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애들아 일어나, 비전공자의 시대가 왔어

전공이 달라서,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길고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
1학기를 지나, 어느덧 2학기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우리는 한 학년 더 올라간다.

1학년이라면 이제야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을 테고,
2학년이라면 슬슬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3학년이라면 취업과 스펙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4학년이라면 졸업과 취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분명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그래서인지 개강을 맞은 캠퍼스에는 
새 학기를 시작하는 설렘과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조급함도 함께 찾아온다.



자, 출석 부르겠습니다. 자리에 앉아주세요.



출처: @forourstar
강의실에 앉아 출석을 부르면, 우리는 각자의 전공으로 불린다.
경영학과, 국어국문학과, 컴퓨터공학과, 디자인학과.
대학에 들어오며 얻은 이름이자, 몇 년 동안 우리가 공부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이름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전공만이 아니다.
교양 수업을 듣기도 하고,
마음이 이끄는 동아리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해보기도 하고,
친한 친구를 따라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히 전공 밖에서 
'내가 이걸 좋아하는구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시작했을 뿐인데,
조금 더 해보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더 잘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나보다 오래 공부한 사람들이 한 둘 보이기 시작한다.
관련 전공을 공부한 사람도, 이미 몇 년째 그 일을 해온 사람도 있다.

그제야 내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남들보다 부족한 건 아닐까?"
"나는 전공자가 아닌데 비교 당하지는 않을까?"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고민으로 바뀐다.
하지만 비전공자는 정말 불리하기만 한 걸까요?
물론 한 분야를 오래 공부한 사람보다 아는 것이 적고 경험이 부족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나아갈 필요는 없다.

한 분야를 오래 파온 사람에게 깊이가 있다면,
다른 분야에서 건너온 사람에게는 그곳에서 가져온 다른 시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야가 때로는 익숙한 문제에 낯선 질문을 던지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해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전공이 달라도, 자신의 길을 만든 사람들.


출처: 유퀴즈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다른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어땠을까.

처음부터 이 길 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 역시 새로운 분야에 들어섰을 때는 우리와 같은 비전공자였다.
과연 그들은 어디에서 시작했고, 무엇을 가져와 자신만의 무기로 만들었을까?

지금부터, 전공과는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1. 박찬욱 감독

- 철학과에서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 예술과 철학에 관심이 많아 철학과를 선택한 박찬욱.


대학 시절 히치콕의 영화를 보고 영화에 매료된 박찬욱 감독은,
영화 연출이라는 새로운 길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철학을 공부하며 
어떤 문제든 피상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근본까지 파고드는 태도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 복수와 선택처럼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그의 영화에 이러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철학은 영화와 무관한 과거가 아닌,
그가 영화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되었다.


2. 나영석 PD

- 행정학과에서 예능 PD가 되기까지
- 특별한 진로가 없었던 나영석, 대학에서 연극을 만나다.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뚜렷한 생각이 없었던 나영석 PD는,
부모의 권유로 연세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우연히 연극반 활동을 시작하는데,
직접 연출하고 무대에 오르며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행정학과 학생은 방송과 연출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고,
지금의 예능 PD가 되었다.

연극에서 그가 가져온 것은 단순히 무대를 만드는 경험만은 아니었다.
각자의 생각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경험.

대학에서 우연히 만난 연극은, 나영석 PD가 사람과 이야기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되었다.

3. 이동진 평론가

- 종교학과에서 영화평론가가 되기까지
- 종교학을 공부하며 영화에 관심을 키워온 이동진



고등학생 때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동진 평론가는,
재수 시절 종교학과에 직접 연락해 책을 받아 읽었고,
그중 정진홍 교수의 책과 엘리아데의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아 서울대 종교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가 대학에서 빠져든 것은 종교학만이 아니었다.
대학 재학 중 한 잡지에 영화 한 줄 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써나갔고,
기자를 거쳐 영화평론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영화에 가져온 것은 단순히 종교학적 지식만은 아니었다.
책과 학문을 통해 하나의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고, 쉽게 단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실제로 이동진 평론가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영화 역시 누군가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뜻이다.

종교학을 공부했던 시간은 영화와 무관한 과거가 아니라,
이동진이 영화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되었다.
 

4. 서현진 배우

- 무용을 하던 학생, 배우가 되기까지
- 초등학생 때부터 무용을 공부해 온 서현진.



초등학생 때부터 무용을 공부해 국악중-국악고를 다닌 서현진 배우는,
우연한 길거리 캐스팅으로 SM 연습생이 되어 걸그룹 밀크로 데뷔했지만,
1년 만에 그룹이 해체되며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특히 국악고 동기들의 무용 공연을 관객으로 보러 간 날,
'이제 나는 무용을 할 수 없구나'라는 처음 실감하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해온 무용을 뒤로하고, 연기라는 새로운 분야를 시작했다.

하지만 무용을 그만 뒀다고 해서 그동안의 시간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오랫동안 몸으로 표현하고 무대에 서며 쌓아온 경험은
연기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기반이 되었다.

무용을 하며 보낸 시간은 배우와 무관한 과거가 아니라,
서현진이 새로운 무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되었다.

5. 백종원 사업가

- 사회복지학과에서 사업가가 되기까지
- 사람과 사회를 공부하던 대학생, 백종원.


연세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백종원 사업가는,
대학 시절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가게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외식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외식업을 하며 그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외식할 수 있는 가격과 방식,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사회복지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업을 하면서도 결국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던 시간은 외식업과 무관한 과거가 아니라,
백종원이 사업과 사람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되었다.



애들아 일어나, 비전공자의 시대가 왔어.


박찬욱도 처음부터 영화감독은 아니었다.
나영석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대학에 들어갔고,
이동진도 종교학을 공부하다 영화에 빠져들었다.
서현진은 오랫동안 해온 무용을 뒤로하고 새로운 무대에 섰고,
백종원 역시 전공과는 다른 외식업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지금의 모습만 보면, 처음부터 자신의 길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순간 두려웠고,
내가 가진 것이 충분한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새로운 길에서 발견한 것은 
'나는 비전공자라서 부족하다'가 아니었다.

철학에서 가져온 질문,
연국에서 가져온 경험,
종교학에서 쌓은 시선,
무용에서 익힌 표현,
사회복지학에서 바라본 사람과 사회.

이미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가져온 것들이 
새로운 길에서 오히려 자신만의 무기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 전공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너무 늦었다고, 부족하다고, 비전공자라고
스스로에게 선을 긋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새로운 길을 가로막는 과거가 아니라,
그 길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주저하지 말고
애들아 일어나!
비전공자의 시대가 왔어!!!



#대학생#비전공#2학기#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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