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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는 유럽 여름을 견뎌낸 5가지 방법

유럽여름 이거맞아? _낭만 뒤에 숨겨진 솔직한 현실





낭만의 탈을 쓴 38도 독일 집 


SNS 속 유럽 교환학생의 라이프는 늘 눈부셨다. 
초록빛 공원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고,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젤라또를 먹는 그림 같은 일상. 
나 역시 그런 낭만을 꿈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독일 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8월의 한복판, 내가 마주한 진짜 유럽 생활의 장르는 낭만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유럽 생존기’였다.
체감 온도가 35도를 훌쩍 넘어가던 어느 날 오후, 나는 작은 선풍기 한 대에 의존한 채 축 쳐지는 몸을 가까스로 붙들며 누워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이질적일 만큼 맑고 투명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지만, 실내는 마치 찜질방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했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이 집에는, 아니 이 나라의 수많은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한국에서는 여름이 오면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게 숨 쉬듯 당연했다. 
버튼 하나만 딸깍 누르면 18도의 쾌적한 찬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고, 더위는 순식간에 잊혀졌다.





고작 3%인 독일의 에어컨 보급률

하지만 독일은 정말 달랐다. 

1년 중 더운 날이 불과 며칠 되지 않는다는 환경적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일반 가정집과 기숙사, 심지어 대부분의 대중교통에 조차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이란. . .

"아니, 어떻게 이 더위에 에어컨 없이 사람이 살 수 있지?"라는 의문과 함께, 이렇게 더워할 바에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라는 충동적인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토록 간절했던 독일에 와있는데도.









불평을 멈추고 시작된 ‘독일 여름 생존 프로젝트’


처음 며칠 동안은 그저 불평만 늘어놓았다. 

한국의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그리워하며 침대 위에서 오징어처럼 오그라들어 있었고, 안그래도 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는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더위는 내가 투덜거린다고 해서 물러서지 않았다. 

언제까지 방 안에서 가만히 구워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려고 내가 14시간 비행으로 유럽까지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이 낯선 땅의 여름에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나의 반강제적인 ‘독일 여름 생존기'가 시작되었다.







첫째, 롤라덴과의 물아일체.

독일 집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생소했던 건 창문 바깥쪽에 달린 쇠로 된 블라인드, ‘롤라덴’이었다.
현지 친구들은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낮 시간 동안 이 롤라덴을 바닥까지 바짝 내려 방을 완전히 어둡게 만들라고 조언해 주었다. 처음엔 한낮에 방을 감옥처럼 어둡게 만드는 게 당황스러웠지만,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실내 온도가 3~4도는 낮아진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햇빛을 차단하고, 틈 사이로 들어오는 얄팍한 빛에 의존한 채 어둠 속에서 더위를 식혔다.







둘째, 집에 에어컨이 없다면, 내가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방 안의 열기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가장 뜨거운 오후 2시부터 6시 사이에는 미련 없이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독일에서 보기 드문 에어컨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대표적인 장소는 바로 도서관과 대형 마트였다. 노트북과 다이어리를 가방에 챙겨 들고 도서관에 나름 시원한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으면, 더위도 피하고 미뤄둔 공부와 기록도 할 수 있는 완벽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마트 신선식품 코너 앞에서는 유독 오래 무엇을 살 지 고민하는 척을 했다.







셋째, 싸고 맛있는 제철 유럽 과일 즐기기.

여름 유럽 생활의 커다란 축복 중 하나는 저렴하고 당도 높은 제철 과일들이 넘쳐 난다는 점이다. 
특히 마트에서 싸게 사 온 시원한 수박과 달콤한 납작 복숭아를 냉장고에 둔 뒤, 더위에 지칠 때마다 꺼내 먹는 것은 정말 내 독일 생활의 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보다 훨씬 착한 가격으로 즐기는 신선한 제철 과일 
한 조각은 더위로 낮아진 자존감과 입맛을 되살려주는 가장 확실한 충전제였다.







넷째, 해 질 녘 공원 도피와 와인 한 잔.

독일 여름의 가장 큰 반전은, 해만 지면 거짓말처럼 바람이 선선해진다는 점이다. 
저녁 8시가 넘어가면 밖으로 나와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차갑게 칠링해 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들고 
공원에 앉아 있으면, 낮 동안 찌들었던 더위와 스트레스가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섯째, 차가운 물 샤워와 기록으로 마음 정돈하기.

외출 후 집으로 돌아와 즐기는 찬물 샤워와, 방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써 내려가는 다이어리 시간이다. 
물리적인 더위는 샤워로 날려버리고, 불안하고 조급해지기 쉬운 낯선 환경에서의 감정은 다이어리에 차분히 적어 내려가며 마음의 온도를 낮췄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정돈하는 나만의 일일 루틴이자 마무리가 되어주었다.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에어컨 하나 없는 독일의 여름을 견뎌내며 깨달은 깊은 진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평소에 너무나 많은 편리함과 익숙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버튼 하나로 온도와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던 삶에서 벗어나, 제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낯선 환경에 내던져졌을 때 비로소 내 안의 유연함과 자발성이 깨어났다.

불평을 그만두고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하나 씩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여름 루틴이 생겨났고, 
그 쩔쩔맸던 불편함조차 내 인생의 유쾌하고 다정한 이야기로 남게되었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대신 나는 낯선 어려움 앞에서도 나만의 그늘과 바람을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

지금 혹시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나 마주한 난관 때문에 지쳐있는 또래 친구들이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싶다. 
당장 눈앞의 에어컨 버튼을 누를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찾아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고 유연해서, 어떤 낯선 땅에서도 나만의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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