의 결과물로 제시했다. 미술이 물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조셉 코수스, <하나이자 셋인 의자>, 1965

이 시기 조셉 코수스는 <하나이자 셋인 의자>라는 작품을 통해 실제 의자, 의자의 사진, 그리고 의자의 사전적 정의를 한 공간에 나란히 두었다. 눈으로 보는 물질과 머리로 이해하는 언어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미술은 아이디어 그 자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1960~70년대에 걸쳐 기존 미술의 틀을 거부하는 실험적인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했다. 형태가 없는 바람이나 연기를 작품으로 삼아 비조각(Non-Sculpture)의 개념을 보여준 이승택, 한국 최초의 대지미술과 실험영화를 선보인 김구림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시도는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기 전에 이들의 작품을 미리 검색해보면 어떤 스타일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개념미술이라는 단어의 모호함 때문에 지레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그 핵심은 꽤 명료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기발한 생각이 중심이 되는 미술이다. 과거의 미술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아름답게 그렸는가?"를 평가했다면, 개념미술은 "얼마나 파격적이고 새로운 생각을 던졌는가?"에 주목한다. 그러니 전시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을 마주치더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 작가의 생각을 추리하며 즐거움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작품에 다가가는 심리적 장벽은 한층 낮아질 것이다.
 

2. 가장 위트 있는 작가, 김범


처음 국현 가서 찍었던 사진. 당시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맨 처음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던 건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왜 친구들이랑 거기를 갔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평소 미술 하면 떠올렸던 웅장한 유화나 조각상은 없고 웬 구조물만 있는 것이...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서야 사진을 다시 보니 누구의 작품인지 알겠는데, 그때는 이게 왜 미술인가 싶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마치 국현 전시를 처음 봤던 나의 경험이 되풀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위 사진의 작가는 히토 슈타이얼이라는 작가인데, 그 역시 전통적인 미술 작품을 만든다기 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미술을 통해 나타내는 작업에 더 가깝다. 이게 왜 미술이지? 싶겠지만, 미술은 개념미술의 등장 이후로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고, 설명이 필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전시는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언어와 생각의 차원으로 나아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다각도로 짚어본다. 시기 상으로는 1960년대 말 실험미술부터 70~80년대의 논리적 탐구, 그리고 90년대 이후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진화해 온 과정을 꼼꼼히 살펴본다. 
(어렵게 생각 할 필요 없다. 단지 기존의 미술에서 사용하지 않던 재료를 사용하거나 몸을 쓰거나 하는 요상한 흐름이 당시 한국에서도 실험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이 전시는 개념미술을 하나의 고정된 정답으로 가두기보다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방식 4가지를 (전시에서는 언어, 사물, 측정, 기호로 보고 있다.) 소주제로 하여 미술의 방식으로 새롭게 환기하도록 유도한다. 

당연히 개념미술의 배경을 이해했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곧바로 와닿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전통적인 미술과는 결이 달라 대중적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전시 작가 중 김범은 어려운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익숙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오로지 그것 뿐이다. 


김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2010

김범의 작품 중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은 정지용의 시를 강의하고 있는 12시간짜리 영상 옆으로 탁자와 그 위의 돌이 있는 작품이다. 마치 돌에게 정지용의 시를 가르치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연출하는데,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지식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의심하게 만든다. 

돌에게 시를 가르치는 것이 적절할까? 돌은 자연물이다. 자연에 아무리 개입한다고 한들 돌이 부식되고, 굴러가는 자연의 섭리는 인간이 어찌할 수가 없다. 같은 맥락으로 돌에게 시를 가르친다고 한들 돌이 시를 쓰지 못하고, 울지도 못한다. 게다가 꿈엔들 잊힐 리 없는 그곳을, 우리보단 돌이 수 백 번 구르고 굴러 이미 보지 않았을까. 불변의 진리라고 여겨지는 지식은 결국 자연 앞에서 무력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은 객관적으로 보면 앞뒤가 안 맞는 상황극 같다. 하지만 작가의 태도는 일정하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학교나 사회에서 가르쳐 준 지식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정답으로 믿고 살아가지 않는가? 김범은 이렇게 사물에게 엉뚱한 개념을 가르치는 상황을 통해, 우리가 맹신하는 지식이라는 것이 실상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고 허구적인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에 그의 작품은 오히려 어렵고 난해한 미학적 해석을 덧붙이지 않아도 됨을 알 수 있다.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엉뚱한 용도를 상상하는 작업 방식은 마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소꿉놀이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오직 정답만을 강요하는 답답한 세상 속에서, 김범은 특유의 무심하고 덤덤한 유머로 관람객에게 보는 것 이상의 새로운 것을 보게 한다. 


3. 이제 전시를 볼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번 전시를 깊이 있게 즐기기 위해 관람객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 자세는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을 내려놓는 것이다. 미술관에 가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작품 옆에 붙은 긴 설명문부터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전시 공간 안에서만큼은 설명글에 대한 의존을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우두커니 존재하는 돌 앞에서 이 엉뚱한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라며 나만의 상상을 펼쳐본다면, 이미 작가의 기획 의도를 완벽히 수용한 셈이다.  굳어 있던 시각적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웃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개념미술을 대하는 가장 지적이고 감상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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