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불안을 ‘정병’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외모 정병 와서 온다 받고 온 썰 푼다”
“취준 정병 레전드다 나중에 뭐 해먹고 살지?”
“나는 멘헤라라서 안정형이랑 연애하고 싶어. 안 그러면 정병연애 할 거 같아.”
요즘 SNS를 보다 보면 이런 표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릴스를 넘기다가도,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다가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읽다가도 ‘정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외모 때문에 고민이 생기면 외모 정병, 취업 준비가 막막하면 취준 정병, 연애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정병 연애.
어느 순간 정병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의 정신건강 상태를 이야기하는 말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불편함이나 불안, 고민을 표현하는 말처럼 사용되고 있다.
물론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신질환은 가볍게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주제이지만, 그렇다고 정신질환 자체가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나 역시 그저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용어라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나도 별다른 고민 없이 이 단어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말 ‘병’이었을까?
‘힘들다’, ‘불안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던 순간에 우리는 왜 ‘정병’이라는 표현을 붙이기 시작했을까?
정병: 그게 뭔데?
먼저 ‘정병’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찾아보았다. ‘정신병’을 줄여 부르는 인터넷 표현으로,
사전적으로 정신병은 정신 기능에 이상이 생겨 사고나 행동 등에 장애가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가 SNS상에서 사용하는 '정병'이라는 단어는 정신질환의 진단을 받은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불안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불안과 불만족을 ‘병’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생이라면 학점과 취업이 걱정될 수 있고, 인간관계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있고, 연애 때문에 감정이 복잡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감정들이 어느 순간 ‘정병’이라는 한 단어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 요즘 좀 불안해”에서 “나 정병인가 봐”까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감정을 설명하는 데 꽤 큰 역할을 한다.
시험을 망쳤을 때 “나 진짜 망했다”고 말하는 것과 “나 요즘 번아웃 온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비슷한 상황에서도 조금 다르게 들린다.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오늘따라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하는 것과 “나 외모 정병인가 봐”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병’이라는 표현은 고민이나 불안을 아주 짧고 강하게 전달한다. 한 단어만 붙여도 지금 내가 얼마나 그 문제에 신경 쓰고 있는지,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 얼마나 그 문제에 꽂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짧고 강한 표현이 특히 빠르게 확산된다.
한 번 익숙해진 표현은 또 다른 상황으로 쉽게 옮겨간다. 외모에도 붙고, 취업에도 붙고, 연애에도 붙는다.
그러면서 ‘정병’은 특정한 정신건강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기보다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고 불편한 상태를 한꺼번에 설명하는 인터넷 언어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왜 이렇게 빨리 퍼졌을까?
여기서 SNS를 빼놓기 어렵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콘텐츠를 시청한다.
짧은 영상 하나를 보고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고, 내가 검색했던 것과 비슷한 콘텐츠가 다시 화면에 등장한다. 오래 시청한 콘텐츠,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 자주 찾아본 주제와 관련된 영상이 계속해서 알고리즘을 타고 추천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특정한 표현을 반복해서 마주치기 쉽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단어가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단어는 직접 사용하기도 쉬워진다.
‘정병’이라는 표현 역시 여러 고민과 결합하면서 사용 범위를 넓혀갔다. 외모를 다루는 콘텐츠에서는 ‘외모 정병’, 취업 콘텐츠에서는 ‘취준 정병’, 연애 콘텐츠에서는 ‘정병 연애’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실제 대학생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병이라는 말을 별생각 없이 써요.”
건국대학교 재학생 A양(22)은 ‘외모 정병’, ‘취준 정병’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고 말했다.
A: “진짜 정신병이 있다는 뜻으로 쓰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제가 그 문제에 너무 예민해져 있을 때 쓰는 것 같아요. 살이 쪄서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나 취준을 위한 대외활동에 떨어졌을 때처럼 평범한 상황에서도요.”
Q: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정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제가 원래 불안한 사람인가 싶을 때도 있었는데, 솔직히 안정된 상태인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SNS에서 ‘정병’이라는 말을 쉽게 접하다 보니까 조금만 불안해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그냥 ‘정병’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게 된 것 같아요.”
한 번 만들어진 표현이 여러 상황에 붙으면서 새로운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를 본 사람들이 다시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즉, 우리는 이 상황을 언어가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다시 언어를 퍼뜨리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정병’이라는 단어가 SNS에서 빠르게 확산된 이유를 단순히 사람들이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표현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표현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우리가 볼 ‘틀’을 함께 보여준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미디어 프레이밍 이론(Media Framing Theory)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레이밍은 미디어가 현실의 모든 모습을 똑같은 비중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측면을 선택하고 강조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관점에서 사건이나 현상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출처
: Robert M. Entman (1993), “Framing: Toward Clarification of a Fractured Paradigm,” Journal of Communication, 43(4), 51–58.
쉽게 말해 같은 현실도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A 콘텐츠
“나 지금 취업 때문에 불안해.”
B 콘텐츠
“취준 정병 제대로 왔다.”
두 콘텐츠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불안한 상태라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째 표현에서는 ‘취업에 대한 불안’이라는 감정에 ‘정병’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결국, 프레이밍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미디어가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
무엇을 강조하고, 어떤 단어를 선택하며, 어떤 의미를 함께 붙이느냐에 있다.
‘정병’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SNS 환경에서는 ‘불안하다’는 감정이 ‘정병’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될 가능성이 커지며,
같은 감정을 경험하더라도 내가 접해온 언어에 따라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콘텐츠 속 표현이었던 단어가 어느 순간 내가 내 상태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된다.
반복은 익숙함을 만들고, 익숙한 표현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선택지가 되어, 하나의 표현으로 미디어 안에서 계속 순환한다.
광고에서도 활용하는 유행어
SNS를 보다 보면 ‘외모 정병 탈출’과 같은 표현과 함께 시술이나 성형, 자기관리 콘텐츠가 연결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요즘 피부가 너무 안 좋아 보여."
“뷰티 유튜버: 외모 정병이 올 때는 지방 분해 주사랑 온다 추천 드려요"
“○○그룹 ○○ 같은 코를 원한다면, 압구정역 5번 출구 ○○성형외과로"
처음에는 그저 외모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외모 정병’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감정은 해결해야 할 하나의 문제처럼 다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피부과 시술, 성형, 화장품, 다이어트와 같은 구체적인 해결책이 등장한다.
2030세대가 많이 오가는 신사역 일대를 걷다 보면
성형외과 광고가 붙은 전광판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으며,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SNS에서는 다른 사람의 외모와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 비교에서 느낀 부족함을 해결해준다는 상품과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물론 외모에 대한 고민이나 피부과 시술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실제로 자신에게 필요한 관리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
여기에서 살펴보고 싶은 것은 외모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종종 불안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우리의 불안이 언제나 개인의 부족함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비교하게 만드는
미디어 환경, 특정한 외모를 이상적인 기준으로 제시하는 콘텐츠,
그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광고 역시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제는 ‘정병’이라는 단어 하나에만 있지 않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표현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재미있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또래가 알아듣는 표현을 사용한다. ‘정병’ 역시 그런 과정에서 지금의 의미와 쓰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 이런 표현이 이렇게 널리 사용되고 있을까?
그리고 그 표현을 계속 접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게 될까?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어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을 갖게 된다.
불안할 때 ‘불안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감정에 특정한 이름이 반복적으로 붙고,
그 이름이 SNS에서 계속 소비된다면 어느 순간 그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때부터 유행어는 조금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나를 표현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나를 이해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언어로 우리를 설명하고 있을까?
대학생의 하루를 생각해보면 ‘정병’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는 순간은 너무 많다.
학점 때문에 불안하면 학점 정병
취업 준비가 막막하면 취준 정병
친구 관계가 신경 쓰이면 인간관계 정병
사진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모 정병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연애 정병
그만큼 우리는 다양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SNS는 그 고민에 이름을 붙이는 수많은 표현을 제공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뒤에 ‘정병’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대신 평소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일수록 한 번쯤 멈춰서 바라봤으면 한다.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그리고 그다음에,“나는 왜 이 감정을 이런 말로 설명하고 있지?”라고 스스로 묻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병’이라는 단어가 대학생의 일상 언어가 된 것도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단어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어떤 콘텐츠를 통해 퍼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광고와 만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언어가 우리의 자기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행어 하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가 ‘정병’이라는 단어를 만났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자.
나는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말이 어느새 나를 설명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