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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I'm Rahul. 사실 널 보러 왔어

검색창에서 먼저 만난 사이에 대하여
*가상으로 제작한 프로필입니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 조회 목록에서 모르는 남자를 발견했다. Rahul Sharma.
바이오를 보면, 인도와 서울을 오가며 여행하는 청년처럼 보인다. 강아지와 커피, 석양을 좋아한다고 한다. 

게시물은 아홉 개, 팔로워는 세 명인데 팔로잉은 427명이다.


그런데 조금 수상하다.
타지마할 사진 옆에는 직접 찍었다고 하기엔 너무 고퀄리티의 강아지 사진이 있고, 그 옆에는 새빨간 배경의 NEVER GIVE UP이 놓여 있다. 게시물은 전부 이틀 사이에 올라왔고 사진마다 화질도 제각각이다.

Rahul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좋아할 수가 없다.
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Rahul은 누군가의 피드와 스토리를 본계정의 흔적 없이 살펴보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여행 계정이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고르고, 영어 소개를 적고, 게시물 몇 개를 올리면 세상에 없던 여행객 한 명이 완성된다.


가짜 외국인 계정까지 만드는 일은 누군가에겐 조금 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그리 낯설지 않다.

소개팅 전 상대의 이름을 검색한다. 팀플 단체 채팅방이 만들어지면 프로필을 눌러본다. 동아리 신입 회원의 공통 팔로워를 찾고, 대외활동에서 만날 사람의 피드를 훑는다.

요즘의 첫 만남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다.
상대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하는 순간부터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기 전 "디지털 예습"한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SNS 기록을 먼저 살펴보는 행동을 이 글에서는 ‘디지털 예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험을 보기 전 범위를 훑듯,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의 흔적을 미리 훑어보는 일이다.
검색창에 입력하는 것은 이름 하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얼굴과 취향, 인간관계와 가치관까지 찾아낸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검색창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먼저 말을 걸게 하기도 하고, 거리를 두게 하기도 하며, 때로는 만남 자체를 없애기도 한다.
두 대학생에게 자신이 경험한 ‘디지털 예습’에 대해 물었다.


동아리 지원자 검색
- 연세대학교 A씨, 동아리 운영진
- "SNS가 요즘 사회생활의 명함처럼 느껴졌어요."
취재원 제공

동아리 지원자의 SNS를 검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원서만으로는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전부 알기 어렵잖아요. 평소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동아리 구성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검색했어요.

SNS에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주로 피드와 스토리 하이라이트를 봤어요.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자주 올리는지, 전체적인 계정 분위기는 어떤지를 확인했습니다.

검색 결과가 실제 선발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네. 정치적인 메시지가 너무 강하거나, 기존 동아리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워 보이는 지원자를 떨어뜨린 적도 있어요.

지원자의 SNS는 지원서에 없는 정보를 보여주는 두 번째 자기소개서가 됐다.
몇 장의 게시물이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줄지 결정하는 자료가 된 것이다.

Unsplash


온라인에서 받은 인상과 실제 모습은 비슷했나요?

합격한 사람들은 대체로 SNS에서 봤던 모습보다 실제 인상이 더 좋았어요. 계정만 봤을 때 예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편하고 괜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SNS가 사람을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 사회생활에서는 SNS가 명함처럼 작용하는 것 같아요. 공개 계정에 올린 내용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올리는 것이기도 하고요.

상대가 자신을 검색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저에게는 딱히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아요.

검색과 사생활 침해의 경계는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공개 계정에 올라온 내용을 보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사자가 공개하지 않은 정보를 따로 찾거나 요구한다면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A는 SNS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 동시에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예상한 모습보다 더 나았다고 말했다.
검색으로 만들어진 첫인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판단의 자료로 사용한다.


소개팅 상대 검색

- 한양대학교 B씨
- "하이라이트의 술 사진을 보고, 만나기 전에 거절했어요."
취재원 제공

소개팅 상대를 검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나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저와 성향이 맞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한 정보는 무엇이었나요?

피드뿐만 아니라 스토리 하이라이트도 봤어요. 어떤 계정을 팔로우하는지, 어떤 게시물을 리그램하는지도 확인했습니다.

검색 결과 때문에 실제 행동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소개팅 상대의 하이라이트에 있던 술자리 사진을 보고 저와 성향이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결국 실제로 만나기 전에 소개팅을 거절했습니다.

검색이 단순히 첫인상을 바꾼 데서 끝나지 않고, 첫 만남 자체를 없앴다.

취재원 제공

술 사진 한 장만 보고 상대를 판단한 건가요?

술 사진 하나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계정 전체에서 보이는 생활 방식과 분위기가 저와 맞지 않을 것 같았어요.
팔로우한 계정이나 리그램한 게시물을 보면 정치 성향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잖아요. 저와 너무 안 맞을 것 같으면 미리 거르게 됩니다.

검색하지 않았다면 그 관계가 달라졌을까요?

검색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사람인 줄 모르고 관계를 시작했을 수도 있잖아요. 오히려 더 위험하거나 이상한 관계가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B에게 검색은 편견일 수도 있었지만,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미리 거르는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상대 역시 자신을 검색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솔직히 ‘자기는 뭔데 그렇게 따지는 게 많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특히 제 외모부터 평가하고 있을 것 같으면 기분이 나쁠 것 같습니다.

내가 상대의 술자리와 정치 성향을 확인하는 것은 필요한 준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상대가 내 사진과 피드를 보고 나를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불편해진다.
검색하는 사람과 검색되는 사람의 자리는 쉽게 뒤집힌다.

어디까지는 검색이고, 어디부터는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나요?

닉네임을 검색해서 공개된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의 온라인 명함을 읽는다


2025년 한국미디어패널조사에서 전체 개인 응답자의 SNS 이용률은 64.2%였다. SNS 이용자들이 가장 자주 이용한다고 답한 플랫폼은 인스타그램으로, 그 비율은 49.4%였다.

이제 SNS는 특별히 꾸미는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다.
일상을 기록하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보고, 나 역시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관리하는 생활 공간이 됐다.

A는 SNS를 사회생활의 명함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SNS는 일반적인 명함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이름과 소속뿐 아니라 몇 년 전의 생각, 인간관계, 술자리와 여행, 팔로잉 목록과 정치적 관심사까지 남는다.

우리는 타인의 온라인 명함을 읽으며 그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을 상상한다.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명함이 되도록 피드와 프로필을 편집한다.

Unsplash


어디까지는 검색이고, 어디부터는 침입일까


  • 공개 피드를 보는 것.
  • 공통 지인을 확인하는 것.
  • 닉네임과 과거 계정을 검색하는 것.
  • 가짜 계정을 만들어 조회 흔적을 숨기는 것.
  • 상대가 공개하지 않은 정보에 우회해 접근하는 것.

이 행동들은 모두 같은 ‘염탐’일까?

A와 B 모두 공개된 내용을 검색하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답했다. 반면 당사자가 공개하지 않은 정보를 찾거나 요구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Rahul은 어디에 있을까.
Rahul은 잠긴 계정의 문을 억지로 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공개된 스토리와 피드를 보면서, 정작 관찰자의 정체만 감추기 위해 만들어졌다.
상대는 누군가 자신의 스토리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검색과 염탐의 경계에는 ‘무엇을 봤는가’뿐 아니라 이런 질문도 남는다.

공개된 정보를 보는 것이라면, 내가 누구인지 숨겨도 괜찮을까?

Unsplash

검색창에서 찾은 사람이 전부는 아니다


A는 지원자의 SNS를 확인해 동아리와 맞을 사람을 골랐다.
B는 하이라이트 속 술자리 사진을 보고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소개팅을 거절했다.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A가 실제로 만난 합격자들은 대체로 SNS에서 본 모습보다 인상이 좋았다. B가 거절한 상대 역시 실제로는 예상과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검색하지 않았다면 A는 동아리와 맞지 않는 사람을 뽑았을 수도 있고, B는 자신에게 불편한 관계를 시작했을 수도 있다.

즉, 검색 결과는 완전히 무시할 수도, 정답처럼 믿을 수도 없다.



검색 덕분에 피할 사람을 미리 알아볼 수도 있다. 반대로,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을 몇 장의 사진으로 끝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게 아니라, 검색창에서 미리 만들어 둔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닐까?

검색은 첫 만남을 위한 예습일 수 있다.
그러나 예습한 내용을 정답이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알아가는 대신 미리 정해두기 시작한다.

어쩌면 첫 만남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검색 결과가 틀릴 수도 있다는 작은 여백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오늘 만나러 가는 사람은 검색창에서 발견한 사람인가,
아니면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인가?




#염탐#대학생#인간관계#개강#인스타#SNS#첫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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