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우리는 왜 릴스를 넘기면서 책을 펼칠까?

30초짜리 영상은 넘기면서 300페이지 책을 사는 우리

“책 읽을 시간이 없어.”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책을 산다. 인스타에서  표지가 예쁜 책을 발견하면 저장하고, SNS에서 누가 추천한 책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카페에 가면 책 한 권을 옆에 펼쳐놓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고, 친구에게 공유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릴스를 넘기면서 “요즘 집중력이 짧아졌다”라고 말한다


이상하다. 이렇게 바쁜데, 왜 다시 책일까?


실제 통계를 보면 이 현상은 단순한 기분 탓만은 아니다.






 성인 전체 독서율은 줄어드는 반면, 20대의 독서율 오히려 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38.5%로, 2023년보다 4.5%포인트 떨어졌다. 1994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20대의 종합 독서율은 오히려 75.3%로 0.8%포인트 상승했다. 전 연령대 가운데 독서율이 증가한 것은 20대가 유일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도서전 방문, 야외 독서, 필사, 책 교환과 같은 활동이 젊은 층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사람의 문해력 논란이 화두가 되었던 것과  츠와 릴스 같은 숏폼 콘텐츠가 성행하는 상황에서 책 소비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읽으려고 하는 걸까?

읽는 행위 자체가 이라고 생각하는 텍스트힙


 우리는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글이나 책을 읽고 쓰는 행위 자체를 멋지고 매력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책을 읽는 건 새롭거나 독창적인 행위가 아닌데, 왜 갑자기 ‘힙하다’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그건 아마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독서가 ‘책을 읽는다 → 지식을 얻는다’에 가까웠다면, 요즘의 독서는 조금 다르다. 책을 사고,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기록하고, 책 표지를 찍어 SNS에 올린다. 어떤 책을 읽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드러낼 수 있다.
책이 더 이상 읽고 덮어버리는 물건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코어’, 나의 추구미는 포엣 코어!’


 우리가 ‘읽는 행위’를 동경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은 요즘 유행하는 ‘○○코어(core)’라는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코어’란 특정한 대상이나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분위기와 취향을 패션, 공간, 소품, 행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문화다. 쉽게 말하면 좋아하는 분위기를 아예 하나의 세계관처럼 만들어 즐기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것이 ‘포엣 코어(Poetcore)’다. Poet와 Core의 합성어인 포엣 코어는 시인이나 작가처럼 사색적이고 낭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분위기를 패션과 라이프스타일로 표현하는 경향이다. 책이나 노트를 들고 카페에 가거나, 만년필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니트나 셔츠, 재킷처럼 차분하고 빈티지한 옷을 입는 식이다. 한마디로 하면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의 삶’을 하나의 스타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텍스트힙과 포엣 코어는 완전히 다른 유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텍스트힙이 ‘책을 읽는 것이 멋있다’는 생각이라면, 포엣 코어는 그 생각이 한 단계 더 확장된 모습이다.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책을 읽는 사람의 분위기와 삶까지 좋아하는 것.
 결국 요즘의 독서는 책장을 넘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문장을 좋아하는지, 심지어 어떤 모습으로 책을 읽는지까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수많은 1분 콘텐츠를 소비하는 10초 집중력 시대에 우리는 왜 하필 지금 책을 읽는 것이 ‘힙’해진 걸까?

15초도 길다면서 300페이지는 읽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콘텐츠를 본다. 손가락을 한 번 움직이면 다음 영상이 나오고, 몇 초만 지나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짧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만큼 콘텐츠를 소비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환경 속에서 오히려 ‘천천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특별해지고 있다.
책을 읽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멈춰야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다시 읽기도 한다. 영상처럼 몇 초마다 새로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 느림이 지금의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숏폼 콘텐츠가 빠르게 넘겨보는 즐거움을 준다면, 책은 잠시 멈춰 있는 경험을 준다. 하루 종일 알림과 영상에 둘러싸여 있다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 권의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평소와 전혀 다른 속도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숏폼이 싫어서 책을 읽는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쇼츠도 보고 릴스도 본다. 중요한 건 디지털을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니라, 빠른 콘텐츠와 느린 콘텐츠를 선택해서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책은 ‘느림’을 가장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책은 이제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책을 소비하는 방식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책을 사면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것으로 끝났다면, 지금은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콘텐츠가 시작된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라며 책을 찍어 올리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공유하고, 책을 읽기 좋은 카페를 찾아가고,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책을 읽는 행위가 SNS와 만나면서 독서 경험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책을 둘러싼 소비도 함께 달라진다. 예쁜 책 표지를 고르고, 마음에 드는 책갈피를 사고, 북커버를 고르고, 독서 기록장을 꾸민다.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것이 책 한 권만은 아니게 된 셈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 취향을 보여주는 문화적 소비재가 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책’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20대가 책을 찾는 이유를 단순히 ‘요즘 책이 유행해서’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책 그 자체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만의 취향, 그리고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정체성. 책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이 됐다. 그래서 숏폼과 책의 유행은 꼭 서로 반대되는 현상이라고만 볼 수 없다. 오히려 빠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느린 콘텐츠가 새로운 매력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츠를 보고 릴스를 넘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을 펼친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찍어 올린다. 조금 모순적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우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독서 방식일지도 모른다.
빠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부러 느린 것을 선택하는 것.
요즘 우리에게 책은 단순히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20대#독서#요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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