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PEOJECT취향찾기] 책을 만들러 갔는데, 노래를 읽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읽게 된 하루.
#001

'지금 좋아한다고 믿는 것들은 정말 내가 선택한 걸까?'

성수에 가면 팝업이 열리고, SNS를 켜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해준다.
취향을 발견하는 것보다 추천받는 일이 더 익숙해지는 시대다. 덕분에 선택은 쉬워졌지만, 문득 나의 취향을 다시 생각해본다.


활자 중독자는 지나칠 수 없는 공간, 텍스트 쇼핑 클럽

부산을 여행 간다는 나에게 친구는 "카드를 모아 나만의 책을 만드는 팝업"이라고 이 공간을 추천해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혹할 만한 설명이다. 실제로 입구에서는 바구니 하나를 건네준다. 공간을 걸으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담고, 음악을 고르고, 여행과 공간, 음식에 관한 카드들을 하나씩 모은다. 분명 문장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문장보다 '왜 나는 이 문장을 골랐을까?'를 더 오래 생각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을 걸었는데도 사람마다 멈추는 지점은 전부 달랐다. 
누군가는 여행 앞에서, 누군가는 사랑 앞에서, 나는 음악 앞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공간

나는 바이닐숍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열세 명의 아티스트가 직접 고른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왜 이 음악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짧은 글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검정치마의 〈Antifreeze〉를 세 번이나 들었다. 평소에는 백예린의 리메이크 버전을 더 자주 들었는데, 원곡은 훨씬 투박했다. 거친 기타 소리와 담담한 목소리 덕분인지, 세상이 얼어붙는다는 상상 속에서도 끝내 사랑을 이야기하는 마음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들의 청춘도 어쩌면 비슷하지 않을까.

확신은 없는데 자꾸 앞으로 걸어가고, 불안한데도 끝내 무언가를 믿어보려는 시기.관람을 끝내고 집에서 평소처럼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는데 멜로디보다 가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로로의 〈사랑하게 될 거야〉를 다시 들었다. 상처를 안고도 다시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이야기. 몇 줄의 가사를 오래 곱씹다 보니 사랑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끝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마음을 내어주는 용기. 사랑은 붙잡는 기술이 아니라, 다시 믿어보는 태도에 더 가까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ntifreeze〉가 불안한 청춘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사랑하게 될 거야〉는 상처를 딛고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행복하면 이 감정이 언제 끝날지 불안하고, 힘든 지금 이 시기가 영원할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20대를 되돌아봤다. 관계 앞에서도 쉽게 흔들렸고, 진로 앞에서도 쉽게 망설인다. 좋아하는 일이 생겨도 '이 길이 맞을까'를 먼저 고민하고, 좋은 기회가 와도 '다음에'를 외치다가 놓쳐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20대의 불안은 미래를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나를 믿는 연습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결국은 나를 믿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텍스트 쇼핑 클럽>을 다녀온 뒤 달라진 건 거창한 것이 아니다. 플레이리스트를 틀면 가사부터 읽게 되었고, 좋아하는 문장을 만나면 왜 그 문장이 오래 남는지 생각하게 됐다. 취향은 더 많은 것을 아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의 이유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알고리즘은 분명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추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왜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끝내 알려주지 못한다. 그 답은 직접 걷고, 오래 머물고, 천천히 읽어본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 여러분은 평소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를 먼저 듣나요? 아니면 가사를 먼저 읽나요?

오늘은 가장 오래 들었던 노래 하나를 다시 틀어보세요. 
이번에는 멜로디보다 가사에 조금 더 귀 기울이면서요.
어쩌면 그 노래가 설명하고 있는 건, 지금의 우리일지도 모르니까.



방문 계획이 있으시다면!


전시명 : 울트라백화점 부산 : 텍스트 쇼핑클럽
기간 : 2026.07.17(금) ~ 2026.11.01(일)
장소 : 부산 영도 피아크(P.ARK) 2F·3F
입장료 : 성인 20,000원 (1963~2007년생 일반권 기준)
관람시간 : 약 120분 권장
운영시간 : 11:00 ~ 18:00 (요일별 운영시간이 일부 다를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 권장)



#텍스트쇼핑클럽#20대#활자중독자#텍스트힙#인디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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