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20대
자소서에 차마 쓰지 못한 나의 진짜 단점은...
우리는 왜 단점까지 포장할까?
우리는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대외활동에 지원할 때, 취업을 준비할 때도 자기소개서를 마주한다. 정해진 분량 안에 나를 담아내야 하는 자기소개서지만, 막상 성격의 장단점 항목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정말 솔직하게 써도 되는 걸까?
결국 우리는 장점으로 포장할 수 있는 적당한 단점을 고르고 골라 적는다. 나를 소개하는 글인데도 정작 진짜 나는 점점 지워진다.
우리는 왜 단점까지 포장할까?
자소서에 차마 적지 못한 단점은 마음에 꾹 눌러둔 채 꺼낼 틈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럴싸한 포장을 잠시 벗겨내 보기로 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부터,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털어놓은 이, 나아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단점을 드러낸 이까지. 각자의 속도로 진짜 나를 마주한 세 명의 대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게으른 완벽주의가 아니라 완벽한 게으름뱅이예요."
건국대학교 24학번 미룬이
- 자소서에 쓴 단점: 게으른 완벽주의
- 실제 단점: 게으름
자소서에는 어떤 기준으로 단점을 적었나요?
자소서에 딱 쓰기 좋은 소재잖아요. '게으른 완벽주의'라고 하면, 어쨌든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완벽한 게으름뱅이예요.
저는 3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수험 기간이 꽤 길었어요. 그래서인지 대학에 들어온 뒤에는 조금 더 즐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보상 심리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학점 관리도, 대외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정말 놀기만 했어요.
그렇게 보내는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친구들과 놀거나 캠퍼스 라이프를 즐긴 것도 아니에요. 보통 집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태생부터 내향적인 집돌이라 혼자 집에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저는 결과주의적인 성향도 강해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서 3수를 했고, 정해진 답이 있는 걸 원해서 수학을 제일 좋아했어요. 그러다 한때는 게임에 푹 빠졌어요. 게임은 티어가 있어서 결과가 바로 보이잖아요. 티어가 올라갈 때마다 뭔가 보상 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가 늦잠 자고, 학교도 자주 빠졌어요. 그때는 제가 정말 프로게이머라도 될 줄 알았나 봐요.(웃음)
미룬이가 한때 푹 빠졌던 게임 (롤토체스)본인의 모습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나요?
주변 친구들은 이제 하나둘 취업하거나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는데, 저는 사실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시험공부 하나도 안 했어", "요즘 진짜 아무것도 안 해" 같은 농담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고학년이 되고 나니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조금 눈치 보이더라고요.
저는 스스로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수험 생활이 길어지면서 어느 순간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는 그냥 잘 지내는 척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굳이 게으르게 살고 있다고 말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은 이 모습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그럼요. 사실 게으름은 다른 단점보다는 극복하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면 되는 거잖아요. 물론 생활 패턴을 당장 바꾸기는 힘들겠죠.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도전해보고 있어요.
최근에 자신을 바꾸기 위해 해본 일은 무엇인가요?
캠퍼스 라이프를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1학기에는 용기를 내서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사실 학번에 비해 나이가 있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계속 망설였어요. 근데 이렇게 미루다가는 졸업하고 나서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가입했습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저한테는 꽤 큰 변화예요. 일단 해봤으니까요.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솔직한 것도 가끔은 독이 된다니까요."
경북대학교 23학번 김부각
- 자소서에 쓴 단점: 일정 관리를 잘 못 함
- 실제 단점: 성인 ADHD
자소서를 쓸 때는 어떤 단점을 적었나요?
자소서에는 일정 관리를 잘 못 한다고 썼어요. 그리고 곧바로 보완했던 경험을 덧붙여서 애써 단점을 숨기려고 했던 거 같아요. 자소서를 쓸 때마다 이런 문항을 마주하면 조금이나마 비슷하고 그럴싸한 단점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단점에 ADHD라고 쓰면서 "일을 벌여놓기만 하고 수습을 못 합니다"라고 적으면 어느 누가 저를 채용하고 싶겠어요.(웃음) 지나치게 솔직한 것도 가끔은 독이 된다니까요.
마감 시간을 넘겼을 때 김부각이 친구와 주고받은 메시지자신의 단점을 처음 마주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처음에는 그냥 정신이 산만하고 일정을 잘 못 맞춘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심해져서 스스로 통제가 안 되더라고요. 저는 영상 편집이 취미인데, 포트폴리오 쌓을 목적으로 겸사겸사 외주를 받고 있어요. 근데 마감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어서 매번 곤란한 일이 생기곤 했죠. 부모님도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검사를 통해 진단 받게 됐어요.
진단을 받은 뒤,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요. 친구들은 평소에 "나 ADHD 같다"고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저는 실제로 검사를 받고 진단 받은 거니까 느낌이 조금 달랐어요. 이건 어디서든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마냥 숨겨야겠다 생각했죠. 근데 숨긴다고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주변에 어떤 식으로 단점을 밝혔나요?
평소에 약속 시간을 잘 못 지켜서 친구들에게 타박을 많이 받아요. 모 아니면 도예요. 약속 시간보다 2~3시간 일찍 가서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아예 늦어버려요. 그런데 늦을 때가 더 많았죠. 그래서 결국은 친구들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어요. "나 사실 ADHD 진단받았고, 약 먹고 있어." 이렇게요. 그런데 친구들은 생각보다 담담했어요. 몇몇은 장난스럽게 이미 알고 있었다고 받아치기도 했고, 또 몇 명은 "그렇구나"하고 넘어갔죠.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너무 어려웠는데 뱉고 나니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고요.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혼자 있으면 자꾸 다른 길로 샐 때가 많아서 친구들을 일부러 더 많이 만나려고 해요. 제 친구 중에 정말 계획형이고 통제력이 강한 친구가 있어요. ADHD라고 밝히기 전까지는 그 친구가 저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서로 상극에 가까웠는데,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오히려 같이 열심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그 친구와 카페에 가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서로 제대로 했는지 확인해요. 처음에는 할 일을 정해놓아도 자꾸 다른 걸 하고 싶어지고, 그러다 급한 일을 끝내지 못할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친구가 잔소리를 많이 해줬고요. 지금은 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아요.
단점을 밝힌 뒤, 주변의 시선이 달라질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나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저를 안 좋게 볼 사람이라면 애초에 인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제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려고 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그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회피형이라는 사실을 회피하고 싶었어요."
단국대학교 22학번 도레미
- 자소서에 쓴 단점: 너무 신중함
- 실제 단점: 회피형
프로젝트 영상의 인트로 부분자소서에 단점을 솔직히 적지 못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회피형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보잖아요. 연애 관련 영상들만 봐도 '회피형만은 제발 피해라' 이런 댓글이 수두룩하기도 하고요. 자소서에 그대로 적으면 업무도 미루고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냥 신중하다고 에둘러 표현했던 거 같아요. 사실 생각이 많고 신중한 것도 맞거든요.
어떤 순간에 회피했나요? 이 기회에 전부 털어놔 주세요.
모든 일을 피하는 건 아니고, 자신 없는 일 앞에서 주저하는 편이에요. 저는 예전부터 스스로 정해놓은 공포증이 많았거든요. 전화공포증, 발표공포증, 주목공포증 등등.... 그래서 발표가 있는 수업은 드랍하고, 대외활동에 지원할 때도 면접이 없는 활동만 찾아다녔어요. 이뿐만 아니라 정말 하기 싫은 일은 온갖 핑계를 대며 피하려고 했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도 잘 못 해서 오해를 받은 적도 많았던 것 같아요. 나열하자니 끝이 없네요.(웃음) 돌이켜보면 회피하는 습관 때문에 제 스스로 틀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갇혀서 많은 기회를 놓쳤던 것 같아요.
스스로도 회피하는 편인 걸 알고 있었나요?
사실 몇 년 전부터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어요. 근데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합리화하다가 결국에는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회피하는 것도 습관이 되고, 그런 너를 너그러이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요.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사실 전 애인도 제게 회피형인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그때는 귀담아듣지 않았거든요. 그제야 제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도레미 님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공개하기로 한 계기가 있었나요?
정말 하고 싶었던 활동의 공고를 반년 동안 기다렸는데, 지원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 마감 기한을 놓쳤어요. 그때 정말 큰 무력감이 몰려오면서,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마침 4학년 1학기에 개인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발표하는 전공 수업이 있었어요. 교수님께서 자유롭게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그 순간 번뜩 떠올랐죠. '회피 극복 프로젝트를 해보자.' 적어도 30명 앞에서 발표하면 강제성이 생기니까 도망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회피해왔던 역사를 영상에 담고, 하나씩 극복해 가는 과정을 기록했어요. 리스트를 만들어서 일종의 도장 깨기처럼 하나씩 해보는 거였죠. 그 과정을 담은 영상을 30명 앞에서 상영하고 발표했습니다.
도레미가 받은 교수님의 격려 이메일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단점을 공개하려니 무섭지는 않았나요?
솔직히 너무 부끄러워서 발표 당일 아침까지도 도망가고 싶었어요. 근데 정말 바뀌겠다고 마음먹었으니 해야 하잖아요. 게다가 전공 수업이라 학점도 중요했고요. 그래서 꾹 참고 앞에 나가 발표했어요. 교수님께서 제가 떠는 모습을 보시고 긴장되면 앉아서 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냥 끝까지 서서 했어요.
발표가 끝난 뒤에는 학우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고, 교수님도 따로 격려해주셨어요. 교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바뀌려고 시도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정말 기억에 남아요.
그 발표 이후, 실제로 달라진 것이 있나요?
그 이후로는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뭐든 도전하려고 해요. 한 번의 용기가 저를 바꾼 거죠. 다시 돌아가도 또 발표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SNS에도 제 이야기를 조금씩 올려보려고 해요.
단점을 약점으로 여기던 우리가, 그것을 나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바라보기까지.
모두가 같은 속도로 자신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당장 솔직해지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젠가 품고 있던 마음을 꺼내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서툴고, 부족한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마주해보자.
포장된 나를 한 겹 벗겨냈을 때, 그 안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소서#대학생#단점#취준생#콤플렉스